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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리뷰]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2003) - 박세호

멜로마니 2014. 9. 25. 21:46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 박세호(박기복) │ 2003 │ 나레이션 : 설경구



영매 : 신령(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의사가 통하여, 혼령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람. 곧 무당이나 박수가 이에 해당한다.




우린 산 자의 세상에 살고 있다. 죽은 자의 세상은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가본이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옛부터 산자와 죽은자를 함께 생각했다. 마을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생기면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가 모여 떠나는 저승길 가볍게 가시라고 망자를 위한 굿을 치뤘다. 과학만능의 시대를 사는 요즘은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모두 미신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이곳에서 죽은자의 세계는 '귀신'으로 치부되고 그저 한여름밤에 필요한 오싹한 소재 정도로 남아버렸다. 


'영매'라는 말을 아시는가? 나 역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 써본 단어다. 영매는 혼령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람이다. 옛부터 우리땅엔 신이나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마다 꼭 필요한 이 영매를 통해 사람들은 한 해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고 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도움을 얻었다. 한강 이북, 이남에 따라 용어도 다르고 그 성격도 약간씩의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영매는 세습무와 점쟁이로 구분된다. 세습무는 대를 이어 굿을 주관하는 사람이고 점쟁이는 그것과 상관없이 어느날 강신해 신의 말을 전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요즘은 모두 '무당'이라는 말로 통용되어 쓰이지만 전통이 남아있는 지역에선 세습무와 점쟁이의 역할 구분이 뚜렷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매'는 한국에 남아있는 영매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먼저 경북 포항에선 '별신굿'이라 불리는 부락제가 펼쳐진다. 물론 이를 맡는건 세습무다. 별신굿이 벌어지는 이틀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잔치를 준비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별신굿을 즐긴다. 바다신에게 소원을 빌고 한 해를 무사히 보내게 해달라는 기원이 담겼기에 기복적 성격이 강하다. 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준비하고 시간을 보낸다는데서 축제적 성격도 돋보인다. 다음으로 진도의 씻김굿은 죽은이를 보내는 의식이다. 전라도에선 세습무를 당골래라 부르고 씻김굿은 이 당골래가 주관한다. 다큐에 등장한 당골 자매는 당골래로 살아온 자신들의 인생을 토해낸다. 어쩔수 없이 받아야만 했던 당골래의 운명을 짊어지고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자연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언니의 죽음을 맞고 일흔넘은 동생이 치르는 씻김굿은 듣는 내내 알 수 없는 울컥함을 느끼게 했다.  



   

이제 한강 이북으로 건너오면 보다 익숙한 모습의 영매가 나타난다. 바로 강신무 무당이다. 강신무는 신병을 앓고 신이 내려서 된 무당을 말한다. 액땜을 하기 위해 혹은 죽은이를 부르기 위해 굿을 하는 장면은 모두가 익숙할 것이다. 특히 강신무 무당이 신이 들린뒤 작두를 타거나 죽은이의 영혼이 들어오는 장면은 그 미스테리함으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사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큐에 등장하는 강신무 무당은 자신의 운명의 굴레에 한스러움을 토한다. 자기가 아닌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무당은 상처를 가진이를 보듬고 죽은이와의 만남을 주선해 한을 풀어줘야만 한다. 살아서 풀지 못한 한을 죽어서라도 풀어주는 것, 그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한 모두를 풀어주는 것, 그것은 오로지 무당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삶을 잊고 사는 요즘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참 지혜롭게도 태어난 곳에서 한평생을 살며 '영매'라는 존재를 통해 생의 감각을 지켜냈다. 영매를 통해 함께 울고 웃고 하는 과정은 한철 피고 지는 서글픈 인생살이를 살맛나게 해주는 힘이다. 모두가 다 함께 행복을 빌며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영매는 신의 뜻을 받들어 인간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도 영매는 죽은이를 씻기며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그래서 우린 삶과 죽음을 떼놓지 않았다. 이승에서의 삶이 한스럽더라도 죽은 뒤 자신의 뒤를 살펴주는 산자들이 있다는 믿음에서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영매는 자연의 피고 지는 이치를 신의 이름으로 전해주는 소중한 존재 아니었을까.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엔 신명나게 희노애락을 느끼고 세상을 떠날땐 살아있는 이에게 죽음을 남기고 떠난다. 그 삶과 죽음안에 담긴 갖은 정서를 함께 나누는 것, 그게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영매'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울려퍼지는 당골래 할매의 씻김굿 소리는 두고두고 듣고픈 애절함이 담겨있었다. 할매는 다시 태어나면 얼굴이 예쁜 가수가 되고싶다고 했지만 이미 그 어떤 가수와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