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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타인의 삶(2006)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멜로마니 2014. 9. 14. 17:36





타인의 삶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 2006 │ 울리히 뮤흐. 마르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타인'을 통해 발견한 사랑의 힘



누군가의 삶이 나의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물론 이런 순간은 흔치 않다. 타인을 오랜 시간에 걸쳐 세심하게 지켜봤을 때, 그리고 그를 통해 감동과 사랑을 느꼈을때만 그 사람은 나의 인생에 흔적을 남긴다. 마음을 울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와 닮고 싶고 그처럼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생겨난다. 그렇기에 타인의 영향을 받은만큼 내 삶은 변한다. 어쩌면 그 이유는 타인을 통해 무의식으로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관이나 욕구를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떠올려본다면 인생에서 변화를 겪었던 순간들이 그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린 그렇게 타인이란 존재를 통해 변화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나간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영화 '타인의 삶'에서 자신이 감시하는 대상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이 비즐러(울리히 뮤흐)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을때 말이다. 비즐러는 동독의 슈타지(비밀경찰)로 일하며 요주의 인사들을 감시하고 심문하는 일을 한다. 철두철미하게 당이 정한 불순분자들을 색출하고 감시하는 일을 하는 그가 한 남자를 통해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만난다. 바로 연극 연출가 드라이만이다. 동독의 대표 예술가 드라이만은 나라와 당을 위해 연극을 올리는 예술가지만 그 역시 당의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인인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와 함께 사는 드라이만은 그렇게 당의 감시 대상이 되고 비즐러는 그들의 아파트 위에서 24시간을 감시하고 도청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초반, 슈타지로 일하는 비즐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보인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심문하는 그는 그것이 당과 조국에 충성하는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삶은 '드라이만'을 만나면서 변화한다. 한 예술가의 삶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사랑'을 만난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드라이만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진심을 다해 아낀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했던 동료 예술가가 죽음을 맞았을때 '착한 사람의 소나타'를 연주하며 추모하는가하면 자신의 애인 크리스티나가 권력의 노예가 되어 갈등하고 괴로워할때도 어떤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말없이 안아준다. 그런 드라이만의 인간적인 모습은 비즐러를 눈물 흘리게 한다. 타인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을 마주한 것이다. 그때부터 비즐러는 드라이만이라는 인간을 좋아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랑을 알게된 비즐러가 슈타지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드라이만을 의심의 눈초리로, 그저 '타인'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드라이만을 통해 인간의 기저에 깔린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비즐러는 그를 남몰래 돕기 시작한다. 드라이만이 동독의 부패와 시대상을 고발하는 글을 쓰면서 몰래 타자기를 숨길때도 그는 그것을 묵인하고 거짓 보고를 올린다. 드라이만의 애인이 결국 자백을 하고 당의 하수인이 되어도 비즐러는 끝까지 드라이만을 돕는다. 하지만 드라이만은 이 사실을 동독과 서독이 통일 된 이후에야 알게된다. 자신을 감시했던 비밀경찰이 오히려 자신을 남몰래 도와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여기서 오는 따뜻한 감동은 통일 된 이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굳어져버린 드라이만을 다시 작가로 부활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영화 '타인의 삶'은 '사랑'이 가진 뜨거운 힘을 보여준다. 이데올로기와 경직된 체제 속에서 기계로 살았던 비즐러가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웃음짓는 한 인간으로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감싸준 죄로 높은 지위를 박탈당하고 통일 독일에서 우체부로 살아가지만 그의 삶은 분명 달라져있다. 온 생에서 단 한번 '드라이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을 발견한 그는 더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노예로 살아가지 않는다. 사랑을 모르는 인간은 타인을 살아있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죽을때까지 '사랑'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통해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한다. 한 예술가를 통해 깨달은 사랑의 힘으로 위험을 무릅써가며 그를 구하지 않았는가. 영화 마지막, 뒤늦게 이를 안 드라이만이 비즐러를 위한 책을 출판하는건 참 당연하면서도 가슴뭉클한 장면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본 뒤 사랑의 위대함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또 예술의 근원은 '사랑'에 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사랑'만이 인간을 심장이 뛰는 살아있는 존재로 만든다. 타인을 통해 사랑을 발견하고 그로써 다시 태어난 비즐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