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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생각] 아킬레스와 거북이(2008) - 기타노 다케시

멜로마니 2014. 9. 28. 21:27



아킬레스와 거북이 │ 기타노 다케시│ 2008│ 기타노 다케시. 히구치 카나코



우린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남들이 최고라 불러주는 사람, 대단하다 칭찬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특히 예술이라는 분야는 그 갈망이 더욱 크다. 영화감독이라면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킬 대작을 만드는게 꿈일 것이고, 화가라면 유명 미술관에 자신의 그림이 걸리는 것을 꿈꿀 것이다. 도대체 예술이란게 뭐길래 그런걸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이 물음에 대해 그만의 대답을 내놓는다.


제논의 역설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제논이 내놓은 역설 중 가장 유명한게 바로 이 '아킬레스와 거북이'다. 아무리 발빠른 아킬레스라 하더라도 일정 거리를 먼저 앞에서 출발한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게 그 내용이다. 언뜻보면 맞는 말이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거리는 갈수록 줄어들어도 절대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게 되니까. 영화 역시 그 제논의 역설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마치스가 화가라는 꿈을 쫓는 이야기가 펼쳐지니 여기선 마치스가 아킬레스가 되겠다.




마치스는 어린시절 유복한 환경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렸지만 이후 가정형편이 안좋아지고 부모와 헤어지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나 좋은 마치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도 자신을 사로잡는 풍경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공장에 들어간 뒤 돈을 모아 예술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수없이 그림을 그리고 이를 미술품 거래상에게 내놓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하다. 밋밋하다, 재미없다, 개성이 담겨있지 않다 등 거래상의 불만에 그는 점차 세계적 화가들의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시 뻔한 결과다. 피카소 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그게 마치스의 것이 될까. 그의 이름 '마치스'처럼 그는 유명 화가의 스타일을 모사하여 그림을 그리고 거래상의 평가를 기다린다. 거래상이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식의 평가를 하고나면 그의 다음 작품은 그 분부(?)를 고스란히 받들어 만들어진다. 



그렇게 그는 온평생을 그림을 그리며 보낸다. 한번도 중개상의 만족을 얻어낸 적이 없기에 그의 시도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다양해진다. 그런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부인 사치코다. 젊은시절 마치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 그녀는 결혼한 뒤에도 생계를 책임지며 그의 작품 활동을 돕는다. 별다른 소득없이 나이만 먹고 중년이 되어도 그녀는 묵묵히 마치스의 곁을 지키며 함께 그림을 그린다. 도가 지나친 그의 광적인 작품 활동은 후에 그들이 이혼하는 계기가 되지만 분명 둘의 관계는 특별하다. 




중개상이라는 별 시덥잖은 존재의 말을 들어가며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모든걸 다 잃는 순간이 온다. 어쩌면 그는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 혹은 무기력함을 마주했는지 모른다. 아무리 그려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은 떠나가버리니 삶은 황폐해질수밖에. 이혼을 당한 뒤 한쪽 눈을 제외한 온몸에 전신 화상을 입은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의 지난 인생이 회의감으로 다가오진 않았을까. 그간 그렸던 수많은 그림들이 남들의 입맛대로 그린 한낱 종이에 불과함을 느끼진 않았을까. 도대체 예술이 뭐길래 마치스가 아무리 달려도 잡을 수 없는걸까.




사실 애초에 제논의 역설은 틀렸다. 연장선에서 보지 않고 시간을 쪼개 그때마다 거리를 재는 방식을 취하니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절대 따라잡지 못할 수밖에. 영화 속에서 마치스가 자기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그림을 그리려해도 예술이라는 환상은 절대 잡히지 않는다. 그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바로 '사랑'이다. 마치스에겐 온 평생의 자기 삶을 인정해준 사치코가 있다. 중개상이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내놓아도,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그녀만큼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분명 마치스는 거북이를 제쳤다. 자신이 벼룩시장에 내놓은 콜라캔을 알아주는 사람인 사치코와 재회하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을 감동케 하는 것만으로 예술은 그 역할을 다한다. 마치스는 너덜너덜하게 온인생을 그림에 바치고 한쪽 눈만으로 세상을 보고 나서야 타버린 콜라캔에 의미를 담는다. 그리고 이를 사치코가 알아본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제쳐버린 순간이다.


예술은 삶과 유리되어 있을때 하나의 사치품으로 다가온다. 그럴듯하게 보이기위해 클래식을 듣고 전시회를 다녀오고 뮤지컬을 본다고 예술을 향유한다 할 수 있을까? 동시에 자신이 작가가 아니라고, 화가가 아니라고 예술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그 공식대로라면 평범한 인간은 절대 예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 예술은 사랑과 감동을 만들어 내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렇기에 인간 한 명이 살아내는 방식 만으로도 예술이 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다. 난 영화 속 마치스와 사치코가 서로를 재회한 뒤 걸어가는 모습에서 왠지모를 용기와 사랑을 얻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날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저 묵묵히 함께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하나의 '예술'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제 도저히 제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난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힘이 날 것 같다. 사랑은 그 모든걸 가능케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