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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여름특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 박흥식

멜로마니 2014. 7. 24. 23:26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 박흥식 │ 2000 │ 설경구 전도연



일년 중 장마를 제일 좋아한다. 후덥지근한 여름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비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상쾌해진달까. 장마를 좋아해서인지 기억에 남는 추억들도 이 기간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도 장마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난 중학교 1학년이었다. 유년시절의 힘이 무서운걸 이럴때 실감한다. 철도 없고 아무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영화를 보면 그때 감성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그땐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건 영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장면들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마음에 들어온 22살 이후로 결혼을 꿈꾸는 두 주인공 원주와 봉수의 마음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되는 그런 현재형 영화기도 하다. 물론 난 이 영화를 영화 속 배경인 '장마'가 왔을 때 챙겨본다.


먼저 영화의 매력은 2000년대 초 서울의 풋풋한 풍경에 있다. 장마가 시작된 서울에서 은행원인 봉수와 학원 선생님인 원주는 참 촌스러운 차림새다. 이 둘 뿐만 아니라 당시의 풍경이 참 풋풋하고 순수하다. 은행 맞은편의 건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 원주는 알뜰살뜰 동전을 모아 봉수에게 저금을 부탁하고 그렇게 둘은 얼굴을 익히며 인사하는 사이가 된다. 만화책을 빌리다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리는 사건(?)이 생기기도 하고 학원의 전구를 갈아달라는 부탁도 하면서 둘은 친해진다. 아무 생각없는 봉수와 달리 원주는 그에게 점점 호감이 생기지만 마음을 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은행 ATM에 설치된 카메라 앞에서 수줍은 고백을 하는 원주. 뒤늦게 이를 본 봉수는 원주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한다. 



봉수는 언뜻보면 참 무미건조하고 답답해보이는 남자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미래의 신부를 위해 낯부끄러운 비디오 녹화도 서슴치 않는 사람이다. 여자를 위한 필살기인 마술로 환심을 사려 노력해봐도 쉬운일이 아니다. 우연히 마음에 들었던 동창을 만나 잠시나마 행복에 빠지지만 돌아오는건 배신뿐이다. 영화 마지막 그런 봉수에게 원주가 새롭게 다가온다. 항상 주변엔 있었지만 신경쓰진 않았던, 그런 사람이 특별한 존재로 변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지난했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됐을때 둘은 함께하며 영화는 끝이난다.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참 많다. 나이를 먹다보니 원주의 마음도, 봉수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된다. 그리고 둘의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에 나까지 마음이 풋풋해지는것만 같다. 새로운 사랑에도 괜시리 주저하고 소심한 표현을 하는 원주도 귀엽고 결혼노래를 부르며 애처롭게 미래의 아내를 찾는 봉수의 모습도 참 귀엽다. 요즘엔 절대 볼 수 없는 사랑의 풍경이랄까. 조건으로 무장한 요즘의 결혼세대와는 참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이 영화를 더 보게되는 것 같다. 원주와 봉수를 보면서 무심결에 지나쳤던 '아내'와 '남편'에 대한 소소한 바람들을 되짚어보게 되는 것 같다.


올해에도 장마기간인 요즘, 영화를 다시 봤다. 그리고 봉수처럼 나도 중얼거렸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 편히 작은 공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 함께 빗소리도 듣고 산책로도 걸으며 소소한 행복을 함께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옆구리가 더 시려올테니 내년엔 그리고 내후년엔 더 봉수와 원주의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다. 이렇듯 영화를 보고 나면 '결혼이라는 막막한 느낌보단 그냥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원주와 봉수처럼 사랑을 찾아간다면 결혼은 거추장스런 허례허식이 아닌 자연스럽고 진심어린 사랑의 한 표현이 될 것이다.




* 감독님.. 속편으로 '나도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만들어주세요 !!! *



* OST 듣기 : http://blog.daum.net/jooricomhaha/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