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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행복(2007) - 허진호

멜로마니 2014. 7. 12. 19:41

 

 

행복 │ 허진호 │ 황정민 임수정 │ 2007


 

사랑엔 참 수만가지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오래오래 한결같이 행복한 커플의 모습이 있는가하면 서로를 할퀴고 부수다 결국엔 헤어짐을 선택하는 연인도 있다. 너무나 비슷한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상황과 성격에 매력을 느껴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다. 그래서 수많은 멜로 영화들은 각기다른 다양한 사랑의 얼굴을 보여주기에 우린 관객이 되어 내가 몰랐던 사랑의 얼굴들을 만나보게 된다. 영화 '행복'도 나에겐 그런 영화다. '이것도 사랑일까'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해주면서 '사랑'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어 시골 요양원에 온 영수(황정민). 그는 요양원에서 자신과는 너무 다른 때묻지 않은 존재 은희(임수정)를 만나게 된다. 지루하고 따분하기만한 요양원 생활에서 사랑이 시작된 둘은 급기야 요양원을 떠나 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기에 이른다. 산골에서 오붓한 둘만의 행복도 잠시, 알콜중독이었던 영수는 다시 도시생활을 그리워하고 술을 찾게된다. 심지어 서울로 올라가 전 여자친구인 수연(공효진)을 만나고 과거 자신의 생활을 그리워하게된다. 그렇게 점점 마음이 멀어지는 영수와 은희. 정확히 말하면 '영수'의 마음이 변한것일테지만 은희는 그런 그의 뜻을 따라준다. 조금만 뛰거나 감기가 걸리면 죽을지도 모르는 그녀는 온 몸으로 괴로워하며 영수를 놓아주고 둘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난다. 물론 영화 마지막엔 뒤늦게 은희의 죽음을 목놓아 우는 영수의 모습이 보인다.



 



이 영화는 진부해보일 만큼 단순한 설정을 통해 사랑의 비극을 담아낸다. 영수와 은희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도시에서 클럽을 운영하면서 화려한 생활을 하던 영수, 그리고 비닐봉투값을 아껴가며 산골생활을 해온 은희는 딴세상속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둘이 사랑에 빠졌다. 항상 그렇듯 영화속엔 사랑에 빠지는 순간 행복한 둘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시골생활에 갈증을 느끼고 답답함을 느끼는 영수지만 은희와 사랑에 빠진 순간 만큼은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고 그 둘만의 세상에서 행복해한다. 물론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영수에게 시골생활은 살기위해 택한 어쩔수 없는 공간이었고 그의 욕망과 버릇은 온통 도시로 뒤덮여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은희에게서 변함없는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도망치듯 그녀를 버리고 서울로 떠난 그는 막상 서울에 와서도 이방인의 느낌을 받고 다시 폐인이 되어가지만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자신이 죽을때 꼭 곁에서 지켜달라던 은희를 죽고나서야 보게 된 그는 그때서야 후회를 하고 목놓아 운다. 

 



이 영화를 볼때마다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라는. 영수와 은희는 사랑하긴 한걸까. 영화가 둘 중 영수에게 더 무게를 두기 때문에 사랑이 더 헷갈려진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은희는 영수를 진정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까지도 안을만큼 영수를 사랑했다. 그에게 모든걸 주고 자기 대신 그가 낫기를 바라는, 그래서 자신이 죽어도 영수만큼은 살리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엔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비극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온 마음을 다바쳐 영수를 사랑한 은희, 그녀에게 남은건 홀로 맞는 쓸쓸한 죽음이었다. 아무리 은희가 온몸을 다해 사랑해도 영수를 잡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영수는 은희의 죽음을 마주해야만 뒤늦게 모든걸 후회하고 은희를 바라본다는 건 둘의 사랑에 크나큰 비극이다. 

 

 

그래서 난 행복을 볼때면 한 커플의 사랑을 본다. 정확히 말해 한 커플 속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의 얼굴을 본다. 은희의 사랑이 절절하다못해 안타깝다면 영수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차갑기까지하다.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이 가진 잔인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처녀작 8월의 크리스마스가 순수한 사랑의 풍경을 잡아냈다면 이 영화는 그보다 현실적으로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봄날은 간다'와 같이 서정적이지도 감성적이지도 않다. 그저 너무 다른 둘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시작한 것, 그리고 한 사람의 변덕으로 어쩔수 없이 사랑이 끝나버린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 안엔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은희의 모습이 있다. 물론 그 따뜻했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지난날을 뼈아프게 후회하는 영수의 모습도 있다. 어쩌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절히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은희가 되어 볼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지난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영수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찾아볼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씩은 겪어본 사랑의 모습을 영화 '행복'이 담아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