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문학] 목소리 섬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멜로마니 2013. 3. 5. 22:32

 

 


 

 목소리 섬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바벨의 도서관

 

 

이 얼마만에 느껴본 짜릿한 느낌일까. 4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어린아이가 되어 옛날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야기를 읽으며 영화처럼 그려지는 이미지들에 젖어있기도 했다. 이 책을 만나게 된 동기는 특별한 건 없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단편선 중 하나인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보다가 에메랄드 빛 겉표지와 '목소리 섬'이라는 특이한 제목때문에 구입하게 된 것.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탓인지 '보물섬'의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어렸을때 '보물섬'을 읽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읽는 내내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감탄 또 감탄했다. 여기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세 편을 정리해볼까 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그만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목소리 섬'의 경우, 마법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와이의 섬 중 하나인 몰로카이에 사는 주인공 '케올라'는 장인 '칼라마케'의 요술능력을 보고 욕심을 내다가 벌을 받고 바다를 표류하게된다. 그러던 중 만난 '목소리 섬'. 그곳은 한때 케올라가 칼라마케와 함께 마법의 잎파리들을 모아 순간이동을 하고 모래로 돈을 만들었던 곳이었다. 어쩔수 없이 그곳에서 살기 시작하는 케올라. 하지만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식인종이라는걸 알게되고 탈출을 결심하던순간, 몰로카이에 있었던 부인의 도움으로 다시 순간이동을 통해 돌아오게 된다. 이야기를 압축해보면 이렇게 터무니없지만 그 과정이 참 재미있다. 주인공의 욕심을 알아채고 벌을 주는 장인 '칼라마케'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목소리 섬에서 보이지 않는 마법사들의 싸움이 눈에 그려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린시절 그렸던 상상의 세계와 많이 닮아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두번째 '병 속의 악마'이다. 하와이 섬에 살던 '케아웨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부자 할아버지의 집을 마주치게된다. 거대한 저택에서 화려하게 생활하는 그를 보며 부러워하던 중 할아버지는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을 사게되면 그 안에 악마가 들어있는데 그 악마가 원하는 소원 무엇이든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그 병을 다른 사람에게 팔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게 되면 죽을때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병은 무조건 자기가 산 가격보다 더 적은 가격에 팔아야 하며 돈은 현금으로 줘야한다는 조건과 함께 케아웨라는 고민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꿈꾸는 욕망을 위해 그 병을 구입한다. 병을 구입하고 하와이에 돌아와 원하는 대저택을 짓고 살아가는 케아웨라. 하지만 누군가에게 또 병을 팔아야 하기에 고민이 생긴다. 다행히 그의 친구 로파카가 병을 사가고 케아웨라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자신이 나병에 걸린걸 알게된 케아웨라.. 더군다나 그는 그 상태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에 빠져 자신의 죽어가는 생명을 되찾고싶은 케아웨라는 다시 악마의 병을 찾아 나선다. 이 이야기는 그 병을 찾아나선 케아웨라와 그와 사랑에 빠진 '코쿠아'가 병을 찾고 다시 파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중에서야 병을 찾았지만 가격이 떨어질대로 떨어져 더이상 누군가에게 팔 수 없게 된 병을 산 케아웨라. 결말은 생략하겠지만 그가 코쿠아와 함께 병을 팔기 위해 꾸미는 아이디어가 참 기발하다. 또 그 아이디어의 끝엔 결국 사랑이 존재하기에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이야기를 넘어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단편이다.

 

나머지 두 편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단편의 영화로 제작되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산나버린 주인공이 골동품 중개상을 홧김에 살인하고나서의 단 몇시간을 담은 세번째 단편 '마크하임'은 '지킬 앤 하이드'처럼 자기안에서의 천사와 악마의 모습이 공존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개인을 죽이고 물건을 뒤지는 마크하임에게 나타난 악마, 그리고 그 후에 외출하고 돌아온 하녀. 그는 악마의 말대로 목격자가 될 하녀를 죽일것인지, 아니면 자수를 할것인지를 고민한다. 자꾸 하녀를 죽이라고 부추기는 악마에게 마크하임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하녀를 맞는다.

 

" 내가 사악한 행동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자유로운 문 하나는 아직 열려 있어. 나는 행동을 그만둘 수 있지. 내 삶이 부덕한 것이었다면 이제 내려놓을 수 있어. 당신이 맞게 말했듯이, 과거의 나는 아무리 작은 충동이라도 내키면 그대로 저질렀지만 이제 결정적인 행동 하나로 나 자신을 그런 충동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어. 선에 대한 내 사랑은 빌어먹게 보잘것 없을지 모르지만 그건 그대로 두면 돼! 그래도 악을 미워하는 마음은 아직 있으니까. 당신은 분통 터져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걸 보게 될 거야. "

 

파산 후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마크하임은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마지막 갈림길에서 결국 하나 남은 자유의 문을 열고 모든걸 내려놓는다. 선과 악이 갈등했던 내면에서 선이 고개를 내민다. 마지막 부분에서 마크하임에게 느껴지는 연민, 동시에 인간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 단편들은 환상적이면서도 꿈을 꾸는듯한 몽상적인 느낌을 풍긴다. 어린시절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으며 상상한 마법의 세계나, 비오는 런던의 한 상점이 그려지기도 한다. 또 그런 스토리의 즐거움을 넘어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의 시간을 선사한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기획자인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책의 해제에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자신의 행복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소개한다. 책을읽고나면 그의 말에 큰 공감을 하게된다. 그게 아이든 어른이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환상, 꿈의 세계에 닿아 있어 행복을 안겨주는 듯 하다. 그의 또다른 작품 중 장편인 '난파선'과 '발란트래 경'을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 '바벨의 도서관'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싶다. 마지막으로 이런 작품들을 선택한 보르헤스의 작품들도 읽어볼 생각에 설레기 시작한다. 얇은 책 한 권으로 몰랐던 큰 세상을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