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문학] 야간 비행 - 생떽쥐베리

멜로마니 2013. 3. 31. 17:21

 

 

 

 

 

 야간비행 │ 생떽쥐베리 │ 이정문 옮김 안미영 그림

 

 

 

 

지난 주말, 산울림 소극장 '야간비행' 연극을 보지 못했다면 좋은 작품 하나를 지나칠 뻔 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땐 전체적 맥락을 읽어내지 못해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이번의 경우엔 연극에서 눈여겨본 몇가지를 중심으로 읽으니 책의 아름다움이 성큼 다가왔다. 또 이 단편을 쓴 생떽쥐베리의 인생이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글을 읽을때 느껴지는 사실감과 진솔함이 어느때보다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는 실제로 이 작품속 '파비엥'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남아메리카의 우편비행 사업에 참여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 군용기를 조종하며 정찰비행을 하던 중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그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작품과 닮아있는걸 보니 작품 속 비행에 대한 단상이나 우편사업 속에 담긴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작가의 인생을 담담히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는 크게 두 가지로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다.

 

먼저 '밤'이라는 시간을 하늘이라는 공간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표현방식이 참 좋다. 비행사 '파비엥'이 야간 비행을 하며 내려다보는 밤의 세계는 땅에서 맞이하는 밤과는 한참이나 다른 세상이다. 그는 비행시간을 통해 땅과 떨어져있게 되면서 그와 거리를 두고 생각한다. 남아메리카를 하늘에서 바라보며 드문드문 불이 밝혀진 집들은 파비엥에게 소중한 사색거리가 되어준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 그들의 램프 앞에서 탁자에 팔을 괴고 있는 저 농부들은 자기들이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밤 한가운데에서 그렇게까지 멀리 미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파비앵은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오는 동안 숨쉬는 비행기를 깊은 공기의 물결이 치켰다 내리쳤다 할 적에, 그리고 전쟁 중인 나라 같은 심한 뇌우 속을 거쳐오며, 그런 가운데서도 달빛이 새어나오는 데를 통과할 때에, 또는 그 등불들을 차례로 정복한다는 기분으로 지나칠 적에, 그 욕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 농사꾼들은 자기들의 등불이 그 초라한 탁자를 비추는 줄로 생각하지만, 저들에게서 팔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는, 농부들이 무인도에서 바다를 향해 그것을 절망적으로 흔들고 있는 것처럼 벌써 그 등불의 부르는 소리를 마음속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

 

그는 그렇게 하늘아래서 인간을 만나고 관조한다. 어떤이가 이렇게 하늘아래서 세상을 보고 사람에 대해 응시할 수 있을까. 밤이라는 어두운 시간 속에서 밝게 빛나는 몇 가지의 것들, 그리고 그에 대해 홀로 하늘에서 생각하는 파비엥의 고독은 참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다음으로 야간우편비행의 의미에 집중해볼 수 있다. 야간우편비행은 실제 20세기 초 산업사회의 시작에서 시도된 하나의 사업이었다. 선박, 기차와 같은 다른 경쟁수단을 이기기 위해 야간에 비행기를 이용하여 유럽의 우편물들을 남아메리카로 옮기는 일은 언뜻 보기에도 위험해 보인다. 작품 속에서는 이 일을 추진한 인물로 '리비에르'가 등장한다. 그는 야간비행을 통해 들어오는 우편물들을 관리 감독하고, 비행사들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한평생을 이 일에 바쳐온 그는 엄격하게 조종사와 사무원들을 관리하고 실수역시 용납하지 않는다. 파비엥의 비행기가 폭풍우로 연착이 되고 위험한 상황이 된 순간에도 그는 조종사의 안전보다 일의 지연을 걱정한다. 혹여나 파비엥의 사고로 인해 자신이 맡아온 야간우편비행 일이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차가움도 느껴졌지만 그보다 큰 의문이 들었다. 바로 '책임의식' 이다. 인간이 가지는 일에 대한 '책임의식'이 어느정도로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신념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를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생명이 사라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속에서도 리비에르는 계속해서 야간비행을 강행한다. 그렇게 그가 가진 책임의식은 그를 주저없이 행동하게 만든다. 인간이 무언가를 위해 죽음을 넘어서는 선택을 하고 그 임무를 떠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새로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처음엔 애꿏은 조종사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야간비행을 명령하는 리비에르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오는 파비앵의 비행장면에서 나는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파비앵 역시 폭풍우치는 하늘 위에서 그 스스로 자신의 책임의식을 다하고 그 순간에 젖어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파비엥이 폭풍우 속에서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만난 하늘의 세계는 그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 솟아오른 바로 그 순간에 비행기는 별안간 이상하리 만큼 평온함을 회복했다. 비행기를 기울게 하는 파도 하나 없었다. 둑을 너머가는 거룻배처럼 비행기는 고요한 물로 들어서는 것이다. 비행기는 행복한 섬의 물굽이처럼, 알지 못하는 숨은 하늘의 일부분에 접어든 것이다. 폭풍우가, 비행기 밑에는 광풍, 물기둥 번개가 휘몰아치는 두께 삼천 미터의 별세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별을 향해서는 수정과 같고 백설과 같은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파비앵은 이상한 세계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손, 의복, 비행기 날개 할 것 없이 모두가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빛이 천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의 아래쪽과 주위에 한없이 쌓인 하얀 물체에서 발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어쩌면 파비엥이 만난 세상은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위해 자신과 인생을 다 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세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파비엥은 하늘로 돌아갔고 리비에르는 다시 또 야간비행을 지휘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아갈까.. '신념'과 '행동'. 그게 결국 인간의 역사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