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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일본 에세이열전 - 후지와라 신야, 기타노 다케시

멜로마니 2013. 2. 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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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동안 에세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그 첫 스타트가 기타노 다케시의 '죽기 위해 사는 법'. 한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뻔 했던 그는 그때의 경험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책 전체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앞부분에서 사고 이후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뒤로 갈수록 일본 사회의 문제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고를 담는다. 글을 읽어보면 그의 영화에서 처럼 참 쿨하다. 그게 기타노 다케시의 매력인듯 싶다. 어떤 생각, 일에 대해 무덤하게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자기식대로 판단내리는 것. 그런 그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책 곳곳에서 보였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해 사고하는 부분에서는 나와 생각이 많이 비슷했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나 자각 못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인간은 어떻게 보면 태어날때부터 슬픈존재인 듯 싶다. 그렇다고 죽으란건 아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래디컬'하게 살라고 한다. 자기 삶을 차분히 살펴보고 이성적이게 살아보라는 것.. 여기서의 '이성'이 나는 왠지 모르게 다르게 느껴지지만 그의 스타일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 속 한 문장을 남겨본다.

 

" 결국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자기 나름의 사는 법이 있고, 그건 남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쪽이 좋다는 게 아니다. 내게는 나의 삶이 있고, 벽에 부딪혔다고 그 방향을 바꿀수는 없다"

 

주어진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그렇게 죽음을 향해 살아가기. 우선은 그냥 살아보자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로는 후지와라 신야의 '인생의 낮잠'. 이 책은 여행을 하며 쓴 에세이 모음이어서 책을 펼치면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돌아서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를 읽을때처럼 기분이 묘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낀건 후지와라 신야가 가진 탁월한 '관찰력'이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물,현상들에 대해 그는 차분히 하나씩 살펴본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가 해주는 이런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신비롭고 특별하다. 인생을 둘러싼 신비로움에 대해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신야의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그처럼 내 생활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 일상과 이야기들 속에서 삶의 특별함을 끄집어내는 그의 능력에 새로운 책들을 읽을때마다 매번 설렌다. 그리고 그가 책에서 말해준 일련의 이야기들은 강렬하게 내 마음에도 남게된다. 이 책에서는 유난히 발리의 웃는 개 이야기, 일본의 고양이 섬 이야기, 아일랜드 섬의 아기 예수의 편지, 짧은 생을 살다간 고양이 이야기 그리고 오컬트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음은 '오컬트에 대한 상념'의 한 부분이다.

 

" '개인의 상실'도 오컬트를 향한 동경을 낳는다. 인류가 달에 발자국을 남긴 것이 상징적이다. 공포스럽게도, 자본주의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이나 인간의 비밀까지도 차례차례 정보화(상품화)시켰다. 즉 상상력의 영역을 소비해 버린 것이다. 사적인 상상 속에 안주하는 존재가 개인이라고 본다면, 우리들은 자신의 방에서 밀려 나와 노숙자가 된 셈이다. 텔레비전 CF가 제일 먼저 인간의 개인적 상상이나 욕망을 빼앗고 풍속화했다. 1969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덩그라니 남아 있는 달뿐이다. 상상의 세계를 펼칠 거리도 없다. 신비주의를 향한 호기심은 노숙자의 자기 집 찾기에 다름 아니다. "

 

감성과 이성을 적절하게 발휘하는 그의 글들이 참 좋다. 이 책은 특히 좋은 사진들이 많아 읽을 때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 다음으로는 신야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은 그의 책 6권 중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 에세이를 넘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가 겪은 일들과 특별한 이야기들이 정리되어 있다. 책의 첫부분에서 불교신자인 그는 일본 시코쿠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들 중 책 제목이기도 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가 담겨있다. 절에서 만난 한 부모가 꼬마아이에게 기도를 드리라고 말하는 걸 보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신야. 그 역시 어린시절 이모의 죽음 후 부모님에게 '기도'를 부탁받는다. 그순간 신야는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라는 걸, 자기를 묶어둔 이기적인 마음을 벗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 꼬마아이의 기도가 참된 기도라는 걸 깨닫는다. '무심(無心)'으로 손을 모으기에 대해 생각해본 순간이었다. 이렇게 그가 마주하는 삶 속 풍경들이 그의 지혜를 거쳐 글을 통해 나에게도 전해진다. 참 행복한 일이다. 이 책에서도 그 외 여러 이야기가 생각난다. 죽은 나비 이야기, 도쿄 이야기, 후지산을 본 사람, 물에 홀리다, 개 그림자 등.. 읽다보면 인생의 신비로움을 만나게 된다. 다음은 책 마지막장 후기의 한 부분이다.

 

" 어느 나라를 가봐도 인간은 죽음에서 신의 존재를 실감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의 형태, 혹은 차별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 불합리한 현실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또 여행 중에 수많은 '죽음'을 만날 때마다 거기서 어떤 신의 존재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불가피한 우연이 굴러다닐 뿐이다. 동시에 논리라곤 없는 이 죽음들을 어떻게 납득할 것이냐는 문제에 직면한다. 또한 죽음과 마찬가지로 우연의 산물인 '인생'의 의식과 목적을 재검토해야만 하는 곤경에 처한다.

그래서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삶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사방 1미터밖에 안 되는 방 안에 앉아 고민해 봤자 대답이 나올리가 없다. '움직이는'행위에 의해 어느샌가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고 급기야 자신조차 잊었을 때, 타인의 죽음에 대한 고민이 사실은 자기애(자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진 순간, 타인의 죽음도 가벼워지고 세계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

 

책마다 느끼는거지만, 그의 후기는 단순한 후기를 넘어 진한 깨달음을 내포한다. 그가 쓰는 글들의 방향이 담겨있는 부분이어서 항상 빼놓지않고 읽게 된다.

 

마지막으로 신야의 '아메리카 기행'. 이 책은 약 200일 동안 신야가 모터홈을 타고 미국을 누비는 이야기다. 이 책에선 다른 책들에서 느껴졌던 신비로움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그가 다녔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독특함들이 여러 장소, 사람, 이야기를 통해 소개되어있다. '모터홈', '맥도날드', '싸구려 모텔', 곧게 뻗은 고속도로 위의 황량함 등은 내가 그려왔던 미국이란 나라의 특성과 잘 맞아 떨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내가 신야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삶의 신비로움에 대한 그의 뛰어난 관찰력이기 때문에, 이 책은 지금껏 본 6권의 책 중 제일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대중성,획일성,개인주의라는 속성이 이런 기분을 느끼게 만든걸지도.. 신야가 그 부분을 정확히 잡아낸 것 같다.

 

 

이로써 4권의 리뷰 끝..! 왠지 아쉽네. 좋은 책들을 보면 괜히 아쉬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