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여행에세이] 후지와라 신야의 책 세 권

멜로마니 2013. 2. 7. 15:27

 

 

 

 

 

 

 

 

'인도방랑'부터 최신작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까지.. 그의 책 뒷편마다 적혀있는 '젊은이에게 살아갈 용기를 준 리얼리티가 넘치는 응원가'라는 말이 와닿는다. 인도방랑에서는 그가 보여주는 인도의 모습들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의 기준으로 책을 읽다가 나중엔 무너졌다. 혼돈이 왔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놓여있을 뿐이라는걸 책이 끝날무렵 느꼈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이 모든것들이 멈춰있을수도 떠날수도 사라질수도 있다는 걸, 내 안에 가둬두려하다가 그 안에 빠져서 아무것도 보고 느끼지 못할거란 메세지를 받았다. 그가 찍은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사진들, 담담히 써내려간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들엔 다른 책들과 같은 특별한 이야기,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없다. 그저 조용조용 그가 관찰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느낌이 강하다.

 

'여행의 순간들'은 후지와라 신야가 여행한 순간들과 그 사진속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인도,라다크,시리아,레바논,쿠바 그리고 부산까지 다양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중간중간 접어뒀던 페이지를 펴니 이야기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밤마다 산처럼 쌓이고 식당에 아무렇게나 먹고 난 생선 뼈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홍콩적 카오스에선 기괴함을 느꼈다.불평등을 인정하고 제도화된 차별을 만들어 최저의 생계를 보장받는 인도사람들을 보며 계급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코브라의 독을 마시며 매일 밤 이상한 쇼를 보여주는 도쿄의 동남아시아 점포들과 발리 섬 산 속에서 만난 구라미의 맛을 묘사하는 부분에선 유쾌하면서도 솔직한 인간의 본능의 표현에 즐거웠다. 그런 세상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난 '불쌍한 해피'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세이셸 제도의 마에 섬에 사는 변두리의 개 '해피'는 주인 '오조'가 떠난 이후 계속 바다에 나가 그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엠레'는 '해피'가 불쌍하다고하지만 신야에게는 그 말이 묘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는 엠레에게 하고싶은 말을 작은 소리로 암송한다.

 

" .. 엠레, 해피가 사람처럼 숫자를 세면서 오조를 짊어지고 있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오조가 떠난 바닷가에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 내일과 똑같은 내일모레가 있을 뿐이야. 머리 위의 태양처럼, 해피는 오늘밖에 몰라. 오늘의 몇 시간을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올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살고 있는 것뿐이야."

 

세상 곳곳에 놓여있는 사람들, 동물들, 식물들.. 이런 모든것들이 그 모습으로 사는 것을 응원하고 안아주고싶다. 모든 삶의 모습들이 그 만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는걸 다시한번 느낀다.

 

신야의 최신작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는 읽으면서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단편영화처럼 머리속에 그려졌다. 신야가 들려주는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한, 그리고 기묘하기까지한 이야기들.. 정말 일본냄새가 풍기는 이야기들이다. 신비롭고 뭉클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맨 끝의 저자의 말에 닿게 된다. 그 글 중 너무나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 이 같은 과정을 더듬어 태어난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썼던 책들과는 다소 느낌이 다르다. 그곳에는 내가 지금까지 거의 다루지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통주저음으로 흐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읽어 보니 거기에는, 인간의 일생은 무수한 슬픔과 고통으로 채색되면서도, 바로 그런 슬픔과 고통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받고 위로받는다는, 삶에 대한 나의 생각과 신념이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것 같다.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희생한, 타인에 대한 한없는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꺼지는 성화이기 때문이다."

 

오제에서의 죽음을 택한 구라모토의 아내, 죽음끝에서 발견한 삶의 용기를 이야기하는 기차에서 만난 여인, 자신을 밀쳐냈던 삭막하고 메마른 도시에 다시 담담하게 고맙다고 말하는 유리, 127번 국도 근처에 있던 '카페 메구미'..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일본 지하철에 놓이는 무가지에 연재된 이야기들이다. 매일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이 이야기들을 읽은 사람들도 나처럼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을 느꼈을테다. 후지와라 신야의 책들은 두고두고 읽게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산다는 것에 대해 남들과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말해준다. 그 작은 차이가 더 큰 뭉클함을 주고 나를 사색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그의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다.!

 


* 아직 읽지 않은 후지와라 신야의 책 *

- 티베트 방랑

- 메멘토 모리

- 황천의 개

- 동양기행 1,2

* 읽은 책들을 통해 읽고, 보고싶은것들 *

- 영화 '아메리카 아메리카'

  

(요즘 생각나는 책이어서 예전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