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문학] 축제 - 이청준

멜로마니 2013. 2. 23. 17:21

 

 

 

 

 

 

 

 

축제 이청준

 

 

 

책을 읽다가 몇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던지. 다 읽었을땐 결국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청준 작가의 소설 속엔 내가 그리워하던 한국의 옛 모습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들 속엔 우리네만의 따뜻한 정이 흐른다. 그는 '눈길' '기억여행' 그리고 '빗새이야기' 등에서 자신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역시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 대본을 위해 동시작업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후 만들어진 책과 영화는 어머니의 장례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 그러나 내가 그 '어머니'의 사연을 다시 취해 쓴 것은 이것으로 내 '어머니 이야기'의 결산편을 삼고 싶어서였다. 또 한 동기는, 재작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 과정이 계기가 되어 임권택 감독과 영화 '축제'의 대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어쩌면 소설도 한편 쉽게 씌어질 것 같다는 섣부른 망상을 품게 된 데서였다. 얼핏 생각하기엔 이야기의 줄거리가 대충 미리 짜여지겠다, 대본 진도와 함꼐 그 줄거리를 적당히 풀어 써나가기만 하면 될 듯싶어 보였으니까. "

 

소설가 준섭은 치매를 앓는 시골 어머니가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시골로 내려가 장례절차를 준비한다. 소설은 전통적인 장례절차를 따라가면서 진행된다. 그 과정 중 몇 몇 이야기들이 눈에띈다. 먼저 치매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온 외동댁 준섭의 형수는 그간의 설움을 토해낸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나온 이야기들은 준섭의 이복조카 '용순'의 등장으로 걷잡을 수 없게된다. 용순은 13년 전 집돈을 훔쳐갔음에도 뻔뻔하게 장례식에 나타난다. 준섭의 어머니는 생전에 집나간 용순을 누구보다 그리워하고 아꼈기에 용순은 그런 할머니를 만나러 온 것이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다. 그리고 평소 치매걸린 노모이야기를 써왔던 준섭에게 할머니를 팔아 돈을벌었다고 날카롭게 쏘아댄다. 이런 가족갈등이 장례 내내 이어지고 소설가 준섭에 대한 기사를 쓰고싶어하는 혜림의 방문으로 장례식은 더욱 정신없어진다.

 

발인 전날인 둘째날, 문상객들은 몰려들고 사람들이 벌인 술판엔 시끌벅적한 축제의 느낌이 든다. 장례의 특정 역할을 맡은 마을사람 중에는 술을 먹다가 잠들어버린 사람들도 있고 초경,이경.삼경을 지새우는 이 지방의 풍습에 따라 놀음판을 벌이며 밤을 새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던 중 술을 과하게 먹은 용순은 준섭에게 앙칼지게 쏘아붙이고 그러면서 밤은 흐른다. 그렇게 발인날이 되어 어머니를 묻은 준섭은 많은 생각에 잠긴다. 혜림은 그런 준섭에게 사진을 찍고싶다고 이야기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 어머니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준섭,외동댁식구,용순의 모습을 찍으며 소설은 끝이난다.  

 

전통적인 장례절차를 거치면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정서와 온 일생을 참고 견뎌냈던 준섭의 어머니는 모두가 마음속에 품은 '엄마'를 느끼게 한다.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들을 키워냈던, 그리고 그 응어리진 가슴을 그저 조용히 마음속에 삭혔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네 할머니들이 나이를 먹어 정신이 흐려지고 몸이 작아져가는 모습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할머니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키가 거꾸로 작아지고 기억력도 사라져 간다. 그렇게 자꾸 더 작아져 가는 키와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모두 우리 뒷사람들의 삶과 지혜로 전해져 있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당신들의 귀한 삶을 모두 우리 뒷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신다. 그래서 더 자꾸만 작아져 가는 키를 누가 함부로 만만해 할 것인가. 그래서 자꾸만 정신이 흐려가는 것을 누가 함부로 우스워할 것인가. 나누어 받고 이어받은 우리는 오직 감사하고 위해 드려야 할 일인 것을. "

 

글을 읽으면서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자신의 인생에 우리를 짊어지고 우리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행복으로 살아오신 할머니. 우리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주고 자신은 정작 그만큼의 사랑도 받지 못한 할머니. 이제야 바보같이 할머니의 사랑을 알 것 같다. 내가 할머니에게 받은 따뜻한 마음과 지혜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한편 소설 속 전통적인 장례절차는 그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있다. 염습절차에서는 돌아가신 이를 자식들이 씻겨드리는데 머리를 감겨 빗겨드리고 손톱 발톱을 깨끗이 닦아드린다. 우리를 평생동안 씻기고 입혀주신 분을 우리는 단 한번, 돌아가실때 씻겨 드리고 입혀 드리는 셈이다. 일평생을 사랑으로 우리를 씻기고 입혀주신 분에 대한 보답으로 마지막 단 한번 직접 씻기고 입혀드리는 과정은 돌아가신분과 남겨진 사람들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 과정인지를 보여준다.

 

좋은 구절 가득해 접어놓은 페이지가 많다. 이청준씨는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애환'이나 '정' 을 정감있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글을 읽을때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려온다. 아래의 인용도 너무나 좋아하는 부분이다.

 

" 소설가 이준섭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나긋나긋하고 맛있게 들려준 이야기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슬픈 이야기인데, 그의 입술에는 끝까지 미소가 떠나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깊이 내 가슴을 적셨던 아흔살 어머니 그의 어머니 기억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요즈음말로 하자면 알츠 하이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난 설날 고향으로 찾아뵈었더니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 집엔 빈 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요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책을 나무라 하고 이불을 멍석이라 하는가 하면, 강아지를 송아지라고, 큰며느님더러는 아주머니 아주머니 라고 부르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주로 사물들의 이름에서 그만 한없이 자유로워져 있으셨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사물들의 이름과 이름 사이에서는 아직 빈틈 같은 것이 행간이 남아 있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었는데, 다시 살펴보니 이를테면 배가 고프다든지 춥다든지 졸립다든지 목이 마르다든지 가렵다든지 뜨겁다든지 쓰다든지 그런 몸의 말들은 아주 정확하게 쓰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몸이 필요로 하는 말들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몸에는 몸으로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어떤 빈틈도 행간도 없는 완벽한 감옥이 있더라는 것이었는데,그건 우리의 몸이 빚어내는 눈물처럼 완벽한 것이어서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그리곤 꼬박꼬박 조으시다가 아랫목에 조그맣게 웅크려 잠드신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이셨더라는 것이었는데 <정진규의 '눈물'> "

 

소설을 통해 작가는 '축제'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몸에 갇혀버린 몸이 해방되는 기쁨을 맞는다. 그래서 육신의 고된 인생살이로부터의 해방은 하나의 축제일 수 있다. 유불선이 공존하는 우리의 전통은 독특한 한의 정서를 만들어내고 또 그렇기에 죽음으로써 해방되는 기쁨의 장례의 절차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시는 분을 기쁘고 정성스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

 

그럼에도 떠나보내는 길은 슬플 수 밖에없다. 이 책의 주인공 준섭은 스스로를 고아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노인이 가심으로 해서 당신과 함께 해온 지난 날의 일들을 누구와도 다시 이룰 수 없게 되는 것, 그 세월에 대한 증인을 잃는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세월만큼의 자기 삶의 역사를 잃는 것이기에 고인과의 추억은 귀하고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허전함은 준섭 자신을 고아로 느끼게 만든다.

 

기나긴 세월, 당신의 모든것을 자식에게 다 쏟아주시고 빈 육신과 영혼만이 남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부모님의 사랑. 이 소설 속 장례의 과정을 따라가던 중 만난 노모와 아들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서 미운정, 고운정 들어가며 끈끈하게 서로를 엮어주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 소설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 동경이야기 보고 떠오른 책. 예전 블로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