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대담집] 겪어야 진짜 - 후지와라 신야

멜로마니 2014. 9. 4. 23:32




겪어야 진짜 │ 후지와라 신야  김윤덕│ 푸른숲 




좋아하는 작가를 꼽아보라 한다면 '후지와라 신야'를 꼽는다.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려면 기본적으로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책을 모두 소장할 것이다. 나의 경우엔 그런 작가가 아직까진 후지와라 신야밖에 없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호기심있게 바라보는 그가 참 좋다. 그의 글엔 분별없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힘이 담겨있다. 그런 그만의 시각,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신간이 나왔다. 바로 '겪어야 진짜'다. 이 책은 한국인 기자와 후지와라 신야가 대담한 기록이다. 인터뷰어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지만, 그가 인터뷰를 통해 남긴 말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평소 막연하게 내가 추구했던, 지향했던 것들을 날카롭게 짚어주기에 접어놓은 페이지도 빼곡했다. 


후지와라 신야는 온 인생을 통해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는 다니던 미대를 그만두고 1978년 첫 여행지로 인도를 방랑했다. 이후 그의 여행기와 특별한 사진들은 책으로 엮여 많은 일본인들에게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정해지고 틀에 짜인 관광이 아닌 그곳의 삶과 사람들을 대면하고 응시하는 그만의 여행 방식은 직접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책을 통해 그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사람들은 모두 특별함을 담고 있다. 그 비결에 대해 신야는 이렇게 말한다.


" 매일 다니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갔을 때 전혀 다른 풍경과 감동을 만났던 여인은 원래의 꿈을 위해 유학을 떠납니다. 다른 길로 걸어간 행위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은 거지요. 나는 백 명의 생각과 한 명의 생각 차이는 무엇일까 늘 고민합니다. 그리고 백 명과 다른 방식을 선택합니다. 다르게 생각하기란,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의성 그 이상을 뜻하지요. 24 "


듣고보면 참 당연한 말이다. 남들과 다른 선택, 다른 경험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삶의 자세가 생겨나는 것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그걸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여관집 아들로 자란 그는 일찍부터 갖은 고생을 겪으며 독특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이를 바탕으로 생활력을 갖춘 그는 20대가 되어서도 자신의 욕구와 의지에 따라 삶을 살아나간다. 물론 여기엔 '여행'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왜 그렇게 여행을 하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지기 위해, 좌절을 맛보기 위해서 합니다. 여행은 자기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는 뜻이지요. 나는 스물네살 때 처음 인도에 갔습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내 안에 있던 가치관이 무너지고 패배하는 걸 목격했지요. 인도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환경, 다른 문화권에 가면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죠. … 낯선 문화, 낯선 땅에 가면 우리의 사고방식을 또 다른 거울에 비춰보게 되지요. 이처럼 여행을 하면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집니다. 그로 인해 다시 살아날 힘을 얻습니다. 43 44 " 


여행 속에서 '삶'을 발견하는 그는 책을 통해 오롯이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경험'이었다. 뭐든 남들과 다른 것을 선택하고 다른 것을 경험하는 그의 삶은 겪음을 통해 얼마나 자신의 색을 발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정직하게 자기색을 뿜어내는 그는 세상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마주한 세상은 모든것이 그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책을 통해 소개되는 그의 일련의 일생은 하나의 '청춘'으로 다가온다. 나이를 떠나 쉼없이 새로운 세상에 자신을 내놓는 그는 분명 청춘이다. 여전히 생생함과 뜨거움을 가진 그가 정의하는 청춘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만의 청춘을 정의내리며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일침을 가한다.


" 나는 일종의 집행유예 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춘이 아름답다, 멋지다고 하는 것은 바닥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일생을 여든까지라고 한다면 우리에겐 겨우 몇 년간의 집행유예 기간이 주어질 뿐이지요. 그 기간엔 종종 밑바닥에 이르기도 하지요. 그때의 삶은 '아메바'처럼 살아갔으면 합니다. 아메바는 뇌가 없지요? 장래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결점은 10년 후, 20년 후의 일을 미리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거리가 늘어날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인간은 10년 후, 20년 후의 오늘을 사는게 아닙니다. 오늘은 오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어요. 아메바는 순간밖에 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집행유예 기간에는 지금 이걸하면 나중에 어찌될까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주어진 매 순간을 열심히 사십시오. 신변에 집착한 나머지 요즘 젊은이들은 여행을 갈 때 보험에 든다고 하던데,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위험을 담보로 보험회사로부터 여러분의 젊음을 농락당하지 마십시오 163 "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주는 용기를 한아름 받았다. 그 덕분에 망설이고 주저하던 것들을 힘을 내어 해보겠다는 작은 결심도 하게 됐다. 나도 언젠간 그처럼 세상에 자연스레 나를 내놓게 되리라, 그리고 분별없이 사람을 만나리라 다짐도 해봤다. 그래서 나에게 후지와라 신야는 저 먼 세상에 끝에 서있는 사람이다. 거친 수풀과 바다를 헤쳐 진짜 세상을 만난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그쪽으로 건너오라 손짓을 해온다. 인간으로 태어나 모든걸 겪어낸다는 건 대단히 야무지면서도 위험천만한 결심일지 모른다. 나 역시 드넓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에 따른 무게감을 견디기 싫어 회피하고 숨어버리곤 한다. 그럴때마다 후지와라 신야는 그가 온 삶을 거쳐 만난 세상을 보여준다. 책 속에 펼쳐지는 그 신비로운 이야기들에 어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의 책을 덮을때면 나도 꼭 그런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싶다는 생각에 잠기곤한다. 후지와라 신야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 역시 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 같다. 










첫장을 넘기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에 난 푹 빠져버렸다. 

이렇게 끌리는 사람이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