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문학] 전락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멜로마니 2014. 4. 12. 16:38




전락 (카뮈 전집 6) │ 알베르 카뮈 │ 김화영 옮김 │ 책세상


'나'라는 존재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비겁함 때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의 비겁한 모습들이 눈에 더욱 잘 들어온다. 무언가를 할 수 있지만 자기는 못한다고 적당히 합리화 할 때, 혹은 우월성을 과시하지만 타인의 어떠한 고통도 줄여주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 난 '비겁함'을 본다. 어쩌면 일상의 매 순간이 자신의 누추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적당히 포장하는 과정일테니 비겁함은 항상 함께하는 익숙하고 무딘 감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락'을 읽으며 난 내가 가진 비겁함을 마주했다. 허영과 자기애에 빠진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는지를 들으며 나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누구도 사랑한 적 없는,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장'은 과잉된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모든 관심은 그로 향하며 자신을 둘러싼 지위, 명성, 칭찬에 스스로를 투영시킨다. 한마디로 '절대적 존재'란 착각에 빠진 그는 모든 걸 내려다보며 자신만이 최고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완전한 그에게 어느 날 결정적 사건이 찾아온다. 바로 센느강에 빠져 죽어버린 한 여성을 목격한 일이다.


소설 전체에서 이 사건은 띄엄띄엄 단편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만큼 장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진짜 수준 혹은 주제를 파악한 것이다. 그는 지금껏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다방면에 관심을 갖으며 착하게 살아왔다고 여겼지만 정작 자살하려는 사람은 구하지 못한 채 멍하니 쳐다만 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즉 자신이 가져왔던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철저히 부서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런 자신의 못난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중으로 분열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고통을 잊기 위해 쾌락에 탐닉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마주한 그 충격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힌다.


또한 소설 속 인물 '장'이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그는 어떤 것도 사랑해본 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자신밖에 모르는, 오직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어느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이 아닌 어딘가에 제대로 부딪힌 적도, 몸을 흠뻑 담가본 적도 없는 그는 일평생을 제스처만 취하며 살아온 전형적인 현대적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엔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온통 말뿐이며 자신을 과시하는 그의 모습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권층의 성격도 묻어난다. 결국 변호사 ‘장’을 통해 작가는 자기라는 환상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준 것 아닐까, 그럴듯 해보이지만 한번도 남을 안아본 적 없는, 그리고 알려고 한 적도 없는 무수한 인간들을 그리려 한건 아닐까.


하지만 무엇보다 카뮈의 '전락'이 소중한 이유는 인간인 '나'라는 실체를 비춰준다는데 있다. 소설 말미, 장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구하며 어떻게 고통을 이겨냈는지를 묻는다. 이 부분까지 읽다보면 장이 말을 거는 선생님이란 존재는 '나'라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카뮈가 읽는이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너도 혹시 장처럼 허상 속에서만 널 만들어오지 않았냐고, 아니면 '변호사'라는 그럴듯한 지위에 빠져 모든 걸 내려다보기만 하진 않았냐고. 그렇게 나는 '장'을 통해 존재라는 허상에만 젖어 삶에 부딪히지 못하는 실체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누구나 살다보면 분명 이런 일을 한번쯤은 만날 수 있다. 내가 가진 비겁함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내가 생각 했던 것과는 달리 스스로가 아주 더럽고 추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사건들. 장이 죽어가는 사람 앞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스스로를 확인했음에도 사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우린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포장하고 합리화 하려한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장’을 통해 내 비겁함을 마주했으니까, 그에 더해 소설 마지막 단락에서 장이 끝까지 합리화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날 변명하고 외면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다. 그처럼 비굴해지지 않고 싶다. 그래서 다짐한다. 난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있는 그대로 대면할 것이라고, 뛰어들 것이라고.


" 여러 해 동안 나의 수많은 밤들 속에서 그치지 않고 울리던 그 말, 그리고 이제 드디어 당신의 입을 통하여 내가 하려고 하는 그 말을 당신 스스로 입 밖에 내어 발음해보세요. "오오! 아가씨, 내가 이번에 다시 한 번 우리들 두 사람을 다 함께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한 번 더 물속에 몸을 던져주오!" 한 번 더라고요, 무슨 경솔한 말씀! 그래, 변호사 선생, 남이 우리 말을 곧이 듣는다고 한번 가정해보시죠? 그럼 정말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할 테죠. 아이구 떨려...... 물이 얼마나 차갑다고요! 그렇지만 안심해도 돼요! 이제는 때가 너무 늦었어요. 언제나 너무 늦은 것일 겝니다. 천만다행이지 뭡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