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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멜로마니 2014. 3. 23. 12:48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조지 오웰 │ 신창용 옮김 │ 삼우반



'시대정신'을 가진 작가, 그가 조지 오웰이다.

조지 오웰은 단언코 비범한 영혼이다. 우리에겐 동물농장, 1984와 같은 정치 및 세계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익숙한 작가지만 그의 작품들은 온전히 자신의 '삶'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이는 웬만한 경험과 통찰을 통해선 나올 수 없다. 영국의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관을 했던, 그리고 5년간 프랑스과 영국을 떠돌며 습작활동을 하던, 거기에 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뒤 2차 세계대전당시엔 전쟁을 취재한 그의 삶은 한편의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책'이다. 우린 오웰이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그가 마주했던 20세기의 혼란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이 자신의 삶을 통해 간절히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만나볼 수 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경우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나온 작품인 동시에 자전적 소설이다. 1928년부터 5년간 파리와 런던에서 떠돌며 어려운 생활을 한 그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인 셈이다. 경찰관이라는 공무원 생활을 접고 작가가 되기위해 그는 자진해서 파리와 런던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29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오웰이 있었던 파리와 런던 역시 실직자와 부랑자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그는 대공황 아래서 무일푼의 가난뱅이 생활을 시작한다. 소설속엔 파리의 허름한 싸구려 여관의 풍경들과 돈에 쪼들려사는 하층민들의 삶이 재치있게 그려져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오웰 역시 돈한푼 없기에 작품 전반엔 일을 찾기 위해 떠돌아 다니고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오웰이 비범한 존재란건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스로 '가난'에 뛰어든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세상을 만나고 자신을 내던져야 함을 알고 주저없이 행동한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던질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단순히 궁핍하고 가난한 자들을 쳐다보며 관찰하는게 아닌 직접 가난을 겪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오웰은 내일치 방세가 없어 이리저리 도움을 구하는가 하면 전당포에 옷을 맡겨 돈을 만든다. 어렵게 번 돈도 먹고 마시고 담배를 피면 금방 사라져버린다. '가난'이란 글자가 그의 삶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가난과의 첫 만남인데 이것이 너무나도 이상하다. 가난이라면 정말 생각도 많이 했고 평생 두려워해왔고 조만간 닥쳐온다고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닥치고 보니 완전히 다르고 또 시시하게 다르다. 아주 단순하리라고 여겼는데 복잡하기만 하다.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그저 궁상맞고 따분할 따름이다. 처음에 발견하는 것은 가난의 독특한 비천함, 어쩔 수 없이 겪는 변화, 복잡스러운 째째함, 떨어진 빵을 털어서 먹는 일 따위이다 "


그렇게 순식간에 가난해진 그는 거기에 모든걸 내맡긴다. 그리고 근근히 이어가는 생활 속에서 접시닦이 일을 구하고 희망없는 중노동을 경험하기도 한다. 잠잘 시간도 없이 새벽에 나와 하루종일 낮은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그에게 내일은 없다. 휴식이라면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여관에 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버리는 시간들 뿐이다. 그렇게 그의 삶을 만들어내는 가난이란 존재는 작품 곳곳에서 그 민낯을 드러낸다.


소설 후반부는 영국으로 건너간 오웰이 부랑자 구호소를 전전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열악한 환경의 부랑자 구호소엔 당시 대공황의 여파로 수많은 실업자들이 있다. 하지만 구호소가 마련한 대책은 거의 전무하다. 하루만 겨우 재워주고 쫓아내기에 매일 구호소를 전전해야하는 오웰이 매순간 영국 실업자 대책의 한계를 만나는 셈이다. 소설 말미, 오웰은 이렇게 말하며 밑바닥 생활을 맺는다.


"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변변찮은 이야기일 뿐이고 그저 여행 일기가 주는 흥밋거리쯤은 되었기를 바랄 따름이다. 혹시 무일푼이 되면 당신에게 이런 세계가 기다린다는 것 정도만은 말할 수 있겠다. 언젠가는 그 세계를 더 철저히 탐구하고 싶다. 우연한 만남이 아닌 허물없는 사이로서 마리오, 패디, 동냥아치 빌 같은 사람들을 알고 싶다. 접시닦이, 부랑인, 강변 둑길 노숙자의 영혼 속에는 정말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


본래 하층민이 아니었던 오웰은 5년간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는 전혀 다른 삶에 던져진다. 가난을 글자로 익히고 머리로만 생각해왔던 그에게 '가난의 언저리'정도의 체험은 강렬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이 누리는 것들을 버리고 그와 정반대의 삶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을까. 오웰은 모두가 외면했던 하층민의 삶을 살아냈기에 인간과 세상을 껴안을 수 있었다. 이것이 그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신호탄이 아닐까. 이제 그가 왜 파리와 런던에서의 가난한 삶을 결심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