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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삶을 위한 철학수업 - 이진경

멜로마니 2014. 1. 26. 01:26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진경 │ 문학동네



이진경(본명 박태호) 교수의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은 첫 만남인데도 편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우리시대 명강의 시리즈 중 5번째인 '삶을 위한 철학수업'은 구체적으로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부제인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가 의미하는 것 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어떻게 자유를 실현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 실마리를 던져주는 셈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한 줌의 용기'라는 표현을 쓰며 자유의 삶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총 4부로 20개의 강의로 나눠진 본문에서는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 작은 차이를 만들지, 그리고 어떻게 용기를 내야 할 지를 이야기한다.


이분의 내공을 느낀건 책장 바로 처음인 '머리말' 부터였다. 현재 한국 사회를 이렇게 또렷하고 명쾌하게 글로 표현하다니.. 최근 읽은 어떤 글들보다 와닿는 이야기가 많았다. 머리말만 읽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우리가 살아내야하는 삶이 잘못되었다는 걸 절감할 수 있다.


"삶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유난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전체 노동자의 반을 차지하고, 사회는 모든 곳에서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이들은 가속적인 유행을 따라 소비의 연쇄 속에서 삶의 공허함을 잊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학교에선 입시와 경쟁의 체제 속에서 아이들은 풀 길 없이 늘어가는 스트레스에 억눌려 이런저런 '정신질환'으로 지쳐가고 있고, 미치지 않기 위해 그 스트레스를 가장 약한 친구를 향해 쏟아붓는 폭력의 가해자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팍팍한 시간을 통과한 노인이라고 다른 것은 아닙니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새로운 활동은 고사하고 하던 일마저 끝내야 하는 기나긴 말년의 시간이 늘어나 젊은이들이 피하는 일을 새로 시작하거나 그게 아니면 공원 주변을 배회하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실의 고통을 보여주며 저자는 이걸 직면하고 대면하는 힘이 '자유'에 있음을 강조한다. 자유는 이러한 현실을 대면하는 것에 있음을, 그리고 대면하는 세상의 크기만큼 내가 행동함으로써 자유의 크기는 커질 수 있음을 말한다. 본문에선 구체적으로 그 자유의 모습들이 나온다. 특히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와 관련된 영화와 책으로 함께 풀어지기에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이 좋았던건 '자유'가 가진 해방감과 묵직함을 동시에 보여줬기 때문이다. 분명 자유는 고통받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탈출구이다. 자유를 통해 우린 현실 속 뻔한 인생을 벗어나 나만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유엔 무거운 책임도 따른다. 누군가가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 한국사회와 기성집단이 반대하는 행동을 한다는건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매순간 우린 그런 기로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일에서도 새로운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만들어진 길을 갈 것인지는 발목을 붙잡는다. 저자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용기를 준다. 분명 그 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아주 조금만 벗어난다면, 한 발자국만 움직인다면 그만큼 우리의 삶과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내가 강자인지 약자인지를 확인하는게 아니라, 고통이나 대결을 함축한 채 지금 다가오는 삶과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대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강자와 약자는 따로 존재하는 어떤 인물들의 유형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방향, 두 가지 삶의 방식인 것이다. 자유란 그 두 선택지 앞에서 어느 하나를 택할 자유가 아니라, 약자의 길과 동시에 다가오는 또하나의 길, 노예적 삶과는 다른 삶을 살 가능성을 지칭하는 이름일 것이다.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매혹의 이름일 것이다. (53p)"


'매혹', 책에서 보여주는 자유의 매혹적인 모습들은 독자에게 또다른 길이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준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고민과 동시에 용기도 얻게된다. 앞으로 매순간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또다른 길을 가게 되도 거기엔 생각지 못한 매혹이 기다릴 것을 알게 되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를 향한 삶을 꿈꾸고 싶어졌다. 자유를 통해 느끼는 고통,사랑,자긍심,불편함과 같은 것들이 삶으로 들어올 때 인생은 새롭게 변주될 것이란 걸 느낀 것이다. 그렇게 내딛은 새로운 길에서 사건은 생기고 그 사건들은 인생을 생각치 못한 길로 또 이끌어 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도 정해진 루틴이 아닌 새로운 시도와 경험에서 지금의 내가 있었기에 '사건'의 수만큼 인생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자가 '사건'으로 보여주는 용기를 전하고 싶다.


"우리의 삶은 사건을 통해 크게 구부러지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생에서 사건이란 그런 것이다. 이전에 바라고 예상했던 목적지와 다른 곳을 향해 가도록 한다. '일생일대'라는 관형어로 수식되는 거대한 사건만 사건일 리 없다. 많은 사건들이 있다. 내 인생의 궤적을 구불구불하게 구부러뜨리는, 그래서 누군가의 일생을 알고자 할 때 우리는 이처럼 곡절을 만드는 사건들을 본다. 곡선을 구부리는 특이점들을, 인생이란 특이적 사건들의 집합인 것이다. (25p)" 


책을 읽으며 많은 페이지를 접어두었다. 그만큼 와닿고 힘을 얻은 부분들이 많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책을 덮을땐 자유의 묵직함이 느껴져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저자가 전하는 한줌의 용기를 얻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용기로 매순간 조금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