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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 에밀 졸라

멜로마니 2014. 1. 20. 20:09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 에밀 졸라 │ 박명숙 옮김 │ 시공사




'백화점'은 자본주의 사회 속 소비의 상징이다. 현대적 소비를 의미하는 백화점은 그 시작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백화점은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소비의 축일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로 여기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있다. 이미 130년 전인 1883년,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는 자본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백화점'의 탄생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그 공간 속 인간 군상을 담으려 했다. 당시 파리에선 '부티크'로 대표되는 전통적 소상공인과는 반대되는 현대적 백화점이 만들어지면서 도시의 소비방식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는 그 변화의 순간 속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다.


총 1,2부에 걸쳐 '드니즈'라는 시골 처녀의 파리 상경기를 담아내는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먼저 자본주의의 태동기인 당시 사회의 모습이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소설 속 파리는 현대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파리는 1853년부터 13년간 파리 지사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이 주도한 '오스만화- 현대화 프로젝트'로 오늘날 파리의 모습처럼 현대적 도시 정비를 했다. 에밀 졸라는 이렇게 현대화가 진행되는 도시의 모습을 소설 속에 자세하게 담아낸다. 특히 1852년 최초의 백화점인 '봉 마르셰 백화점'의 탄생은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결국 '백화점'이란 현대적 소비 공간을 통해 '파리'로 대표되는 대도시와 도시민의 삶을 담아내려 한 것이다. 


백화점과 같은 새로운 소비 방식과 공간의 탄생은 근대적 상업 구조의 쇠퇴를 함축하기도 한다. 소설 속 드니즈의 큰아버지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소상공인이다. 자신들의 고객을 빼앗아간 백화점을 증오하며 이들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자본'의 힘은 그들에게 좌절만을 줄 뿐이다. 이런 와중에 시골에서 올라와 두 동생을 키워야 하는 드니즈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백화점의 높은 판매 목표를 위해 기계처럼 일하고 혹사당하는 그녀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이를 악문다. 결국 비수기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쫓겨난 뒤 근처 부티크에서 일을 하지만 이후 백화점 사장인 무레가 주변 부티크를 매입해 백화점을 키우겠다는 야망을 키우면서 다시 그녀를 백화점으로 데려오고 소설의 2부가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의 1부는 주로 기계적이고 판에 박힌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방식과 싼값의 똑같은 제품을 구입하는 대중적 소비 방식을 섬세하게 그린다.  여기서 보여지는 노동자의 삶, 소상공인과 백화점의 대립 그리고 '마담'으로 대표되는 소비의 욕망은 소름끼칠 정도로 현재와 닮아있다. 백화점 사장인 무레의 생각을 살펴보자.


" .. 그러자 지금까지 얘기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위쪽에, 여성이라는 존재를 깊이 파악하고 적극 활용하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자본금을 끊임없이 재투자하고, 물건들을 한군데로 집중시켜 쌓아두는 전략을 구사하며, 싼 가격으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상표에 정가를 표시함으로써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의 출발점에는 여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화점은 앞다투어 경쟁적으로 여성의 마음을 빼앗고자 애썼다. 화려한 쇼윈도로 여성을 현혹시킨 다음, 사시사철 이어지는 바겐세일의 덫으로 그녀를 유혹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육체 속에 새로운 욕망을 주입시켰다. 그 모든 것은 여성이 필연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알뜰한 주부로서 구매를 시작했다가 점차 허영심이 발동하면서 마침내 유혹에 홀딱 넘어가고 마는 식이었다. 백화점은 엄청난 물량의 판매를 통해 호화스러움을 대중화시키고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소비를 촉진했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상징인 '백화점'은 돈으로 허영과 욕망을 부추기며 여성들의 환심을 산다. 소설 속에서 그 메커니즘을 만드는 인물은 백화점 사장 '무레'다. 돈이 제일 중요한 가치인 그는 이 소설의 두번째 포인트인 자본주의 속 인간을 보여준다. 그래서 2부는 '돈'으로 모든걸 사려하는 무레와 그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 '드니즈'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다시 백화점에 들어간 드니즈가 따뜻함과 인간미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고 무레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드니즈 역시 무레에게 끌림과 사랑을 느끼지만 돈으로 여자를 쉽게 만나온 그가 왠지 모르게 멀게만 느껴진다. 무레는 드니즈 역시 돈으로 사려 하지만 그녀는 번번이 거절한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대상을 처음으로 만난 무레는 좌절한다. 처음 '사랑'을 느낀 것이다. 진짜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음을, 그래서 돈은 최고의 가치가 아님을 알고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착각하며 살아온 그는 드니즈를 사랑하는 마음을 돈으로 맞바꾸려는 욕심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드니즈는 백화점을 떠나겠다고 밝히며 최후의 통첩을 알리고 결국 무레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다. '사랑'을 받아들이고 무릎 꿇은 것이다. 그렇게 소설의 마지막에선 무레가 드니즈에게 마지막 진심인 '사랑'을 내보인다.


"..그는 점차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지막 장애물은 그를 미치게 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 같은 제안에도 여전히 자신을 거부하다니! 3천 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엄청난 재물을 두 팔에 하나 가득 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아득하게 전해져 왔다. 저기 놓여 있는 100만 프랑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삶의 아이러니가 그를 비웃는 듯 그 돈은 그에게 고통을 안겨 줄 뿐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 돈을 모두 길가에 내던지고 싶었다. "그렇다면 떠나시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외쳤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에게로 가버리란 말이오. ...... 그래서 이러는 게 아니오? 당신은 내게 이미 그 사실을 귀띔했었소. 진작 그걸 기억해서 당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야 했소." 깊이 절망하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드니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왔다. 드니즈는 그에게로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그와 함께 흐느끼며 더듬더듬 말했다. "오!그래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


이렇게 무레가 사랑앞에 자신의 모든걸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그 순간, 드니즈는 그에게 감춰둔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는 돈이 아닌 '무레'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그것이 최고라 생각하는 무레가 아닌, 자신의 사랑이 좌절되어 초라할 지라도 그녀에게 순수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무레'를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무레가 사랑의 가치를 깨닫는 그 순간 둘은 서로를 안는다. 사랑 앞에서 돈은 거추장스러운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우린 종종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 소설과 같은 이야기들을 접하곤 한다. "사랑? 이젠 돈으로 사겠어"와 같은 대사는 철지난 드라마 속 유행어로 남기도 했다. 이렇게 키치적으로까지 변해버린 설정은 '돈'으로 상징되는 현대 여성의 남성상을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그걸 알아야한다. 에밀 졸라가 치밀한 고증으로 그려낸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한 것을. '돈'은 지난 1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랑'과 맞바꿀정도로 강력하게 커져왔단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오랜시간 돈의 힘이 커져 사랑을 밀쳐내고 우리 위에 군림해왔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우린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돈을 아무 자각없이 떠받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돈을 위해 소중한 가치들을 맞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됐다면 우린 이제 순수한 마음을 지켜내야만 한다. 드니즈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무레가 돈의 마비에서 벗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사랑'이란 소중한 가치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암흑 속에서도 지켜질 수 있다. 그게 130년전 드니즈와 무레의 '사랑'으로 자본주의 시대 속 흔들리는 인간을 보여준 에밀 졸라의 메세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