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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벨아미 - 모파상 (송덕호 옮김)

멜로마니 2013. 12. 7. 20:23



벨아미 │ 모파상 │ 송덕호 옮김, 민음사


모파상의 소설은 '재미'라는 매력이 돋보이는 것 같다. 가독력 있는 글이 머릿속으로 상상을 마음껏 펼치게 만들어 준다고 해야 할까. 비곗덩어리, 삐에르와 장 같은 장편소설이나 목걸이, 환상 단편집과 같은 단편 소설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모파상의 소설이 소중한건 재미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난 그 무언가가 고차원의 조롱과 풍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그 사회의 관찰을 통해 나약한 부분을 들춰내는 것, 그게 모파상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에 다다른건 '벨아미'를 읽고 나서였다. 소설 벨아미 속에서 나오는 조르주는 한 인간의 야망이 어디까지 사람을 갉아먹는지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야망'이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조르주는 군대를 다녀온 후 출세의 꿈에 부풀어 파리에 오지만 당장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는 가난한 청년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사에서 일하는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 신문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며 그의 야심은 싹트기 시작한다. 제대로된 글도 한 줄 써본적 없지만 그는 특유의 솜씨를 이용해 남의 힘을 빌려 조금씩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간다. 더 큰 꿈을 위해 상류층의 모임에도 손을 뻗기 시작한 그는 우연히 마렐 부인과 불륜관계에 빠지고 그때부터 돈과 사랑을 맞바꾸기 시작한다. 사랑이 돈으로 바뀌는 순간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조금씩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낭비와 사치에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는 조르주는 어느새부턴가 마렐 부인이 주는 돈을 기다리게 된다. 불륜이지만 부인에게 사랑을 느꼈던 그가, 처음 돈을 받았을 땐 화를 내며 물리쳤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여자가 주는 돈을 오히려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이 소설엔 흥미롭게 묘사된다.


"말해 두지만, 이젠 전날 같은 장난은 그만둬. 자꾸 그러면 나도 화를 낼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교묘하게 틈을 노려서 바지 호주머니에 또 20프랑을 넣고 갔다. 그는 그것을 깨닫자마자 '제기랄!'하고 소리쳤지만 마침 수중에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용돈으로 쓰려고 조끼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런 구실을 붙여서 양심을 속였다. '한꺼번에 모아서 갚으면 돼. 이건 결국 빌린 돈일 뿐이니까.' 신문사의 회계사는 그의 필사적인 부탁에 져서 매일 5프랑씩 지불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식비로 충당되어 60프랑의 빚을 갚기에는 모자랐다. 그런데 클로틸드가 또다시 파리의 이상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밤마다 나다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술에 취한 듯이 산책한 뒤에 어느 주머니 속이나 구두 속, 혹은 시계 뚜껑 밑 등, 그날그날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금화를 하나씩 발견하더라도 이제는 그다지 심하게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돈과 사랑의 거래는 조르주를 야심가로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 상류층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조르쥬는 포레스티에의 부인과 결혼한 뒤 신문사 사장 부인의 애인이 되기에 이른다. 돈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나이든 여자와의 사랑도 아무렇지 않게 연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사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건 신문사를 손에 넣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조르주의 야심 뿐이다. 신문사 사장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부인의 간통을 이혼사유로 들어 쫓아낸 조르주에게 사랑은 그저 하나의 장난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에게 사랑은 돈을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조르주의 성대한 재혼 파티 장면에서 끝나지만 내 마음은 불편했다. 사랑이 돈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순간이 큰 눈덩이가 되어 삶을 집어삼킨 모습에 씁쓸함이 일었다. 돈, 명예를 위해 사랑을 이용하는 것, 즉 사랑이 무언가의 수단이 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자신의 돈과 명예를 위해 여자의 환심을 사고 이용하는 조르주의 모습엔 왠지모를 익숙함도 느껴진다. 야망이란 환상을 잡기위해 사랑과 진심을 저버리는 경우는 흔한 일이 되버린 요즘, 조르주의 모습은 슬픈 군상중 한 단면이란 생각이 든다. 책 속 조르주의 모습 어디에도 따뜻함은 베어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여자들에게 사랑을 말했지만 난 어떤 책보다 차갑고 메마른 주인공을 발견했다. '벨아미'로 불리는 그에겐 사랑이 야심이었다. 이제 야심이 어떻게 사람을 만드는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