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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똘스또이. 이강은 옮김

멜로마니 2013. 7. 26. 20:57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똘스또이 │ 이강은 옮김 │ 창비세계문학 7

 

 

 

 

이렇게 강렬한 단편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진한 단편이 또 있을까. 내가 읽은 똘스또이의 작품 중 가장 응집력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평소 의문을 가지고 고민해오던 '삶'과 '죽음'에 대해 예리하고 압축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어떻게 100년도 더 지난 한 러시아의 작가가 지금까지도 우리가 고민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도 우린 뜻하지 않게 태어나고 죽음을 겪는 인간의 운명을 지녔기에, 똘스또이가 품은 고민들 역시 지금의 우리에게 큰 자양분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혜안을 선사한다.

 

소설 속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법관이다. 상류층을 대변하는 그는 자신의 지위와 부를 늘리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그 옆엔 허영심 가득한 부인이 있다. 그의 가족은 그가 벌어다주는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물주의 역할일 뿐 아버지나 남편으로서의 감정적 교감은 없다. 그런 그가 병에 걸린다. 점점 고통이 심해지자 심각한 병임을 깨닫고 의사를 찾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의사들과 가족들. 어느 누구도 이반 일리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나을것이고 괜찮아 질것이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점점 짙어져 오는 죽음의 그늘.. 그는 그렇게 생각지 못한 죽음이 가까워져오자 정신적 혼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타인의 시선으로, 남들의 눈으로 보이게 좋은 삶을 살았다고 느낀 그는 모든것이 덧없고 헛됨을 느낀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남의 눈을 좇아 살아온 그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결혼... 너무나 절망적이고 환멸뿐이었다. 아내의 입 냄새, 애욕과 위선! 그리고 죽은 것만 같은 공직 생활과 돈 걱정들, 그렇게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십년이 가고 이십년이 갔다. 언제나 똑같은 생활이었다.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거야. 그래, 맞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산을 오른다고 보았지만 내 발밑에서는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던거야..."

 

그렇게 그가 자신의 삶이라고 여겨왔던 모든것들이 그의 생명을 옥죄고 허상만을 남겨놨을 때,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죽음 역시 인정할 수 없게된다. 그렇게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오지 못한 삶, 그렇다고 누군가의 강요도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온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응시할 수 있는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져 올 수록 , 그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객관화 한다. 이와 관련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 그가 살아온 인생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에는 전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높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 싸우고 싶었던 마음속의 어렴풋한 유혹들, 생각이 나자마자 신속하게 털어버렸던 그런 은밀한 유혹들, 어쩌면 바로 그런 것들이 진짜고 나머지 모든 것은 다 거짓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일과 삶의 방식, 가족, 사교계와 직장의 모든 이해관계도 다 거짓인지 모른다. 이반 일리치는 자기 자신에게 그 모든 것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갑자기 자기가 변호하려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허약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무엇 하나 변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과 욕망으로 살아온 스스로를 대면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순간부터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진짜 삶이 된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게 된 그는 어딘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을 놓아줄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코앞에서도 자신의 삶은 한순간을 통해 깨달음과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가족들을 보며 미안함과 용서를 보낸다. 그리고 가족들을 아프게 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은 사라진다. 그렇게 찾았던 죽음의 공포는 온데간데 없고 빛만 남아있을 뿐이다. 죽음이 빛으로 바뀌는 한순간, 그 단 한순간을 통해 이반일리치는 자신의 삶을 끌어안게 된다. 결국 삶의 의미는 단 한순간을 통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음을,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대면하고 가슴으로부터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함을 이 작품은 말해준다.

 

읽으면서 어떤 작품보다 공감했다. 존재의 이유, 삶의 의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다시 한 번 문학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느낀다. 작품을 읽으며 중간중간 이반 일리치가 느낀 죽음의 공포를 함께 느끼고 함께 회한에 젖어들었다. 언젠가는 끝날 인간의 숙명을 더없이 무겁게 느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린 살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내 삶을 바라보게 될 때, 그리고 그 삶의 균열을 발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 그것이 삶의 의미이고 살아야 하는 이유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 균열과 고통을 만나게 되는 순간, 이 작품 덕분에 좌절보단 희망을 꿈꾸게 될 것 같다. 내 삶과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