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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서평]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 지주형

멜로마니 2013. 6. 3. 21:43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 지주형 │ 책세상

 

 

 

 

 

경제학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원론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일어나고 시장균형이 일어나는 과정을 배우지만, 현실세계는 경제학 책 속 시장모형처럼 단순하지 않다. 한국사회만 봐도 그렇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구조, 커져가는 양극화, 청년실업률의 증가, 비정규직의 증가 등 경제학이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을 생각하기 전에 한국경제의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현재 우리가 가진 경제문제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면 보다 자연스럽게 경제학에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고른 주제는 ‘신자유주의’였다.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된 ‘신자유주의’. 그 짧은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가 한국사회에서는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라는 책을 골라 두 달간 읽고 정리했다. 책은 크게 신자유주의 이전과 이후의 세계 역사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 및 전개과정을 담고 있다. 결론에서는 현 한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에 대해 생각해본다. 전체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키워드로 역사를 훑어본 후, 한국이 개발국가에서 신자유주의체제로 변화되는 과정과 그 내용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즉, 지구적 변동 속에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라는 물결아래 한국이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다.

 

먼저 70년대 대처와 레이건이 보였던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국가개입 최소화’, '개인의 자유 극대화‘,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자원 배분 효율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금본위, 고정환율제, 보호무역등과 같이 국제 자본이동을 통제했던 브레턴우즈체제가 붕괴함에 따라 ‘금융의 자유화’, 그리고 ‘자본이동의 자유화’라는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변동환율제가 되면서 외환가격이 변하게 되고 그에 따른 차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금융투자와 자본의 이동이 전지구적으로 이루어지고, 미국을 상징하는 ‘달러’와 ‘월스트리트 체제’는 금융화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월스트리트-IMF-세계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미재무부등은 신자유주의 지구 정치 경제를 관리하고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이 어떻게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 그 결정적 계기에 "IMF 위기‘가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한국을 IMF 구제금융으로 몰아간 것은 미국인들이었지만 ‘IMF 플러스’ 개혁안을 먼저 제시하고 받아들인 것은 한국인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IMF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IMF 개혁을 충실히 따르지 않은 태국, 인도네시아 등과 달리 한국은 IMF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위기 상황과 IMF의 개입이 그간 진행되어왔던 한국 신자유주의 경제관료의 기업,금융,노동개혁과 금융 자유화 및 지구화 노력에 한시적이나마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처럼 김대중정권에서 위기타개를 위한 IMF와의 합의사항은 IMF의 통상적인 개혁안과 미 재무부, 월스트리트의 요구 외에도 한국 신자유주의 관료의 제도 개혁안을 반영했다. 당시 IMF와의 합의사항에는 없었던 금융개혁법, 부채비율감축, 그리고 정리해고제 및 파견근로자 제도등이 이에 해당한다. 결국 미국의 요구와 신자유주의 관료들의 정책을 수용하여 기업들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 법을 재정비 하게 된다. 또 동시에 노동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을 법제화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위기관리 방법은 혹독한 IMF의 구제금융 조건을 들어주는 것과 동시에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해소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금융기관의 금융건전성 회복을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과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현재 금융의 힘이 거대해진 배경이 되기도 한다. 국가가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대신 큰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은 당시 재벌들의 계열사정리에도 활용이 된다. 삼성,대우,현대등 다량의 부실계열사를 거느렸던 재벌들은 재무건정성과 부채비율에 따라 주력산업 이외의 회사를 정리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삼성의 경우, 현재 전자산업분야에 집중함으로써 전세계적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국가가 개입한 구조조정과 공적자금의 투입이 현재 금융화와 소수재벌이 과두권력이 된 배경이 된 셈이다.

 

김대중정권이 신자유주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 ‘금융-자본시장 개방, 외자유치, 그리고 수출에 대한 강조’는 이후 노무현정권과 이명박정권까지 이어진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동북아 금융허브 모색, 한미 FTA 추진등은 개방의 가속화 현상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무제한적 자본이동의 자유와 금융화는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먼저 ‘신자유주의 관료-재벌-초국적 자본’ 이라는 세 가지 권력이 경제를 끌고 가는 구조를 형성한다. 관료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만들어내면 대기업은 이를 이용해 재벌이 된다. 또 주가 증시 및 금융투자가 증가하면서 대기업은 장기적 기술투자가 아닌 단기적 수익을 위한 금융투자에 집중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을 증가시킨다. 마지막으로 초국적 자본은 규제 없는 한국 금융시장에 들어와 이익만 챙기고 떠난다. 세 권력이 한국 경제를 독식하는 꼴이다.

 

98년 IMF 구조조정 이후 15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큰 특징 두 가지를 뽑자면, 금융화로 인한 금융적 축적의 확대와 개방과 대외의존의 심화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한 내수부진, 양극화, 가계부채 증가, 실업률 증가는 지금까지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떠한 근본적 대책도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철저히 부합하는 정책들만 추구해왔을 뿐 그것을 막을만한 장치나 보완책들은 극히 미비하다. 소수의 경제 관료가 재벌 입맛에 맞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초국적 자본의 국부유출을 용인하는 모습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와 관련하여 결론에서 저자는 고용불안, 노동시간 연장, 자기계발과 재테크, 출산율 저하등 한국 신자유주의가 보여주는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핵심에 ‘실질적 민주주의’가 있다. 이는 소수의 권력이 경제체제를 독점하는 것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정책 결정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토론과 공론이 형성되는 경제민주주의로 나타난다. 또한 저자는 공동체의 후생을 위해 생산,유통,분배하는 사회적 기업과 같은 ‘대안적 민주주의’도 제시한다. 이 두 가지 대안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경제와 민주주의의 상관성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시장이라는 자원 배분 방식은 정치적 과정과 항상 결합해 있다는 것, 자원의 배분에서 시장은 기껏해야 일부분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시장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서조차도 경제적 자원 배분의 핵심적인 부분은 초국적 자본과 통치기구, 국가관료, 전문지식 엘리트와 같이 정치적이고 권위적인 기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원 배분 방식이나 원천의 대안으로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결여된 ‘경제민주주의’와 최근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를 제시했다. ”

 

나는 이 부분에서 제일 큰 깨달음을 얻었다. 평소 ‘시장’과 ‘민주주의’는 상충하는 것으로 생각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그 ‘시장’을 배분하는 핵심적 위치에 몇몇 소수 권력들이 있다는 점은 경제 내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신자유주의라는 큰 물결을 만들어내고 지대를 추구해온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 안에 휩쓸려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 방식으로 살아가고 삶은 불안에 흔들린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래도 가정을 해본다. 강제된 IMF 구제금융이 아니었다면, 외환확보가 강조되어 수출 대기업의 권력이 커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금융화와 금융개방이 제한적이었다면 지금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희생해서 우리가 얼마나 성장에 성공했는지 의문마저 든다.

 

그래서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새삼스레 경제학의 중요성이 느껴졌다. 역사와 정치의 변동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움직이는 모습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또 경제학이 설명해주는 경제 원리는 현실세계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하나의 프레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프레임을 가지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학’이라는 프레임을 만나 공부하는 것은 물질만능주의를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내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이런 잘못된 세상 속에서 제대로 살기위해, 그리고 비뚤어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사고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