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사회]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엄기호

멜로마니 2013. 5. 27. 22:56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엄기호 │웅진 지식하우스

 

 

 

강신주씨의 책들이 '인간'으로 살며 겪는 화두들에 대해 철학적 접근을 한다면, 엄기호씨의 책은 더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에서 '20대' 거기에 '대학생'이라는 맥락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분석한다. 대학에서 강사를 하며 아이들과 토론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조섞인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모습을 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부모님 세대와의 갈등, 희망없는 내일, 그리고 우리편이 아닌 세상과 만나 냉소적인 태도를 만들어내는걸 보게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없는걸까. 열심히 살기위해 발버둥쳐도 왜 삶은 여전히 허무할까. 이에 대해 엄기호씨는 한국사회 아래 놓인 대학생을 찬찬히 살펴보고 다가선다. '이게 사는 건가' 라는 질문을 해왔던 우리에게 하나씩 그 실마리를 던져준다.

 

엄기호씨의 책이 좋은 이유는 우리가 속한 현실을 철저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의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그가 이야기 했던 것 처럼,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연속된 차별의 경험과 차가운 사회가 던지는 조련과정이다. 대학서열로 매겨진대로 학생들은 평가받고, 그 안에서 남을 누르고 살아남기위해 스펙을 쌓는다. 이런 과정에서 오는 열등감과 패배감은 끊임없이 쌓여 나중엔 무기력해져 버린다. 부모님의 욕망, 사회의 욕망속에 둘러쌓여 정신없이 경쟁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야기들은 그의 책 속에서 자주 만나는 사례이다. 그렇게 우리를 경쟁시키고 채찍질하는 사회 매커니즘을 저자는 예리하게 꼬집어낸다. 그 구조적 모순속에서 희생된 대학생과 학부모 세대는 그들의 삶을 망친 그 매커니즘은 모른채 서로만 나무라며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간다. 책의 1부에서 말하는 것 처럼, '사회'가 인간에게 모욕을 주고, 우리는 그 모욕을 이겨내기위해 경쟁하고 싸운다. 내 안의 욕구, 마음을 덮어버리고 타인과 사회의 욕망을 둘러쓴 채 분열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왜 우리는 노무현을 미워할 수 없었던가. 그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분열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아이를 불러 선행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 까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 투자로 생계를 이어간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 만하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살기 위해서는 삶이 분열되어야 한다. 이 분열의 빈틈에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 엉킨 채 우리는 살아간다. "

 

그렇게 비뚤어진 세상에서 분열되지 않고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큰꿈없이 고만고만한 삶을 원해왔어도 그러기 위해서는 죽자살자 온 시간을 바치고 매달려야한다. 그렇게 매달려도 다 잘 될 가능성도 없다. 저자는 현재 우리의 인생이 '개미'와 '베짱이', 그리고 '개짱이'의 삶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면,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죽기살기로 달려들어야한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처럼 살고싶다면 그저 나를 버리고 그렇게 영혼없이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 즐기는 베짱이의 인생을 원해도 노는 것은 꿈도 못꾼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돈도 안되는 일을 죽을만큼 열심히 해야 먹고살 수 있다. 마지막 경우인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노는 '개짱이'의 삶은 현대인이 꿈꾸는 삶이다. 그렇지만 택도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고만고만한 삶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우린 그렇게 셋 중 어느것도 선택할 수 없는, 그리고 희망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책을 중간정도까지 읽다보면 공감과 체념의 감정에 젖어버린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어떤 선택권이 있는지, 탈출구가 있는지 암담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끝을 향해 갈수록 내 안에 희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던져준 '카이로스의 시간' , '동료', '의리', 그리고 '두더지' 등 몇개의 키워드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보듬고 나갈것인지 가르쳐주었다. 책 속에서 자본주의라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 사회, 거기에 법도 내 편이 아닌 사회를 맞닥뜨렸다. 그렇지만 이젠 거기서 낙담할 게 아니라, 웃으며 긍정의 힘을 믿고 살아가야 한다. 살아갈 수 있는 건 매 순간 만나는 동료들 덕분일수도 있다. 또 외롭게 홀로 투쟁하는 사람에게 나름의 의리를 보이며 거기서 삶의 희망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사회 전체의 구조에 허탈해 하지 말고, 내 나름의 길을 뚫고 동료를 만나 하나씩 경험하자. 두더지처럼 땅 위 세상은 제쳐두고 우선 내 삶, 내 길에 놓인 사람들과 경험에 최선을 다하자. 그게 저자가 던져주는 희망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끝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공간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 바로 내가 의리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북돋운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비록 지금은 먹고사는 게 바빠서 길거리로 나가지 못하지만 길거리에서 싸우고 크레인 위에서 삶을 건 사람에게 응원을 보는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용기를 내는 데는 바로 나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나뿐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한 번 더 세상과 부딪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다. 쫄지 않을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공유하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이런 공통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이 언어로써 우리가 '감응'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하는 공간이다. "

 

왜 더 나은 삶을 기대할수록 절망하게 될까? 바쁘게 살면 살수록 왜 우리 삶은 텅 비어갈까? 이런 생각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 책은 처절하게 그 이유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넘어서서 살아갈 수 있을지까지 알려줄 것이다. 그 넘어서는 방식에서 '동료'와 '의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갈 때, 세상은 조금씩 살만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희망이 조금씩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던져준 '두더지'처럼 사는 삶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또 한 번 책을 통해 힘을 얻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