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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무무 - 투르게네프

멜로마니 2013. 11. 30. 19:26

 

 

 

무무 │ 투르게네프 │ 민음사

 

 

'노예는 사랑할 수 없다'

투르게네프의 단편 '무무'는 이 짧고도 강렬한 문장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5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단편이지만 그 안엔 벙어리 노예 게라심의 좌절과 비애가 잘 담겨있다. 늙은 여주인 아래서 묵묵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라심에게 자신의 인생은 없다. 주인의 칭찬을 받으며 먹고 자고 하는것엔 별 걱정이 없는 게라심이지만 그에겐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없다. 바로 '자유'다. 자신이 사랑과 애정을 느끼는 것들을 타인의 강요로 떠나보내야 하는 게라심에게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그만의 인생은 없다. 좋아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랑하는 강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그에게 인생은 무거운 족쇄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무무를 죽이며 어떤 다짐을 했을까. 벙어리 게라심의 분노와 비애는 소설 속에서 언어로 드러나진 않지만 결말에서 그의 달라진 인생이 확인된다. 여주인의 명령을 넘어선 자신의 결단을 통해 무무를 죽이고 노예를 벗어난 것. 비록 소설 마지막에서 모스크바를 벗어나 외딴 농가에서 홀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확인되지만 그 안엔 쓸쓸함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 타인의 명령과 종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살을 찾은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한없이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말이다. 이미 두 번의 사랑을 떠나보낸 게라심이 다시 홀로 서 사랑을 하기 위해선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소설은 '노예'를 말한다. 소설이 쓰인 당시엔 농노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노예'는 과거 역사속의 한 단어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렇지만 난 게라심의 모습 속에서 나를 만났다. 시대가 바뀌고 살아가는 방식도 변했지만 여전히 우린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과 종속된 관계 속에서 내 인생을 재단하고 살아가는 것, 그게 마치 내가 살고싶은 인생인마냥 착각속에 빠지는 것은 2013년형 노예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린 타인 때문에 자신의 선택이 꺾여야 했던 경험이 있는지, 혹은 타인의 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를 반추해봐야 한다. 과거 혹은 현재에 그런 경험이 있다면 그건 분명 게라심이 모스크바에서 살아왔던 '노예'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게라심이 노예의 삶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무무의 목숨을 끊는 장면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설 속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게라심은 계속 노를 젓고 또 저었다. 벌써 모스크바가 저 멀리에 있었다. 강기슭을 따라 벌써 여기저기에 초원, 채소밭, 들판, 숲이 쭉 펼쳐졌고, 오두막이 나타났다. 시골 냄새가 풍겼다. 그는 노를 내던지고 그 앞의 마른 횡목에 앉아있는 무무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 밑바닥을 물이 흘러들었다. 그는 억센 두 손을 무무의 등에 포갠채 꼼짝 않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쪼개는 파도에 밀려 조금씩 도시 쪽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게라심은 몸을 쭉 펴고는 어떠 병적인 분노의 표정으로 자기가 가져온 벽돌을 노끈으로 서둘러 묶고, 올가미를 만들어서 무무의 목에 걸고 무무를 물 위로 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무를 바라보았다..... 무무는 무서워하지 않고 신뢰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은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게라심은 얼굴을 돌리고 나서 실눈을 뜨고는 두 손을 폈다.... 게라심은 물에 떨어지면서 무무가 낸 날카로운 비명 소리도 '철썩'하고 튀어 오른 둔탁한 물소리도, 다른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장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 것이다. 마치 가장 고요한 어떤 밤이 우리에게는 전혀 고요하지 않을 수 있듯이."

 

마지막 남은 의지로 사랑하는 것을 죽여야만 했던 게라심의 마음은 어땠을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게라심이지만 난 그가 느꼈을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노예에게 마지막 남은 자유는 사랑하는 것을 '직접' 죽이는 것 뿐이라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삶에서 그렇게 무언가를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으니까.

 

이 소설은 '노예'를 위한 소설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예'임을 깨닫고 '자유인'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문학이다. 소설 속 게라심이 그랬듯이 나도 그 상처를 통해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게라심처럼 외딴 농가에서 쓸쓸히 살아가더라도 난 그 삶이 더 행복하다. 스스로 설 수 있을 때만이 상처도 고통도 모두 안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무무'를 통해 자유와 사랑의 힘을 얻었다.

 

 

 

 

 

 

* 무무는 민음사에서 나온 '첫사랑' 뒷편에 수록되어 있다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