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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 옮김)

멜로마니 2014. 2. 11. 00:59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 김남주 옮김 │ 민음사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여자이기에 행동하는 것들이 있다. 이것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모습은 남자와는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 여성은 새로운 사랑에 대해 신중하고 꼼꼼하게 따지는 반면 남성은 순간의 감정과 느낌에 방점을 찍는다. 여성은 사랑에 빠질때 '마지막'에 초점을 두는 반면 남성은 매번 '새로운'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연애 초반, 서로를 저울질하며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하는것도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각자의 차이를 맞춰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은 때론 힘들고 외롭기에 우린 더 사랑을 주저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혹시 사랑이란 존재 앞에서 망설이는 여성이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여기 소설 속 서른 아홉의 '폴'이 있다.


폴에겐 마지막 사랑일것만 같은 편안한 애인 '로제'가 있다. 물론 로제는 몰래 젊은 여자들을 만나기 때문에 영원한 마지막 사랑이란건 폴의 착각일 뿐이다. 이런 따분한 커플의 앞에 젊은 청년 '시몽'이란 존재가 나타난다. 폴에게 뜨거운 감정을 느낀 시몽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폴 역시 흔들린다. 겉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두근거림이 그녀를 흔들지만 폴은 고민한다. 왜 폴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매혹적인 남성 앞에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말을 걸어오는 시몽에게서 왜 머뭇거리는 것일까. 


이 작품은 사랑앞에서 여성의 '머뭇거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른아홉이란 나이까지 그녀는 무수한 사랑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로제를 만나며 그녀는 뜨거운 사랑보단 미지근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냈을 것이다. 그런 폴에게 사랑은 뜨거운 열정일 수 있지만 동시에 하나의 두려움일 수도 있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도 그 뜨거움은 오래가지 못할 수 있음을, 사랑의 끝엔 홀로 남겨진 자신만이 있을 것임을 이미 체득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우연히 나타난 새로운 사랑앞에 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오히려 뒷걸음질치며 '로제'라는 방어막에 몸을 숨긴다. 


소설 마지막에서 폴이 새로운 사랑을 포기하는 순간, 난 왠지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39세 여성이 '사랑'을 포기해버린것이다. 더이상 '사랑'이 던져주는 기쁨과 거기서 오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나이를 먹어온 이 여성은 이제 사랑보단 '안정'을 바라고 있다. 감당이 안되는 불같은 존재보단 적어도 자신을 버릴 것 같지는 않은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이 난다.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내 안에도 서른아홉의 폴이 살고 있었다는걸 이 작품을 읽은 뒤 깨달았다. 우린 얼마나 사랑에 목숨을 거는지,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사랑을 갈구함에도 고통은 피하려 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 '망설임'이란 감정이 더욱 채찍질을 하는 것 같다. 현재 내 모든 것들이 부서질 수 있는걸 감수할 용기가 있는지 자꾸만 질문들이 밀려오는 것. 매번 처음 사랑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수없이 연애를 하는 이유도 만남과 헤어짐이란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린 대부분의 경우 '폴'과 같은 결정을 한다. 더이상 사랑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은, 그저 무뎌진 삶을 살길 원하는 걸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러고싶지 않아졌다. 오히려 이런 망설임의 순간에도 한 발짝 앞을 내밀고 싶어졌다. 사강이 나에게 그렇게 속삭여온 것 같다. 




이번에 읽구 원서 주문했다. 빨리 읽어보고싶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