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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물들 - 조르쥬 페렉

멜로마니 2014. 6. 3. 23:26



사물들 │ 조르쥬 페렉 │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은 ‘60년대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당대 젊은이를 상징하는 제롬과 실비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이 소설은 첫 장인 1부 1장부터 오로지 ‘사물’들만을 나열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사물’은 무엇일까? 그리고 60년대에 나온 이 작품이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작가 조르주 페렉은 140p 가량의 짧은 단편을 통해 이 두 가지 물음을 던져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커플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이들은 유명 브랜드를 찾아 헤매는가 하면 고급 아파트를 구해 안락한 생활을 영위한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그들에게 행복은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원이라는 불안정하지만 벌이는 괜찮은 일을 하면서 둘은 풍족함에 빠져들지만 한편으론 막연한 불안감과 결핍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엑스프레스지에 나온 이미지를 꿈꾸고 욕망하는 이들에게 사물과 돈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셈이다.


그러던 이들은 튀니지의 작은 항구도시 스팍스에 다다른다. 불안감과 결핍에 쫓겨 하나의 피난처를 찾은 둘이지만 그곳엔 그들이 그려왔던 환상과 꿈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무기력과 지독한 일상에 젖어든 모습을 마지막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하지만 작가는 에필로그를 통해 둘이 다시 파리에 돌아오는 걸 암시한다. 예전처럼 다시 둘은 친구들을 만나며, 길거리를 헤매며, 소비를 통해 꿈과 환상에 젖어 사는 삶을 반복할 것이다.


소설이 주목하는 ‘사물’은 현대인의 전형적 욕망이다. 소비를 통해 욕망을 충족하는 지극히 패턴화된 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엔 아주 무서운 횡포가 내재되어 있다. 바로 ‘보여주기’의 욕구다. 우리가 소비를 하는 주된 이유는 ‘보여주기’의 욕망이라 할 수 있다. 명품 브랜드를 구입하고 정원이 딸린 고급 아파트를 꿈꾸는 모습엔 분명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소설 속 커플의 욕망 역시 오로지 소비에만 맞춰져있다. 여기에 둘 사이의 감정과 사랑은 담겨있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이미지와 환상에 젖어 서로의 얼굴은 잊은 채 쇼윈도 인생을 영위한다. 물론 그들 스스로도 어렴풋하게 그 덧없음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막연할 뿐이다. 그렇기에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다면,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물건을 가진다면 행복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제롬과 실비는 60년대의 시대 속에서 사물들로 자신들을 만들어간다. 이런 둘의 모습이 낮설지 않은 이유는 분명 이런 삶의 형태가 현재에도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현재 우리를 둘러싼 환경 역시 더욱더 우릴 ‘소비’하도록 자극한다. 가령 신자유주의는 우릴 돈의 노예로 살도록 부추긴다. 시각매체인 TV는 보다 자극적으로 물질에 대한 욕망을 조종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횡포를 자각하지 않고 돈과 소비를 쫓아 살다보면 누구나 제롬과 실비처럼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분명 삶 속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린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사로잡혀있다. 삶을 이루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만 채워지는 순간 우린 그만큼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돈이라는 수단에 빠져 사랑하는 것을 놓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 공허하다. 책을 덮으면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사로잡힌다. 그건 아마도 지금 내 삶 역시 제롬과 실비처럼 의미 없는 반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건 지금의 나는 제롬과 실비의 삶을 초라하게 만든 괴물 같은 욕망을 자각(自覺)하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공허함을 느꼈고 그걸 넘어 다시 소중한 것들을 되찾았기에 실비와 제롬은 지난날 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르주 페렉의 메시지에 주목했으면 좋겠다. 덧없는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중히 하는 일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페렉이 에필로그 마지막에 남긴 맑스의 인용구는 우리가 세상에 휩쓸릴 때마다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을 줄 것이다.


"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수단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  카를 마르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