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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고미숙

멜로마니 2014. 10. 12. 14:14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고미숙 │ 북드라망



운명  -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운명은 결국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것 !




운명이 있을까. 나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는걸까.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들에 큰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는 흔히 말하는 '사주'라는 이름으로 해석되고 각종 운들을 살펴보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앞길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때 많은 한국인이 점집이나 철학관을 찾는다. 내 미래가 어찌될지 궁금한 마음 때문이다. 혹시 그런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그렇다면 철학관을 찾지 않아도 자신의 운명과 마주하게 될테니까. 그리고 '운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라질 것이니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다. 동양의 운명학이라 할 수 있는 사주명리학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박차고 나오는 안티 오이디푸스가 만난 책이다. 안티 오이디푸스라고 한다면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떠올릴테지만 여기선 아주 단순하다. 그저 '가족'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남을 뜻하는 것이다. 운명을 알고 틀에서 벗어나라? 얼핏 보기엔 참 역설적인 주장이다.


먼저 저자는 운명의 열쇠를 지닌 '사주명리학' 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 미신으로 치부되는 사주지만 이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오래된 학문이다. 그러니 사주는 무속인만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미신일 뿐이라는 생각은 접어두는게 좋다. 음양오행이라 불리는 명리학은 우주와 자연의 순환을 인간과 연결시킨 학문이다. 하루의 시간, 넓게 보면 계절의 변화를 반영해 인간 각자가 타고난 기운을 살펴보는 셈이다. 그렇기에 사주명리학의 핵심은 생년월일시다. 내가 이 우주에 태어난 그 순간 세상은 어떠했는지 연결을 시켜봄으로써 자연으로부터 얻은 기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 고대부터 형성된 음양오행은 우주의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음(陰) 양(陽)'을 기본으로 여기서 파생되는 오행인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로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자연의 흐름을 본따 만들어진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 역시 자연과 같은 순리적 흐름에서 접근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먼저 계절의 변화를 보라. 봄(목), 여름(화), 가을(금), 겨울(수), 그리고 각 사이에 들어 있는 환절기(토). 이것이 오행의 걸음이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이 다섯 걸음을 쉬지 않고 반복해 왔다. 낳고 또 낳는 원동력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도 그러할 터. 생로병사의 마디가 바로 그렇다. 청춘(목)은 봄이고 중년(화)은 여름, 폐경 이후(금)는 가을, 육십대 이후(수)는 겨울이다. 각각의 마디를 넘는 시기에 토(土) 기운이 작용한다. 잘 산다는 건 이 과정을 다 제대로 밟는다는 뜻이다. 청춘은 청춘답게, 중년은 중년답게, 노년은 노년답게... 47"


결국 사주명리학은 자연스러운 삶을 비추는 학문이다. 그래서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내 기운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에 상응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게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엔 이 자연스러운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바로 '국가'와 '자본'이다. 저자는 국가, 자본이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한 과정을 돌이켜보며 이 과정에서 우리의 '운명' 역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생성과 소멸의 흐름을 끊고 오로지 생성만을 강조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또 가치의 편중화 역시 심각하다. 자본주의가 강력하게 자리잡은 한국에선 오로지 '돈'의 가치만이 군림한다. 가치가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동등하며 생성과 소멸을 함께 생각하는 사주명리학과는 정반대의 시각인 셈이다. 그래서 우린 사주명리학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얻으면 반드시 잃는게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한다. 돈을 많이 벌어도 그만큼 잃는것이 있고 좋은 운이 들어오는 때가 있으면 안좋은 기운이 들어올 때도 있다. 이를 망각하고 한없이 욕망하고 조절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운명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셈이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운명을 그려보게 된다. 일간, 용신, 십신 등 사주팔자를 볼 수 있는 기본적 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주팔자가 보여주는 기본적 기운들을 살펴보면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이 운명이 아닐까. 아직 살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게 아니라 내가 우주로부터 받은 타고난 기운을 살펴보는 일이 진짜 운명을 아는 방법일 것이다. 저자는 사주팔자를 사람마다 가진 8개의 카드라고 표현한다. 무슨 카드를 가졌느냐에 따라 이것이 자신의 강점이 되고 살아가는데 큰 바탕이 된다. 그렇기에 주어진 카드를 최대한 사용하며 순리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탐욕, 욕심을 조절해 넘침을 조절하고 부족함을 채우는 노력은 기본중에 기본이다.


사주분석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육친법'이다. 육친법은 8개의 카드를 통해 알 수 있는 나를 둘러싼 인적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십신으로 알아본 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의 성격에 따라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의 유형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한 인간을 둘러싼 사람의 유형이 얼마나 많을까.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가족관계나 애인도 있을 것이다. 타인을 만나고 관계를 맺게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육친법 역시 '오이디푸스화' 되었다고 강조한다. 모든것이 핵가족이라는 좁은 틀에서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핵가족은 그냥 사이즈가 작은 가족이 아니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표상들에 의해 움직이는 가족제도다. 순결이데올로기, 일부일처제의 신화, 교육만능주의, 일촌간의 사랑 등등. 국가의 자본은 사회 전방면에 이런 가치들을 촘촘하게 박아 놓는다. 즉 학교와 병원, 직장과 교회 등을 통해 이 표상들이 개별주체들에게 깊이 각인되도록 유도한다. 학교에선 학벌과 직업과 재산이 인생의 기준임을 주입하고, 병원에선 건강한 몸과 정신에 대한 기준을, 교회에선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을 주입한다. 학교ㅡ집ㅡ병원ㅡ직장ㅡ교회가 현대인들의 기본 동선이다. 여기에 백화점이나 커피숍 등이 덧붙여진다. 그야말로 홈파인 회로다. 이 회로에 갇히면 누구나 답답하다. 하지만 벗어날 엄두를 못 내는건 이것이 '정상적인 삶'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 궤도를 일탈하면 비정상이 된다. 정상/비정상의 경계가 강력해지면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대치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행복한가?'라고 묻지 않고 '정상인가?'라고 질문한다. 정상성이라는 척도는 모든 욕망을 균질화한다. 무의식에 깃든 카오스적인 충동들을 쌈박하게 정리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유효한 도구다. 국가와 자본이 정상/비정상의 구획을 유포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166"


핵가족은 운명을 가두고 획일화시킨다. 아빠-엄마-나 라는 좁디좁은 관계망에서 어떻게 사회와 공동체 연결망을 찾아볼 수 있을까. 결국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운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운명을 살아내려면 가족이라는 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는 핵가족을 만들어낸 국가, 자본의 횡포에 저항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운명을 억압하고 나를 억누르는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운명과 직면하는 일은 결국 나답게 인생을 살아낸다는 뜻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사주명리학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순리에 맞지 않는 것들을 경계하며 조절할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한다.


책을 읽으며 그 어느때보다 나를 돌아봤다. 내가 가진 8개의 카드를 알아보면서 신기함과 즐거움을 넘어 놀라움도 느꼈다. 평소 난 왜이럴까 하며 자책했던 부분들이 오히려 나의 타고난 기운인 것을 보며 스스로를 긍정하는 시간도 됐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것들을 통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유무형의 것들을 모두 활용해 멋지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은 순간 나의 운명과 직면했으니 앞으론 보다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 좋은 시기엔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쌓아놔야 한다. 그래야만 좋지 않은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담담히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 몸과 마음은 함께가니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마음만 쓰고 움직이지 않는건 그 균형이 깨지는 일이다. 모든건 찾아오면 떠나는 순리를 가졌다. 그러니 시절인연을 만났다면 그때에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고 떠남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 얻는것이 있다면 받드시 잃는것이 있다. 그러니 너무 많이 얻으려 하지 말고 그보단 모자람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가치들을 골고루 들여다봐야 한다. 고생할땐 제대로 고생해서 겪어내야한다. 굴곡을 능동적으로 겪을때만이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된다. 이렇게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될 여러 섭리도 얻었다.  워낙 접어둔 페이지가 많지만 마지막으로 세 부분만 발췌하고 싶다. 


" 모든 존재는 원초적으로 출가자이자 이주민이다. 우리는 어느 날 문득 아주 우연히도 이 별에 도착했다. 부모의 몸을 잠시 빌린 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다. 낯선 삶을 향하여,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하여, 그것만이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천지만물과 부모에 대한 유일한 보답이다. 운명의 지도가 필요한건 이 때문이다. 집에 머무르면서 길을 떠나지 않는 자에게 지도란 무의미하다. 길을 떠난다는 건 그 자체로 오이디푸스적 표상으로부터의 탈주에 다름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길을 떠났건만 정작 우리들은 오이디푸스에 머무르는, 아, 이 지독한 아이러니! 만약 오이디푸스가 다시 귀환한다면 그는 말하리라. 이제 그만 오이디푸스 삼각형에서 탈주하라고. 거기에는 어떤 출구도, 구원도 없다고. 오직 상처뿐인 팔자의 굴레를 벗어나 우주적 생명력이 약동하는 길 위에 나서라고. 187"


" 정말로 개운을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이 이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산다는 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평생 재화를 일구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생의 문턱을 넘어야 하고 애증의 갈림길에 서야 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대충 피해 간 존재가 있다면 그건 사실 태어난 의미가 별로 없다. 공평하게도(?) 그런 경우는 중년 이후나 노년에 반드시 그 마디를 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젊어 고생 사서 하라"고 하는 것이다. 또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그만큼의 정기신의 소모를 감당해야 하고, 정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물질적 번영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물질적, 정신적, 영적 자유를 두루 누리는 존재?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실로 평등하고 평등한 셈이다.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이 팔자의 평등성을 깨우쳐야 한다. 243 "


"그러므로 중요한건 더 좋은 힐링, 더 많은 치유가 아니다. 힐링과 상처의 공모관계를 해체하고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을 일방향으로 이끄는 거울을 깨뜨리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는 것. 그리하여 감히 자신의 운명을 직면하는 것, 길은 다만 거기에 있을 뿐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선 뗏목이 필요하다. 사주명리학은 아주 힘차고 역동적인 뗏목이 되어 줄 것이다. 강을 건넌 다음엔? 물론 뗏목은 버려야 한다!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