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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경제학-철학 수고 - 칼 마르크스 지음 (강유원 옮김)

멜로마니 2014. 8. 28. 22:20




경제학-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지음│ 강유원 옮김│ 이론과 실천



거꾸로 노동자의 수는 분업을 증가시키며 분업은 자본의 집적을 증가시킨다. 노동자는 한편으로 이러한 노동의 분업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적 때문에 점점 더 순전히 노동에 의존하게 되며, 규정적이고 매우 일면적인 기계적 노동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기계로 전락하고 인간에서 벗어나 추상적 활동과 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는 또한 더욱더 시장가격의 변동, 자본의 사용과 부자의 변덕에만 의존하게 된다. 18


증대하는 복지 상태에 있는 사회에서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이 금리로 생활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본으로 회사를 경영하거나 자본을 상업에 투자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더 격렬해지고, 자본의 집중이 더 커지며, 대자본가는 소자본가를 파멸시키며, 이전의 자본가 중의 일부는 노동자계급으로 전락하거니와,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공급으로 인해 다시금 노동임금의 하락을 겪으며, 더욱더 소수의 대자본가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18


국민경제학자는 우리에게 기원에 따라 그리고 개념에 따라 노동의 생산물 전체가 노동자에게 속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우리에게 현실적으로는 생산물의 가장 적고 필요불가결한 부분만이 노동자에게 귀속된다고 말한다. 그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그가 인류를 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노예계급을 번식시키는 데 필요한 만큼만. 21


분업은 노동의 생산력, 사회의 부와 개량을 드높이는 반면, 노동자를 기계로 전락시킨다. 노동은 자본의 집적, 그에 따라 사회의 번영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노동은 노동자를 점점 더 자본가에게 의존하게 하고 노동자를 더 심한 경쟁에 몰아넣으며, 노동자를 과잉생산이라는 사냥터로 밀어 넣는데, 이 과잉생산에는 바로 그러한 무기력이 뒤따른다. 22


인민이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는 자신의 신체적 욕구의 노예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되며, 더는 육체의 노예여서는 안 된다. 인민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창조하고 정신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 노동 조직의 진보는 이러한 시간을 얻고 있다. 오늘날 새로운 동력과 개량된 기계장치로 인해 노동자 한 명이 면직 공장에서 이전의 노동자 100명, 아니 250~350명의 작업을 수행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유사한 결과가 모든 생산 부분에서 생겨나는데, 그것은 외부의 자연의 힘이 점점 더 많이 인간의 노동에 가담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떄문이다. 일정한 양의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이전에 필요한 시간과 인간의 힘의 소모가 이후에 반으로 줄어든다면, 그와 동시에 감각적 만족의 손실 없이도 정신적 창조와 향유를 위한 활동의 여지가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26 27


국민경제학은 노동을 추상적으로, 하나의 사물로 간주한다. 노동은 하나의 상품이다. 가격이 비싸면 많은 상품이 필요하다. 가격이 싸면 상품이 많이 공급된다. 상품으로서 노동의 가격은 점점 더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이렇게 되도록 강요한다. 31


그러므로 자본은 노동과 그것의 생산물에 대한 지배권이다. 자본가는 자신의 인격적인 혹은 인간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본의 소유자인 한에서 이러한 권력을 소유한다. 어느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그의 자본이 구매하는 권력이 그의 권력이다. 35


"자신의 노동을 빌려 준다는 것은 자신의 노예생활이 시작됨을 말한다. 노동의 재료를 빌려 준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정초한다는 것을 말한다... 노동은 인간이지만, 이에 반해 재료는 인간적인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페쾨르: 사회경제학의 신이론등 p411, 412    52


노동자는 부를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그의 생산의 힘과 범위가 증대될수록, 더욱더 가난해진다. 노동자가 상품을 더 많이 창조할수록 그는 더 값싼 상품이 된다. 사물세계의 가치증대에 정비례해서 인간세계의 가치절하가 일어난다. 노동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다. 노동은 자기 자신과 노동자를 하나의 상품으로 생산하며, 물론 노동이 일반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같은 관계 속으로 생산한다. 85


노동이 생산하는 대상, 노동의 생산물은 노동에게 하나의 낯선 존재로서, 생산자에게서 독립된 힘으로서 노동에 대립한다는 것, 노동의 생산물은 하나의 대상 속에 고정된, 사물화한 노동이거니와, 이는 노동의 대상화이다. 노동의 이러한 실현이 국민경제학적 상태에서는 노동자의 현실성 박탈로 나타나고, 대상화는 대상의 상실과 대상에 대한 예속으로, 획득은 소외로, 외화로 나타난다.  노동의 실현은 아주 심하게 현실성을 박탈하는 것으로 나타나 노동자가 굶어죽을 정도로 현실성을 박탈한다. 대상화는 아주 심하게 대상의 상실로 나타나 노동자는 필요한 생활 대상들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상까지도 빼앗기고 만다. 물론 노동 자체는 노동자가 최대한의 긴장괴 불규칙한 중단을 통해서만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대상의 획득은 아주 심하게 소외로 나타나 노동자가 대상을 많이 생산할수록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적게 되며, 그만큼 더 그의 생산물, 자본의 지배 아래 있게 된다.  85 86


노동자가 힘들여 노동할수록 그가 자신에 대립되도록 창조한, 소원한 대상적 세계는 더욱 강력해지며, 그 자신, 그의 내적 세계는 더욱 가난해지고 그 자신의 것으로 귀속되는 것은 더욱 적어진다. 이는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신에 더 많은 것을 귀속시킬수록 그가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것은 적어진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집어넣는다. 그러나 이제 그 생명은 그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이 커질수록 노동자는 더욱더 대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의 노동의 생산물인 것이 노동자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산물이 커질수록, 노동자 자신은 더욱 작아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에서 외화된다는 것은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으로, 하나의 외적인 현실적 존재로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에게서 독립되고 소원하게 존재하며, 그에게 대립하는 자립적 힘이 된다는 것, 그가 대상에게 부여했던 생명이 그에게 적대적이고 소원한 것으로 대립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86


국민경제학은 노동자와 생산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의 본질 안에 있는 소외를 은폐한다. 틀림없다. 노동은 부자를 위해서는 경이로운 작품을 생산하지만, 그러나 노동은 노동자를 위해서는 결핍을 생산한다. 그것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서는 움막을 생산한다. 그것은 노동을 기계로 대치하지만 노동자의 일부를 야만적인 노동에 빠뜨리며 다른 일부를 기계로 만든다. 그것은 정신을 생산하지만, 그러나 노동자를 위해서는 정신박약과 백치를 생산한다. 88


노동이 노동자에게 외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노동이 노동자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까닭에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속에서 스스로를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행복을 느끼지 않고 불행을 느끼며, 자유롭고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에너지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육체를 소모시키고 그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는 것. 그런 까닭에 노동자는 노동의 외부에서야 비로소 자기 곁에 있다고 느끼고. 노동 안에서는 자기 바깥에 있다고 느낀다. 노동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노동할 때에는 편안하지 않다. 그런 까닭에 그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강제노동이다. 그런 까닭에 노동은 어떤 욕구의 만족이 아니라 노동 바깥에 잇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노동의 낯설음은 어떠한 물질적인 혹은 그 밖의 강제도 존재하지 않게 되자마자 노동이 마치 페스트처럼 기피된다는 것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외적인 노동, 인간이 스스로를 외화하는 노동은 자기희생의 노동,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노동이다. 90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1. 자연을 소외시키고, 2. 자기 자신, 인간 고유의 활동적 기능, 인간의 생명활동을 소외시킴으로써, 그것은 인간에게서 유를 소외시킨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 유정생활을 개인생활의 수단으로 만든다. 첫 번째로 소외된 노동은 유적생활과 개인생활을 소외시키고, 둘쨰로 추상 속에 있는 후자와 마찬가지로 추상화되고 소외된 형식 속에 있는 전자의 목적으로 삼는다.  93


그러므로 인간은 대상적 세계의 가공에서 비로소 자신을 현실적인 하나의 유적 존재로서 확인한다. 이 생산은 인간의 제작활동적 유적생활이다. 이 생산을 통해서 자연은 인간의 작품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현실성으로서 나타난다. 그런 까닭에 노동의 대상은 인간의 유적생활의 대상화이다 : 이는 인간이 의식에서처럼 지적으로뿐만 아니라 제작활동적, 현실적으로도 자신을 이중화하고, 그런 까닭에 자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직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그의 생산의 대상을 박탈함으로써, 인간에게서 그의 유적생활, 그의 현실적인 유적 대상성을 박탈하고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장점을 단점으로 변화시켜 그의 비유기적 신체, 자연을 떨어져 나가게 한다. 95


마찬가지로 소외된 노동은 자기활동, 자유로운 활동을 수단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인간의 유적생활을 그의 육체적 생존의 수단으로 만든다. 95


노동의 생산물이 나에게 낯선 것이고, 나에게 낯선 힘으로 대립한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가? 나 자신의 활동이 나에게 속하지 않으며, 낯선 활동, 강요된 활동이라면 그것은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가? 97


노동의 생산물이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고, 낯선 힘이 그에게 대립한다면, 이는 그 생산물이 노동자 이외의 다른 인간에게 속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의 활동이 그에게 고통이라면, 그의 활동은 다른 사람에게는 향유이고, 다른 사람의 생활의 기쁨이지 않을 수 없다. 신들도 자연도 아닌 오직 인간 자신만이 인간을 지배하는 이런 낯선 힘일 수 있는 것이다. 97 98


노동자는 자본을 생산하고 자본은 노동자를 생산하며, 그에 따라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생산하고, 노동자로서 인간, 상품으로서 인간은 전체 운동의 산물이다. 노동자 이외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게 그리고 노동자로서 인간에게 그의 인간적 특성들은 그것들이 그에게 낯선 자본을 위해 현존하는 한에서만 현존한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낯설고, 그에 따라 아무래도 상관없는 외적이고 우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낯설음은 또한 현실적인 것으로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106


1. 그는 노동자의 욕구를 가장 필요하고도 가장 참담한 육체적 생존 유지로 환원시키고, 노동자의 활동을 가장 추상적인 기계적 운동으로 환원시키며, 그에 따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인간은 활동의 욕구와 향유의 욕구 이외에 다른 어떤 욕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이러한 생활도 인간적 생활과 인간적 현존이라고 언명하기 때문이다. 2. 그는 가능한 한 가장 궁핍한 생활(생존)을 척도로, 그것도 보편적 척도로 산출한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타당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이다. 그가 노동자의 활동을 모든 활동의 순수 추상으로 만들듯이, 그는 노동자를 무감각하고 욕구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까닭에 노동자의 어떠한 사치도 그에게는 배척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며, 가장 추상적인 욕구를 넘어서는 어떠한 욕구도 ㅡ 그것이 수동적 향유건 활동의 표현이건 간에 ㅡ 그에게는 사치로 여겨진다. 그런 까닭에 국민경제학, 이 부의 학문은 동시에 체념, 궁핍, 절약의 학문이며, 실제로 국민경제학은 인간에게 순수한 공기 또는 육체적 운동의 욕구까지도 절약하게 하는데에 이른다. 놀라운 산업의 이 학문은 동시에 금욕의 학문이며 그 진정한 이상은 금욕적인 그러나 폭리를 취하는 구두쇠와 금욕적인 그러나 생산하는 노예이다. 이 학문의 도덕적 이상은 자기 봉급의 일부분을 저축 은행으로 가지고 가는 노동자이며, 이 학문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와 같은 착상을 위하여 비굴한 예술을 발견해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감상적 기분으로 무대에 올렸다. 그런 까닭에 국민 경제학은 ㅡ 세속적이고 쾌락적인 겉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ㅡ 진정으로 도덕적인 학문, 가작 도덕적인 학문이다. 자기 체념, 생활의 체념, 모든 인간적 욕구의 체념이 국민경제학의 주요한 가르침이다. 그대가 먹고, 마시고 책 사고, 극장, 무도회, 선술집에 가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싸움하는 일 등을 더 적게 할수록, 그대는 더욱더 많이 절약하게 될 것이고, 좀벌레나 도둑이 먹어 치울 수 없는 그대의 보화, 그대의 자본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그대의 존재가 적을수록, 그대의 생명이 덜 표현될수록, 그대는 더욱더 많이 가지게 될 것이고, 그대의 외화된 삶은 더욱더 커질 것이며, 그대의 소외된 본질은 더욱더 저장될 것이다. 150 


노동자의 조잡한 욕구는 부자의 세련된 욕구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의 원천이다. 런던의 지하주거들은 임대주들에게 호화 주택보다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는데, 다시 말해서 지하주거들은 임대주에게 더 큰 부이고, 따라서 국민경제학적으로 말하자면 더 큰 사회적 부이다. ㅡ 그리고 산업은 욕구의 세련화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욕구의 조야함, 인위적으로 산출된 조야함에 대해서도 투기를 하며, 그런 까닭에 이 조야함의 진정한 향유는 자기도취, 이러한 가상적 욕구 충족, 이러한 욕구의 조야한 야만 내부의 문명이다. 그러므로 잉글랜드의 선술집들은 사유재산의 상징적 표현이다. 선술집의 사치는 인간에 대한 산업적 사치와 부의 진정한 관계를 보여 준다. 154


소외는 나의 생활수단이 타인의 생활수단이라는 것, 나의 소원이 접근할 수 없는, 타인의 소유라는 것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들 자체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것, 나의 활동이 타인의 것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ㅡ 그리고 이것은 자본가에게도 해당되는데 ㅡ 일반적으로 비인간적 힘이 [지배한다] 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159


향락에만 자신을 내맡길 뿐인 비활동적인, 낭비를 일삼는 부라는 규정 ㅡ 이러한 규정 속에서 향락을 누리는 자는 한편으로 자신이 다만 무상한 개인, 본질을 상실하고 쾌락을 일삼는 개인임을 입증하며, 마찬가지로 타인의 노예 노동, 인간의 피땀을 자신의 탐욕의 먹이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자기 자신은 물론 인간 자체를 제물로 바쳐지는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거니와 이때 인간에 대한 경멸은 오만으로서, 수백 명의 인간 생명을 이어줄 것들을 내버리는 행위로 나타나며, 또 한편으로는 비열한 환상으로 나타나는데, 이 환상은 자신의 고삐 풀린 낭비와 무절제하고 비생산적인 소비가 타인의 노동을, 따라서 생존을 조건짓는다는 것이다. ㅡ 인간의 본질적 힘들의 실현을 자신의 비본질, 변덕, 자의적이고 기괴한 착상들의 실현으로만 인식하는 사람 ㅡ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부는 부를 단순한 수단으로, 없어져야 마땅한 사물로 인식하며, 그에 따라 동시에 이러한 부는 부 자신의 노예이자 부 자신의 주인이요, 동시에 고결하면서 비열하고 변덕스럽고 거만하고 자만심이 강하고 세련되고 교양 있고 기지에 넘친다 ㅡ 이러한 부는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완전히 낯선 힘으로서 부를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부는 부 속에서 오직 자신의 힘만을 보며, 부가 [아니라] 향락이 [최후의] 궁극 목적이다. 160


화폐를 통하여 나에게 존재하는 것, 내가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 다시 말해서 화폐가 구매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 화폐 소유자 자신이다. 화폐의 힘이 크면 클수록 나의 힘도 크다. 화폐의 속성들은 나의 ㅡ 화폐 소유자의 ㅡ 속성들이요 본질력들이다. 따라서 나의 존재와 능력은 결코 나의 개성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다. 나는 못생긴 사람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여자도 사들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추하지 않은데, 추함의 작용, 사람을 겁나게 하는 힘은 화폐에 의해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ㅡ 나 개인의 특성에서 보면 ㅡ 절름발이지만, 화폐는 나에게 24개의 다리를 만들어 준다. 따라서 나는 절름발이가 아니다. 나는 사악하고 비열하고 비양심적이고 똑똑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화폐는 존경받으며 따라서 화폐의 소유자도 존경받는다. 177


내가 여행에 필요한 화폐가 없다면, 나는 여행에 대한 욕구, 다시 말해서 여행에 대한 현실적이고 자기 실현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만일 내가 연구에 대한 사명은 있으나 연구에 필요한 돈이 없다면, 나는 연구의 사명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다시 말해서 어떠한 효과적인, 진정한 사명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만일 내가 현실적으로 연구에 대한 사명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의지 그리고 화폐를 갖고 있다면 나는 효과적인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화폐는 ㅡ 외적인 인간으로서 인간, 사회로서 인간 사회에서 유래하지 않는 보편적 ㅡ 표상을 현실로, 현실을 단순한 표상으로 만드는 수단이요 능력이며, 다른 한편으로 화폐는 현실인 불완전성들과 망상들, 개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적으로는 무력한 개인의 본질적 힘을 현실적인 본질적 힘과 능력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현실적,인간적, 자연적, 본질적 힘을 추상적 표상들로, 따라서 불완전성들, 고뇌에 찬 망상들로 전환시킨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규정에서 보면 화폐는 확실히 개성들의 보편적인 전도인바, 이 보편적 전도는 개성들을 그 반대의 것으로 뒤바꾸고 개성의 속성들에게 그것들과 모순되는 속성들을 부여한다. 180


인간을 인간으로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이어야만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간에 대한 ㅡ 그리고 자연에 대한 ㅡ 그대의 모든 관계는 그대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그대의 현실적, 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서 그대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181


부정의 부정 속에 놓여 있는 긍정 또는 자기 긍정과 자기 확증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대립에 붙잡혀 있는 긍정으로서,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따라서 증명이 필요한 긍정으로서 그러므로 자신의 현존을 통해 자기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고 승인받지 못한 긍정으로 파악되므로, 감각적으로 확실하며 자기 자신에 바탕을 두는 긍정이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으로 대립된다. 186


내가 어떤 대상을 가지자마자, 이 대상은 나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비대상적 존재는 비현실적, 비감각적, 사유되었을 뿐인, 다시 말해서 상상 속에서만 있는 존재, 추상의 존재이다. 감각적, 다시 말해서 현실적이라는 것은 감각의 대상이라는 것, 감각적 대상이라는 것, 따라서 자기 바깥에 감각적 대상들을 가진다는 것, 자기의 감성의 대상들을 가진다는 것이다. 감각적이라는 것은 시달리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까닭에 대상적, 감각적 존재로서 인간은 시달리는 존재이며, 자신의 고뇌를 느끼는 존재이므로 열정적 존재다. 열정, 정념은 자신의 대상을 정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적 힘이다.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