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발췌

[발췌] 도쿄 산책자 - 강상중

멜로마니 2014. 9. 9. 14:31



도쿄 산책자 │ 강상중│ 송태욱 옮김 │ 사계절│ 2013. 04




우리에게는 '원래의 나'에 매달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일본인이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아'. '여성이라면 원래 이렇지 않으면 안 돼' 같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허구가 아닐까, 의심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확실히 고정되어 있으면 겉으로는 안심이 되겠지만, 그것이 변화의 흐름을 막아 버리게 되어 오히려 내면에서는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고 불안감만 커집니다.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흘러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부동의 나' 또는 '확고한 아이덴티티'라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만큼 불확실한 시대도 없었으니까요.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변해 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확실한 안정을 얻는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 결과 자신이 안고 있는 불안이나 울분이 부정적 에너지가 되어 타자에게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놈은 형편없어", "저놈보다는 내가 나아"라는 타자 멸시나 타자 공격으로 남들보다 강해지려는 것입니다. 이는 요즘 시대가 안고 있는 큰 문제입니다.  결국 이 모두가 자신감을 갖고 싶다는 심리의 표현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모두가 불안감을 안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바로 그 불안 안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이 없음을 부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소가 바로 '도시'가 아닐까요.  사람은 모르는 타자와 교류함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정체를 깨닫게 되는 법입니다. 그때 자신 안에서 자신이 못비 싫어하는 타자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타자는 무척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6 27


현대에는 너무나도 낡은 행복의 형태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행복한가 불행한가만으로는 잴 수 없는 다른 척도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형화된 행복감이 아니라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역시 고민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75


이 기묘한 광경은 현재 금융을 둘러싼 문제와도 상징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추상화입니다. 실제로 여기에 돈이 있고, 중개인들이 돈다발을 세면서 매매하고 있다면 그 인상은 상당히 다르겠지요. 거기에는 실체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온라인화하면서 돈은 완전히 기호화 되었습니다.  도쿄증권거래소도 무기질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고, 번쩍였던 욕망은 보기 좋게 살균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확실히 현재는 주식증권이라고 하면 고액 소득자나 자산가를 고객으로 하는 가장 세련된 자산관리 서비스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6


평소 우리는 '경제'를 자신의 월급이나 소비라는 시점에서 보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활은 터무니없는 마계 같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마계의 현상이 일어나면 자신도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가계만을 생각해서는 이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111


하지만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가 다양해지고 개인들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무엇이든지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고, 인문학적인 테마도 모두 "내 마음이지"하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적인 물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뇌해 보았자 전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라는 문제는 블랙박스에 넣어 두고 모두에게 공통되는 목적, 예컨대 누구나 '돈을 갖고 싶다'는 식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 합목적적인가, 즉 그렇게 즉시 필요한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온 것 같습니다. 123


확실히 인생을 소홀히 취급하면 사람을 휩쓸리게 하는 재앙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너무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 겁쟁이가 되는 것은 그만두자고, 그 말을 만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가둔 껍데기에서 나가자고 말입니다. 이 말로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134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미 물질적으로 충족되어 있고 문화적으로도 나올 게 다 나와 버렸으니 그것을 고쳐 만들거나 반복할 뿐입니다. 저는 이를 '에피고넨의 시대'라고 부릅니다만, 모든 것이 정점에 달하고 만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아내기란 어렵습니다. 138


바뀌어 버리면 전통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이라는 것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8


즉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자신을 압살하는 것이 전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오리지널리티를 빛나게 함으로써 비로소 전통에 날개가 돋고 살아 있는 형태가 되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149


또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도 하고 싶기 때문에 영화는 '가벼운 것'이 좋다고 말이지요. 영화뿐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음악, 예술, 문화, 연애 등 모두 '무거운 것'이 경원시됩니다. 대용품이 얼마든지 있는 시대에는 '이 영화밖에 없다', '이 사람밖에 없다'고 외곬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습니다. 위험은 줄었습니다만, 역으로 그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166


그런데 미국형 소비사회에 의해 소비자의 필요는 기계적으로 직접 충족되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슈퍼마켓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편리'라는 이름하에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도 말했듯 이, 이는 상당히 '동물화'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풍요로움이라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포스트모던과 맞닿아 사회적 시민이라든가 인권이라든가 자아라든가 하는, 주체성을 가진 '인간'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련된 소비문화를 통해 자기실현을 꾀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들 말하게 되었습니다. 오타쿠 문화는 그 아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74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장치가 닳아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건이 포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맛있는 걸 매일 먹으면 '오늘 스테이크는 됐어'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제품'이라고 해도 마음을 움직이는 신기함이 없습니다. 그 비슷한 것을 이미 어디에선가 봤습니다. 이래서는 소비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하고 사람들이 멈춰 서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수축의 시대, 반성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필요할 때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브랜드 제품이 아니라 싼 옷이라도 좋지 않을까, 그 대신 돈은 내 취미를 위해 쓰고 싶다, 또는 노후를 위해 모아 두겠다, 하고 말이지요. 지금까지의 욕망의 존재 방식이 변화하여 큰 것, 새로운 것, 비싼 것이 좋다는 가치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되고 제조사 측은 한탄하고 있는 겁니다. 186


'누가 하든 어차피 아무것도 파뀌지 않는다.'이런 무력감과 자절감이 합쳐져 일종의 정치적 무관심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점이나 고가의 보석이 아니라 바로 정치입니다.  만약 당신이 행복을 바란다면 정치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1


물론 흘러가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죽은 물고기는 흐름에 흘러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흐름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흐름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변하지는 않고, 사실 그 지점에 야무지게 머물러 있는, 그런 인생이 이상적입니다.  자신의 일정한 지점을 흐름 속에 두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에도 순응하지만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것을 자신 안에 계속 가지고 있는,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20 221


유럽의 도시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벼룩시장이 있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예능인이 있기도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에 의해 즉흥적으로 의미가 바뀌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 장소에서는 진심으로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돈을 쓰지 않아도 만족하게 됩니다. 강변을 멍하니 걷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도시는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도쿄도 그런 장치를 만듦으로써 경치가 바뀌어 가는게 아닐까요.  물론 도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도 중요합니다. 도쿄에는 마련된 장소나 기획된 이벤트만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도쿄의 주민이 '소비자'로서 취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역할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는데, 거기에서 한 발짝 내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살롱풍으로 까페 등에서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겁니다.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요. 파리에는 '철학 까페'같은 것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이 카페에서 철학이나 정치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도 티켓을 사서 이벤트를 보러만 갈 것이 아니라 "모월 모일 모 스타벅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고 직접 한번 기획해 보는 겁니다.  일단 개인이 '소비자'라는 자리에서 빠져나가 진정한 의미의 '시민'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도쿄를 자유로운 도시로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요.  228 





* 도쿄에 가게 된다면, 책 속에 나온 장소들을 서성거려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