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영화예찬

[영화/단상] '청춘'의 나침반 - 미술관 옆 동물원(1998)

멜로마니 2014. 4. 13. 18:37



미술관 옆 동물원 │ 이정향 │ 이성재, 심은하 │ 1998



세기말이었던 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 초까진 분명 소중한 그 무언가가 있다. 그시절 난 중학생이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코드, 감성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당시 유행했던 노래, 드라마 그리고 영화를 보다보면 괜시리 아련함에 젖어버리곤 한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투박한 모습, 그럼에도 참 솔직하고 풋풋한 모습들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27세가 되버린 지금, 난 그시절 영화들을 보며 나의 현재를 돌아본다. 그땐 너무나 늙어 보였던(?), 아니 그저 나이든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이 어느새 나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래서 15년이 지난 영화를 보며 난 영화 속 사람들과 뭐가 다른지, 그리고 뭐가 비슷한지 비교해보곤 한다.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은 그런점에서 나에게 소중한 영화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제목이 상징하는 것 처럼 '남자'와 '여자'에 대해 접근한다. 당시 청춘들인 젊은 남녀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특별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는 것. 결혼식 촬영일을 하는 춘희(심은하)와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는 철수(이성재)의 모습은 획일적인 요즘의 삶과 달리 참 풋풋하고 특이하다. 뜻하지 않게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 둘이 서로에게 투덜대고 그러면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 역시 참 순수해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촬영일을 하면서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는 춘희, 자신의 사랑관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만만치 않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의 사랑을 보여주는 철수, 그리고 그렇게 충돌하는 둘의 모습은 '사랑'에 대한 남과 여의 차이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건 그시절 청춘들의 솔직담백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춘희로 분한 심은하의 털털하고 너절한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남,여라는 성에만 집착해 뻔한 이야기들만 늘어놓는 요즘 드라마,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주 솔직담백하게 청춘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는 것이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철수,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춘희는 결국 뒤늦게 서로를 발견한다. 미술관과 동물원 사이에서 만나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 거기엔 어떠한 기교나 작위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청춘'이란게 그런것이 아닐까. 자신을 포장하는법을 배우기 전 소탈하고 솔직한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시기. 겉치레 떨지 않고 별다른 꾸밈없이도 아름다운 그들이 너무나 부럽다.



그래서 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을 매년 본다. 그리고 청춘의 빛을 떠올린다. '청춘'은 나이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청춘을 결정한다. 그땐 몰랐지만 빛바랜 사진들을 다시 봤을때 그때의 순수함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지듯, 난 이 영화를 볼때마다 청춘이 주는 풋풋함을 상기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춘희와 철수처럼 솔직하고 묵묵하게 살아보자 다짐한다. 훗날 지금의 내 모습도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처럼 애틋하고 풋풋하게 남을 수 있도록 걸음을 떼보는 셈이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청춘'의 나침반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