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쓰고 싶은 영화

[영화/일본] 동경 이야기 (1953) , 오즈 야스지로 - '이별', 그러나 인생은 계속된다.

멜로마니 2013. 2. 23. 15:53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흑백영화를 볼땐 크게 마음을 먹는 경우가 많다. 왠지 지금과는 동떨어진 시대를 만나는게 부담스러운 일인것 같기도 하고, 현재의 세상과는 거리가 먼 '과거' 의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일이 나에겐 그닥 끌리지 않는다. 일본영화의 경우 그 반감이 더 크다. 흑백영화를 본 경우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이키루(살다)', '숨은 요새의 세 악인'과 충무로 영화제에서 봤던 이름조차 기억 안나는 탐정물이 전부다. 그러니 동경이야기가 나에겐 5번째 일본 흑백영화가 되겠다. 하지만 흑백영화 중 나의 편견을 깨준, 제일 인상깊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요 근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많았다. 친한 친구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았고, 후지와라 신야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에 빠져있었다. 이 영화 역시 그 책 속에 소개되기도 하는데,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나에겐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특히 '동경이야기'는 산업화, 도시화된 현대사회에서 '가족'들이 마주하는 이별, 그리고 그 이별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일본 전후시대, 자식들을 모두 동경에 보내고 시골마을 '오노미치'에 사는 노부모의 동경나들이. 그리고 그 후 갑작스런 노부인의 죽음. 그에 대응하는 자식들과 며느리의 모습에서 국경을 넘어 인간이라면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숙명을 보았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나보다.

 

여운이 강해서 그런건지, 내가 받아들이기엔 아직은 부족해서 그런지.. 영화보고 느낀만큼 생각을 정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 최대한 묶어묶어 3 가지로 정리해봤다. 내가 집중한 감상 포인트는 영화 속 '이미지', '인물', '메세지'다. 개인적으로, 좋은 영화는 이 세 가지 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내가 좋았던 부분들을 정리해보니 모두 이 분류 안에 들어갔다.

 

먼저 '이미지'로 본다면 영화는 크게 도시를 상징하는 '도쿄'와 한적한 시골마을 '오노미치'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그 안에서 전통가옥, 의상, 생활방식 등 일본 특유의 모습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오노미치'는 왠지모를 향수를 일으킨다. 영화 후반부, 노인이 아내를 잃은 후 '정말 아름다운 새벽이었어' 라고 읊조리며 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후지와라 신야는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 오즈 야스지로는 '도쿄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서 오노미치의 절을 통해 일본의 풍경을 굉장히 완성도 높게 잡아냈다. 종루와 소나무를 배경 삼고 바닥에는 포석을 깐 경내. 높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떠들썩한 실내. 살아가는, 살려 하는 자의 삶과 죽음의 시간을 은유하는 산 그림자. 그를 통과하는 증기기관차. 마을 너머로 오노미치 수로가 보이고, 천천히 물을 가르는 낚싯배와 화물선에서 인간을 향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물가 건너에는 피안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섬들. 그 모든것을 바라보는 외톨이 노인의 뒷모습. 그곳에 오랜 인생길에서 지나쳐 왔을 '과거'가 비춰지고 있는 것 같았다. "

 

한 장면을 이루는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이렇게 조용히 일본을 보여주고있다. 일본이 가진 특유의 정서와 느낌들이 이미지로 표현된 순간이다. 감독의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다음으로 인물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을 잘 키워 도시에 보내고 시골엣 소박하게 살아가는 노부부. 의사일을 하며 도쿄 외곽에서 살고 있는 큰아들, 미용실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첫째딸, 전쟁에서 죽은 둘째아들의 며느리 '노리코', 오사카에 사는 막내아들, 그리고 노부부와 함께 시골에서 사는 막내딸까지 일본의 전후시대 대가족을 보여준다. 자식들을 보러 동경에 왔지만 먹고살기 바빠 눈칫밥만 먹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노부부, 그런 부모님 속도 모르고 자기 생각만 하는 큰아들, 첫째딸. 오히려 진심어리게 시부모를 돌보는 며느리 '노리코'. 그 따뜻함으로 노부인은 동경여행중 함께 제일 편안한 밤을 보내고,  며느리에게 고마워하며 오노미치를 꼭 한번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이 부분 역시 명장면이다. 죽은 아들을 잊고 다시 재가해 행복하게 살라고 이야기 하는 노부인. 그리고 그 곁에 함께 누워 잠을 청하는 며느리 '노리코' 이 둘의 이상하면서도 애틋한 관계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또한번 국경을 넘어 마음으로 공감한 순간이었다.

 

 

뭐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시골에 사는 노부부와 도시에 떨어져 사는 자식들의 이야기. 이런 상황이 지금도 우리 삶에 있으니 영화가 무덤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감독이 보여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과 대답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언제나 무조건적 사랑을 보여주는 부모,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 또 나름의 가족을 꾸려나가는 자식들. 그 사이에 이별이 온다면? 그리고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런 질문에 대해 감독은 극중 '노리코'를 통해 그 대답을 제시한다. 영화 후반부, 노부부를 모시고 함께 살던 막내딸 '쿄코'는 '노리코'에게 볼멘소리를 낸다. 큰오빠, 큰언니는 부모님 생각은 안하고 자신들 생각만 하며 일찍 올라가버렸다고,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할때 노리코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쿄코.. 나도 네 나이땐 그런 생각을 했단다.  하지만 자식들은 언젠가 부모 품에서 벗어나게 되지. 너도 나이를 먹으면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될거야. 그러니까 그 분이 그런 의도로 말을 하신 건 아닐거야. 이제 그 분들도 자신의 가족을 돌봐야지."

"그래도 이해가 잘 안가요. 전 그렇게 살지 않을 것 같아요. 만약 그렇다면 여기 모여있는 가족의 '의미'는 대체 뭐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이들도 다 그렇게 된단다. 점차 그렇게 변해가는거야."

"그럼 언니도?"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

"인생을 사는 건 다 그런걸까요?"

"응 그런거야."

 

그런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족'이란것에 속해 그 안에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를 만나서 또 새로운 가족을 꾸려나가고, 예전의 가족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자기를 낳아준 부모, 자신과 함께했던 피붙이들이 세상을 떠나도 인생은 계속되기 마련이다. 그들에겐 새로운 가족, 삶이 있으니 또 다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 속 그들은 그저 각자가 속한 '가족'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산업화, 서구화같은 사회의 특성들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사회를 만들어가는 '가족'은 그렇지 않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족의 탄생과 소멸은 '이별' 후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이제 그게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알 것 같다. '가족'과 '죽음' 그리고 '이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떠나보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다.

 

 

 

사진 출처 :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2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