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쓰고 싶은 영화

[영화/미국] 선셋대로(1950) 빌리 와일더 - '영화', 허구의 성을 쌓다.

멜로마니 2013. 1. 27. 23:34

 

 

 

 

 

 

 

너무 큰 감동을 받은 영화들을 다시 보는일이 쉽지가 않다.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선뜻 다시 보기 힘들때가 많은데 그럴때면 그냥 마음이 내키는 영화들을 보기 시작한다. 그렇게해서 1년에 2-3번 꾸준히 보는 영화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재미가 있는건 말할것도 없고 남들이 굳이 걸작이라고 하지 않아도 이런 영화들은 볼 때 마다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매 년 마다 반복해서 보다보면 질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영화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얻어낸다. 선셋대로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처음 이 영화를 볼땐 흑백영화속 으스스하고 광적인 주인공 '노마 데스몬드'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봤는데 보면 볼수록 그 시대와 인생이 보인다. 1950년의 헐리우드의 모습, 그리고 화려한 시절에 박제되어버린 '노마 데스몬드'는 6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통용되는 삶의 모습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영화'라는 매체 속에 흐르는 삶의 모습이다. 영화, TV같은 매체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우리의 삶속에 녹아드는 그것들의 색깔에 대해 사고하고 돌이켜봐야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 질문에 '선셋대로'가 답한다.

 

헐리우드에서 B급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삼류작가 '길리스(윌리엄 홀든)'. 그나마도 변변치 않아 일이 없어 차를 저당잡히고 월세도 밀려있다. 그러던 중 저당잡힌 차를 몰고다니다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우연히 들어가게 된 선셋대로의 으스스한 대저택.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된 무성영화의 스타 '노마 데스먼드(글로리아 스완슨)'. 지난 화려한 시절속에 갇혀 망상속에서 살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하나의 기회로 다가온다. 그렇게 노마는 길리스에게 자신이 나올 영화대본을 검토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기간동안 그는 그 음산한 대저택에서 함께 살게된다. 매일 대저택의 거실에서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샴페인에 캐비어를 먹는 화려한 생활을 하지만 사실 그녀의 생활은 과거의 명성과 허상속에 갇혀있는 생활이다. 첫번째 남편이자 무성영화 감독이었던 그녀의 집사는 그녀가 보냈던 그 화려한 시절들속에서 영원히 지낼 수 있도록 곁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어준다. 이런 대저택의 생활이 길리스의 눈에는 이상하고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만 그에게 필요한 '돈'과 '부유한 생활'은 점점 그를 그곳에 묶여있게 만든다. 길리스와 함께 지내는 노마는 그의 젊음과 그에서 오는 위안을 얻길 원하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기까지 이른다. 그리고 길리스는 그걸 이용해 젊음을 팔아 부유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껴오던 중 만난 파라마운트사 시나리오 검토 여직원. 그리고 그녀에게 작품제의를 받고 몰래 그 여직원과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길리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삶을 되찾고싶어하고 그런 그의 모습은 노마와 충돌한다. 둘의 갈등은 고조되어 길리스는 대저택을 떠나기에 이르고 떠나는 그를 잡기위해 노마는 총을 겨누고 그렇게 길리스는 그녀의 대저택 수영장에서 죽는다.

 

 

 

 

이렇게 길리스가 죽음을 맞고 영화가 끝나는 듯 싶지만 사실상 러닝타임중 마지막 10분이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가면서 영화가 담아내는 이야기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이튿날, 선셋대로, 이 무성영화의 대스타의 저택엔 살인사건으로 온갖 기자들이 총출동하고 그들에 둘러싸인 노마 데스몬드가 보인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히려 불안해하지 않고 상기된 모습을 하고있다. 이미 그녀의 환상속엔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촬영을 하고있다는 망상이 생겨버린것. 그런 노마를 잘 아는 집사는 마지막으로 노마를 향해 카메라를 비춘다. 그리고 노마는 그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클로즈업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난다. 이렇게 노마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영화의 마지막 3분에서 난 할말을 잃게된다. 보통의 누아르 영화들이 가지고있는 음침함과 범죄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영화가 다루는 주제가 풍부하기에 이 영화는 볼때마다 나를 파고든다. 내가 특히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보는건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영화의 메세지이다.

 

먼저 캘리포니아, 선셋대로의 대저택 풀장에서 죽어있는 한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잘 짜여져 있으면서도 참신한 시나리오를 잘 보여준다. 이 남자의 죽음의 이유를 따라가면서 영화는 전개되고 중간 중간 사건에 따라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과하지 않고 잘 엮여있어 영화에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노마는 실제 글로리아 스완슨의 모습들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교체기속 여배우의 이야기는 현실을 담아낸다. 또 우리에게 흥미로운 이야기인 살인, 스타 그리고 영화라는 중심단어들은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주기 충분하다. 단순히 시나리오만 본다면 재미는 있지만 진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50년이 흐른 지금, 지루함 없이 수십번을 보게 만드는 매력은 무엇일까?

 

 

 

 

 

그 매력은 연출에서 나오는 것 같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음산하고도 어두운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던건 인물,카메라,음악,미술등의 조합이 훌륭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영화 첫시작을 빠른템포면서 긴장감을 주는 음악으로 시작하며 빠져들게 만드는것도, 마지막을 오히려 천천히 카메라를 정적으로 움직이면서 영화가 담아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보통의 누아르물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만드는것도 연출자의 능력인듯 싶다. 중간중간 으스스하면서도 화려한 대저택의 모습과 거울을 이용한 풍부한 화면연출은 지금의 영화들보다 세련되게 다가온다. 그리고 적절하게 긴장감과 지루함을 잡아주는 음악역시 탁월한데, 음악감독은 프란츠 왁스먼으로 이창(1954), 서스픽션(1941), 레베카(1940) 등 히치콕의 스릴러물에서 음악을 맡은 사람이기도 하다. 히치콕의 스릴러물들이 떠올려지면서 이렇게 영화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호흡이 잘 갖춰진 동시에 영화는 메세지로 그 빛을 발한다. 헐리우드, 급격한 영화산업 발전 속 사라져가는 무성영화의 퇴물여배우 '노마'를 보고있으면 영화라는 매체에서 '스타'가 가지고있는 성격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헐리우드영화는 스타산업과 연결되어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엔터테이먼트의 느낌이 강한데, 여기안에 둘러쌓인 사람들의 모습은 그 영화의 성격과 닮아있다. 영화라는 상상,환영의 매체속에 자신의 존재가 영화처럼 환상의 거품이 생기고 그것을 자신이라 믿게되는것,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환영만을 바라보는것은 영화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의 아름다움은 영화 속 연기자에게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배우가 아닌 스타가 되는 순간 그의 인생도 영화가 되어버린다. 그 순간부터 영화처럼 인생에서 허구의 성을 쌓기 시작하는것. 유성영화의 큰 시대의 물결속에서도 홀로 소리없는 환영의 세계에 사는 노마는 그 허구의 성이 깨지는 순간 충돌과 붕괴가 온다는걸 보여준다. 이 작품이 가진 가치가 바로 여기서 나오는데, 특히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한 후 헐리우드라는 특별한 곳에서 정신없이 영화가 쏟아지던 1950년대에 영화 속 스타를 보여주고 숙고한다. 영화, TV등 이미지가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 이 화두는 더욱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젊음과 외면의 미,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노아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그렇게 우리의 삶속엔 이 1950년도 영화 속 허구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2012년, 넘쳐나는 허구의 이미지들 속에서 우린 어떤것에 주목해야할까. 무엇보다 영화가 만든 허구의 성을 넘어 내면으로부터 감동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하는것. 그래서 주변으로부터가 아닌 자신의 인생 속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세상과 사물을 보는 혜안을 갖는게 중요하다는 것. 그 깨달음을 이 작품을 통해 만났다.

 

 

 

 

* 선셋대로 마지막씬 (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SA9lFsiut2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