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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단상] 몽상가들(2003)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멜로마니 2014. 3. 15. 23:31



몽상가들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2003




지난번, 몽상가들 단평을 남긴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나선 불쾌감이 느껴져 부정적 생각이 강했는데 요즘 몽상가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셋이 바깥으로 뛰어나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와닿는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감정적 악평보단 몽상가들의 메타포에 집중해보려 한다.


1968년 파리엔 자유를 꿈꾸는 주인공 셋이 있다. 미국인 유학생 매튜가 시네마테크에서 쌍둥이 남매 이자벨과 테오를 만나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을 그들의 유희와 쾌락에 집중한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부모가 휴가를 떠난 공간에서 그들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한 생활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금기가 없이 즉흥적으로 원하는걸 즐기고 시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낯설음과 불편함을 주기 충분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거나 누군가의 앞에서 자위를 하는 등 금기를 깨는 그들의 행동 속엔 '자유'에 대한 욕구가 담겨있다.


결국 그 수많은 뻘짓(?)은 영화 마지막에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들이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건 폐쇄된 곳에서 바닥까지 쳤던 '자유'의 몸짓을 통해서였다. 욕망과 금기를 넘어설 때, 분별없이 느끼는 것들을 그대로 행동하게 될 때 우린 '자유'에 한걸음 가까워지게 된다. 설사 그것이 윤리적 비난을 받더라도 작은 용기들이 순간에 맞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부모님이 자신들을 발견한 걸 깨달은 이자벨이 가스를 통해 자살을 하려 한 것도 자유에 대한 무게감을 받아들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이자벨은 부모님에게 이런 모습을 들키게 되면 자살할 것이라 밝힌 적이 있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몽상가들은 '자유인'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한 것에서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나의 욕구와 욕망 그리고 한계에 충실한 후에야 68혁명과 세상에 대한 싸움도 가능해진다. 그들이 바깥으로부터 날라들어온 돌에 잠을 깨 정신없이 바깥으로 나갔던 것처럼 '자유'는 우리에게 이성보단 즉각적 행동을 촉구한다. '이성'엔 판단,편견 그리고 망설임이 개입된다면, '행동'은 즉흥적이고 우발적이다. 어찌보면 욕구에 충실했던 셋이 혁명에 뛰어드는 그 순간에도 '자유'의 욕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혁명'이전 우린 뭐가 중요한지 돌아봐야한다. 세계평화, 인권보호같은 거창한 구호 이전에 '자유'라는 단어가 주는 힘으로 나부터 잘 살아내고 있는건지 반추해봐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넘어서고 깨지도 못했는데 그 어떤 것들이 와닿을 수 있을까. 지식인 코스프레를 하며 혁명을 외치기보단 스스로를 아이라고 생각해보자. 나와 너, 그 작은 호기심과 욕구에 충실할 때, 그리고 작은것부터 위선과 검열을 하지 않을 때 우린 보다 행동에 거리낌 없어질 수 있다. 그렇게 자유인으로 커갈때 자연스럽게 세상을 만나고  더욱 거침없이 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느끼는대로 행동하기', 그 바닥엔 '자유'의 무거움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 자유는 우릴 행동하게 할 것이니 '몽상', 제대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