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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단상] 또 하나의 약속(2014) - 김태윤

멜로마니 2014. 2. 17. 13:01




또 하나의 약속 │ 김태윤 │ 2014 │ 박철민 김규리 윤유선 박희정



그런 영화들이 있다. 너무나 보고싶지만 너무나 보기 힘든, 이미 포스터만 봐도 마음이 힘들어지는 그런 영화들.. '또 하나의 약속'은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실화를 통해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는 정말 보기 힘든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봐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러닝타임을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또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승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린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백혈병 사건을 알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받지 못한채 희귀병으로 숨졌으며 삼성측에서는 이들에게 합의를 강요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누구나 알고는 있는 그 사실을 영화는 드라마라는 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한 택시기사 아빠와 백혈병에 걸린 딸, 그리고 그 가족들의 희망없는 투쟁을 2시간동안 함께하면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건'은 한걸음 더 가까이 성큼 다가온다. 그 짦은 단어들 속에 담긴 억울함, 분노, 고통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가 느닷없이 백혈병에 걸려 얼마나 아팠을지,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돈으로 계산하는 기업의 횡포에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유미와 그 가족들의 눈물겨운 투쟁에서 답답함을 느끼면서 한편으론 한국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우린 '노동자'라는 말을 꺼리고 회사원, 근로자와 같이 근사하게 포장된 단어로 정체성을 바꾼다. 하지만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은 노동자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다. 하지만 영화 속 삼성을 보며 느낀건 이들에게 노동자는 하나의 '노예'일 뿐이라는 것이다. 돈을 불리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그리고 사람이 죽어나가도 기계 부품처럼 새로운 사람으로 갈아치우는 기업의 모습에선 더이상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고 싶지 않아졌다. 이럼에도 기업이 나라를 살린다고 할 수 있을까? 수전노같은 대기업들의 노예로 살아가는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걸고 노동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돈으로 무마하려는 기업의 모습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의원시절 한 말이 떠오른다.


"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이야!"


한달에 80만원 주면서 백혈병에 걸리게 하는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최고라고 대우해주는 한국, 우린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있다. 일을 하다가 죽어도 그 일을 시킨 기업이 모른채하고 국가와 법도 기업의 편에 서있다. 영화를 보며 사회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분노가 확실해졌다. 약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 결국 그 빈자리를 시민 하나하나의 힘으로 메꾸는 나라, 그게 한국인 것 같다. 이 영화의 탄생도 시민의 힘으로 가능했으니까. 우린 결국 사람이 돈보다 못한 나라에 살고있는 거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영화를 본다는 건 참 많은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영화를 통해 우린 현실엔 없는 또다른 세상을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엔 이런 영화도 있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우리가 알고싶지 않은 사실들, 검게 가려진 그늘을 들추는 영화들.. 난 그런 영화가 좋다. 그늘을 들춰내고 함께 나눴을때 그곳은 더이상 그늘이 아닌거니까, 그리고 그 그늘속에서 힘들어했던 사람들도 빛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으니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그렇게 우리 마음 속 답답함과 분노를 끌어올려주는 영화다. 그리고 살면서 만나게 될 진짜 우리 삶의 이야기다. 그러니 주저말고 마주하자! 





당신의 눈물나는 승리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