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쓰고 싶은 영화

[영화/겨울특선] 샤이닝(1980) - 스탠리 큐브릭

멜로마니 2014. 1. 23. 00:05



샤이닝 │ 스탠리 큐브릭 │ 1980



여름보다 겨울이 영화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절인 것 같다. 눈오는 날,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겨울을 떠올려주는 영화는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겨우겨우 떠오른 영화들을 정리해보니 멜로보단 살인,미스테리같은 장르가 많았다. 그 중 고르고 고르니 '샤이닝'이 나에겐 대표적 겨울영화였다. 매년 겨울마다 샤이닝은 꼭 한번씩 보는 편이니까.


먼저 샤이닝은 영화 포스터에서 보여주는 딱 그 느낌이다. 눈알이 튀어나올정도로 무언가를 매섭게 째려보는(?) 잭니콜슨과 공포에 질려 동공이 확장된 셜리 듀발의 표정은 이 영화가 어떨지를 잘 보여준다. 즉 미치광이와 그에 극대화된 공포감이 영화에 등장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샤이닝 외에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속 등장인물중엔 비슷한 연기톤을 가진 캐릭터들이 있다. 시계태엽 오렌지(1971)에서 망나니 행태를 보이는 알렉스와 세 친구들이나 아이즈 와일드 셧(1999)에서 뉴욕 중산층을 보여주는 톰크루즈의 연기는 자꾸 겹쳐진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사람들, 핀트가 나간듯한 시선과 표정은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미스테리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티븐 킹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오래된 호텔에 한 가족이 관리인으로 들어오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폭설로 겨울동안 영업을 쉬는 호텔에 관리인 자격으로 소설가 잭(잭 니콜슨)의 가족들이 지내게 된 것. 예전 관리인이 자신의 딸들을 죽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잭은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고 끊었던 술을 마시며 환영을 보게된다. 점점 유령에 씌여 미쳐가는 잭을 보며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그의 아들 대니와 부인 웬디(셜리 듀발)는 공포에 휩싸인다. 여기에 도망칠 곳 없는 제한된 공간은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그렇게 아무도 오지 않는 겨울의 한 호텔에서 벌어지는 한 가족의 조용한 살인극은 시작된다.





어찌보면 유치할수도 있는 스토리를 중량감있게 담아내는건 스탠리 큐브릭의 연출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기존의 스릴러물에선 볼 수 없는 차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스테디 캠으로 촬영한 카메라의 움직임, 공포를 주는 장면에서 음악을 오히려 제거하는 것 그리고 좌우대칭이 완벽한 화면 배치는 정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로 인해 죽은 쌍둥이 자매의 환영과 이에 따른 환상적 장면들은 극적 효과를 가지게 된다. 거기에 남다른 영화 스케일도 한 몫 한다. 영화 속 피가 쏟아지는 씬은 영국 런던 인근의 'Elstree Studio'에서 촬영되었으며 호텔 내부는 미국 요세미티 국립 공원의 'Ahwahnee Hotel'을 그대로 본 따 만들었다. 대규모 호텔 안에서 단란한 가족 셋에게 벌어지는 일은 그 중압적 규모에서도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솔직히 매년 보지만 그때마다 아무생각없이 본다. 영화를 보고있으면 뭔가 혼이 빠지는 기분이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숫자들의 의미와 같은 재미있는 분석들이 많지만 영화를 볼땐 별생각 없이 본다. 왜냐고? 그냥 봐도 충분히 머리 아프니까.. 앞뒤없이 미쳐가는 잭과 호텔의 유령들, 거기에 대니의 텔레파시 능력은 모든걸 정신없이 뒤섞어 놓는다. 거기에 마지막 부분에서 잭이 눈속에 파묻혀 눈이 뒤집혀있는 씬까지 보게 되면 거의 머리는 멘붕의 지경에 이른다. 솔직히 이쯤되면 영화가 무서운것보다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서 샤이닝은 매번 오프닝과 중반까지는 몰입도가 강한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거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이 영화를 가장 무서운 영화 11선에서도 꼽았지만 나에겐 공포보단 골치아픈 영화다. 겨울마다 샤이닝 속 오버룩 호텔이 생각나 영화를 보지만 어김없이 중반엔 잠이 들어버리는.. 그래서 싱거운.. 그런 영화인 것 같다. 아무리 포장하려해도 감출수 없겠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내 스타일 아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