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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타인의 취향(1999) - 아네스 자우이

멜로마니 2014. 1. 18. 19:53



타인의 취향 │ 아네스 자우이 │ 1999



사람은 크게 보면 두 종류가 있다. 자신의 취향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즉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자신의 취향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지 못한다. '취향'이란건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만의 취향이 있다는 건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음악, 장소 그리고 사람까지 모든 취향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한 사람을 만드는걸테니까.





이 영화는 바로 그 '취향'에 대해 접근한다. 특히 자신이 몰랐던 취향을 타인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영화속엔 많은 등장인물들이 엮여 있지만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요 인물은 카스텔라(장 피에르 바크리)와 클라라(안느 알바로)다. 성공한 사업가 카스텔라는 취향을 찾을새 없이 돈만 보며 살아온 남자다. 이에 대조되는 부인의 강한 취향으로 온통 꽃으로 도배된 집에 사는 그는 영어 과외 선생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연히 부인의 강요로 함께 본 연극 '베레니스'에서 연기를 하는 클라라를 보며 카스텔라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클라라와 함께 연극을 하는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는가 하면 그녀의 취향에 따라 콧수염을 깎는 등 클라라를 위한 새로운 시도도 서슴치 않는다.


영어 과외시간, 그는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담아 영어로 쓴 시로 표현하기에 이르지만 클라라의 눈에 그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다. 그렇게 카스텔라의 고백을 거절하는 클라라. 이후 사이가 소원해지고 클라라는 그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하지만 카스텔라는 고백이 실패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녀의 지인들을 만나고 연극을 보는 등 클라라가 부담스러워하는 행동을 한다. 클라라는 알지 못한다. 카스텔라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 것을, 그에겐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을. 클라라와 친한 화가의 전시회를 구경하고 공장에 어울리는 외벽 작업을 화가에게 맡기는 그의 모습은 클라라의 의문을 살 뿐이다. 그녀는 그것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 카스텔라의 미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 클라라는 이를 참지 못하고 카스텔라에게 부담스러움과 미안함을 표현하지만 카스텔라는 오히려 차가울만큼 이성적이게 말한다.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그것으로 일은 끝난것이며 자신은 그저 자신의 취향대로 외벽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그의 냉랭한 대답을 들은 클라라는 당황한다. 아니 그때부터 오히려 카스텔라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타인이기보단 그만의 취향을 찾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 '남성'으로 보기 시작한 것. 이제부터 둘의 관계는 오히려 역전된다. 클라라가 카스텔라를 마음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씬은 영화 끝무렵 클라라의 연극무대 장면이다. 클라라는 새로운 연극을 준비하며 카스텔라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초조한 마음으로 연극 시작 전 카스텔라를 찾는 그녀,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다. 괜시리 서운해진 마음으로 연극은 시작되고 중간중간 계속해서 카스텔라를 찾던 중 연극은 끝이 난다. 마지막 무대인사, 시무룩해진 클라라는 포기한채 인사를 마치려 하지만 바로 그때, 관람석 중간에서 클라라는 카스텔라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순간 그녀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행복함으로 가득 찬다. 그녀 역시 카스텔라가 와주길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자신이 무대에선 모습을 좋아해주고 새롭게 변한 카스텔라에게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사랑'은 자신이 몰랐던 취향을 알게되는 방법 중 가장 강력한 방법이란 것도 보여준다. 타인을 통해 취향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면 우린 몰랐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신기한 일을 경험한다. 할 줄 아는건 돈 버는일 뿐이었던 카스텔라도 사랑에 빠진 뒤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사랑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란 존재는 아주 특별하다. 나와 함께할 수 있는 타자를 만난다는 건 너와 나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무후무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해 만들어진 '나의 취향'에 더해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취향'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 나를 알아가는 경험, 거기엔 타인의 취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사랑'은 우릴 살아있게 만들어준다. 영화 속 카스텔라와 클라라처럼 말이다.





* '타인의 취향' OST 中 'Au Lait' 듣기 : http://blog.daum.net/jooricomhaha/610


* 영화 속 '마니'가 바로 이 작품의 감독 아네스 자우이 ! ㅎㅎ *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