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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리뷰] 사이비(2013) - 연상호

멜로마니 2013. 12. 28. 22:13



사이비 │ 연상호 │ 2013 │ 목소리 출연 :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불편하다.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다. 그의 두 장편인 '돼지의 왕' 그리고 '사이비'는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참기 힘든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바로 거기엔 외면하고 억지로 지워냈던 우리 삶의 단면들이 보인다. 잊고만 싶었던, 마주하기 싫었던 모습들을 잔인할만큼 강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한국의 그늘을 짚어내는 특별한 애니메이션이다.


'돼지의 왕'에서는 학교로 상징되는 세계에서의 권력과 폭력이 그려진다면, '사이비'는 한 인간이 무언가를 믿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믿음'은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받으려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작품의 배경은 댐공사로 곧 수몰되는 작은 마을로, 여기에 차려진 한 교회가 '천국'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은 종교에 온 삶을 쏟게 된다.


모든 주민들은 교회에서 기도를 하며 자신의 삶을 구원받으려 하지만 단 한 명, 주인공 영선의 아버지만큼은 예외다. 마을을 떠나있다가 돈이 없어 다시 집에 온 영선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인 영선의 등록금으로 도박을 하고 술을 마시며 아내와 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교회의 장로가 수배령이 떨어진 사기꾼임을 알아본 것은 영선의 아버지 뿐이다. 그를 제외한 모든 마을 사람들은 사기꾼 장로와 그가 데려온 목사를 우상처럼 여기며 모든 것을 내던진다. 수몰지역 보상금을 바쳐가며 새로운 기도원 건축을 열망하는 그들의 눈에 장로를 사기꾼이라 말하는 영선 아버지는 '사탄'일 뿐이다. 영선이 교회에 빠져 장로의 꾐에 넘어가 술집에서 일하는 걸 본 아버지는 낫을 든다. 그리고 마을과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목사와 장로를 찾아가지만 이미 장로는 죽어있다. 장로를 죽인건 목사와 천국을 쫓는 한 신도였다.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크게 두 줄기로 갈라진다. 영선과 장로를 쫓는 영선 아버지의 이야기가 한 쪽에 있다면, 장로가 사기꾼이란 걸 알면서도 장로의 협박과 두려움에 자신을 속이는 목사의 이야기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세를 괴로워하는 주민들에게 기도를 하고 생명수를 주는 목사지만 그 역시 지난 과거 속 두려움에 떨고 구원만을 바라는 한 인간이다. 서울에서 목사를 하던 중 여고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뒤 아이가 자살하자 마을로 도피한 그는 모르는척 장로의 사기행각에 일조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려 한다. 그리고 이미 현실의 삶엔 희망이 없는 그들은 '하나님'을 통해 천국 그리고 죽음을 꿈꾼다. 천국에 갈 자리가 정해져 있다며 그곳에 가기위해 교회에 전재산을 바치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


연상호 감독의 두번째 애니메이션 '사이비'가 좋은 작품인 이유는 인간이 가지는 맹목적인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세심하게 그린다는것에 있다. 왜 사람은 무언가를 믿으려 하는가? 작품 속 마을 사람들은 왜 교회에서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구원받으려 하는가? 거기엔 희망 없는 현재의 삶이 있다. 곧 물속으로 사라질 작은 마을엔 희망도 미래도 없다. 특히 결핍뿐인 마을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익숙해진 '영선'에게 어쩌면 '하나님'이라는 믿음은 그녀가 살아야 할 마지막 이유일지도 모른다. 여고생에 관한 죄책감을 가진 목사도, 폐병으로 죽음을 앞둔 슈퍼 아주머니도 잡을 수 있는건 오로지 '하나님'이란 믿음이었다. 현실이 어떻다는 사실보단 그보다 멀리있는 후세와 천국을 꿈꾸며 그렇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이비'속 마을 주민들과 목사는 상처받고 버려진 슬픈 존재들이다. 


주인공 영선의 아버지가 그렇게 폭력적이지만 않았더라도, 딸과 아내를 조금만 보살폈더라도, 이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사이비'는 보여준다. 누군가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삶이 흔들릴 때, 그래서 삶의 희망이 없을때, 더 나아가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사랑'해주지 않을 때 믿음과 종교는 그사람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것을. 결국 어느곳에 서있지도 못한 상처받은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을 보며 맹목적 믿음을 키우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된 후엔 어떻게도 돌릴 수 없음을 말이다. 즉 타인에게 가한 폭력과 불행한 환경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황폐하고 유약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보듬지 못할 때, 그 틈에서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싹튼다. 종교가 내세를 말하고 현재의 삶이 아닌 이후의 삶을 말하는 것도 어찌보면 지금의 비루한 삶을 참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렇지 않게 스며드는 맹목적인 믿음이 어떻게 삶을 바꿔놓는지 지켜본다면 현재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점들도 같은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은 맹목적 믿음이 만연한 사회다. 무언가를 스스로 체득하고 판단내리기보단 누군가에게 듣거나 화면을 통해 본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진실로 믿어버린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맹목적 믿음으로 사는건 무서운 일이다. 자신이 아닌 무언가에 기대어 의존적으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회가 근거 없는 믿음을 강요하고 진실을 은폐한다면 그것은 마비된 사회다. 마비된 사회에선 모두가 천국만 꿈꾸는 식물인간이 된다. 이 작품은  현실이 아닌 천국만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