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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 임순례

멜로마니 2013. 12. 9. 16:57




와이키키 브라더스 │ 임순례 │ 2001 │ 이얼, 박원상, 황정민, 류승범, 오지혜


보고나서 어제도, 오늘도 먹먹하다. 아스라한 기억이라 해야 할까. 7080 그룹 사운드 속에 담겨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시간을 벗어난 후에도 계속되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 꿈과 낭만 그리고 현실이 뒤섞인 세상은 영화 속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모습이다. 음악에 빠져 젊은 나날을 보낸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걸까.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는, 그래서 아련한 그 추억들을 영화는 소소하고 절절하게 담아낸다.


업소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한 명씩 그룹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떠나고 떠나 3명만 남은 밴드는 리더 성우(이얼)의 고향을 마지막 보루로 업소생활을 시작한다. 남아있는 성우, 정석(박원상),강수(황정민)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성우의 경우 힘들고 어렵더라도 묵묵히 음악만을 바라보며 동생들을 챙긴다. 정석은 타고난 바람둥이로 여자관계가 복잡한 건반 연주가다. 강수는 드럼만 보고 인생을 살아와 여자에겐 말한마디도 제대로 못거는 촌뜨기다. 그렇게 각기다른 세 남자가 작은 시골마을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연주를 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 중반 성우가 고향에서 함께 그룹 사운드를 하던 친구들을 만나는것에서 부각된다. 플래시백으로 성우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여주는 영화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바닷가에 앉아 통기타를 치며 여고생에게 빤히 보이는 접근을 하는 성우와 그 친구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도 그 수줍음을 전달해준다. 고등학생 성우를 연기한 앳되고 풋풋해보이는 박해일의 등장도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그렇게 성우는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거속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게 된다. 첫사랑이었던 인희(오지혜)와의 만남도 성우에겐 소중하기만 하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 흐른 후 만난 추억속 얼굴들은 왠지모를 안타까움을 던져준다. 어렸을적 음악의 스승이었던 선생님 역시 곳곳을 전전하며 술만 마시는 모습에서 어쩌면 성우는 소리없는 체념을 한지도 모르겠다. 왜 이래야 할까. 나이가 먹어도, 시간이 흘러도 꿈을 잃지 않고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왜이리 지난하기만 할까.




만약 1,2년전 이 영화를 봤다면 그 지난함에서 내 감상이 그쳤을 것 같다. 하나씩 줄어드는 업소들, 그 줄어드는 무대에서라도 노래를 하고싶어 블루스타임에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난 답답함만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영화 마지막 씬에서 임순례 감독의 진면목을 만났다. 모두가 아련한 기억으로 떠나보낸 그 시간들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그 셋이 구슬프게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는 모습에 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려보냈던 시간들 속에 묵묵히 세 사람은 무대를 지키고 있었다. 제대로 산다는건 그런게 아닐까. 남루하고 잊혀지고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렇게 계속 길 위에 남아있다면 자신의 인생에 만큼에는 당당한게 아닐까. 그게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겐 사그러져가는 기억들이라 하더라도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거기서 오는 아련함과 그리움의 순간을 잡아준 임순례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늘지고 어두운 인생길에서 발견한 아스라한 기억들, 그 길 위엔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놓여있었다. 




* 내가 뽑은 명장면 - 영화 후반부 룸에서 옷을 법고 텅빈 눈으로 아파트를 부르는 성우의 씬. 임순례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력에 감탄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