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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사이드웨이(2004) - 알렉산더 페인

멜로마니 2013. 11. 22. 16:44

 

 

 

사이드웨이 │ 알렉산더 페인 │ 2004

 

요즘은 영화를 쉽게 보질 못한다. 나만 그런가. 괜시리 큰맘을 먹어야만 보게된다. 토리노의 말을 보다간 5분도 못가서 꺼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달 전쯤 본 '사이드웨이'는 가볍고 유쾌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줬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에게 알렉산더 페인이란 감독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는 두 남자의 시한부적(?) 여행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마일즈는 영어교사로 일하지만 작가의 꿈을 품은 남자다. 가슴아픈 이혼 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처량하게 살지만 '와인'만큼은 일가견이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한편 그의 단짝친구 잭은 왕년의 TV 배우로 여자라면 눈이 돌아가는 전형적인 남성이다. 그런 잭이 결혼을 앞두고 마일즈와 총각파티겸 여행을 떠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애초에 여행길은 마일즈가 소개하는 와인농가를 방문하거나 하릴없이 골프를 치는 등 마지막 여유를 즐기기 위해 계획됐지만 결혼 전 마음껏 여자들과 함께하려는 잭의 야심으로 편안한 여행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둘은 여행중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먼저 주인공 마일즈는 불쌍한 남자의 표본을 보여준다. 그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후 작가의 꿈을 위해 자전적 소설을 쓰고 출판사의 연락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의 곁엔 아무도 없다. 그저 작가를 열망하는 마음과 외롭고 쓸쓸한 일상들이 전부다. 그런 그가 잭과의 여행을 통해 조금씩 변한다. 여전히 마음이 가는 여자에게 쩔쩔매고 어쩔줄을 몰라하지만 와인과 함께하는 여행속에서 그는 천천히 마음의 변화를 보인다. 바에서 만난 마야와 와인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이 생기지만 이혼한 전처의 그림자에 괴로워하며 사랑에 주춤거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결국 여행을 통해 그의 삶은 변화한다. 영화 후반, 그의 소설은 퇴짜맞고 이혼한 전처와 그녀의 새남편을 결혼식에서 맞딱들이지만 그는 달라져 있다. 그 비결엔 여행과 와인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잭'의 입장이 되어보자. 잭은 돈많은 여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마일즈와 마지막 밀월여행을 떠난다. 약혼녀에게 매일밤 전화로 사랑을 전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다. 결혼하기 전 세상의 모든 여자를 만나도 시원치 않아보이는 그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영화의 주요 코믹요소로 등장한다. 그러던 중 와인 시음실에서 만난 스테파니는 잭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는 자신의 결혼도 속인채 스테파니와의 타오르는 사랑을 즐기기에 바쁘지만 결국 이 뜨거운 사랑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렇게 사랑에 대해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는 마일즈와 잭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애잔함과 코믹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여행'에서 오는 우연과 짜릿함을 현실적이면서도 가볍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사랑이 떠나고 꿈은 멀어져가는 마일즈에게 와인농장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하나의 '도발'이다. 거기에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잭은 마일즈에게 새로운 감정이 일어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생의 씁쓸함과 고독에 갇혀있던 마일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사람을 만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영화 중반 어렵게나마 이뤄진 마야와의 관계가 다시 무너지고 여행에서 돌아와 똑같은 일상을 겪지만 분명 그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 잭은 뒤죽박죽된 여행에서 돌아와 예정된 결혼식을 하지만 마일즈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두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각기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찌질한 인생에 힘겨워하는 마일즈를 보며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겪는 좌절과 힘겨움이 난 누구보다 와닿았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그가 용기를 내 마야 집 문을 두드리는 모습에 힘이 났다. 그리고 그 힘이 와인과 함께한 여행에 있었음을, 더 나아가 그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삶을 사는 친구 '잭'과 함께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영화 '사이드웨이'와 닿아있지 않을까. 생각치 못한 설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어떤것과 함께하는 시간들, 거기서 생기는 용기와 도발, 그게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마일즈가 와인여행으로 사랑을 만난 것처럼 우리 삶엔 어떤 우연이 기다릴지 설렘을 가져본다.

 

 

* 아.. 뭐니뭐니 해도 잭으로 열연한 토마스 헤이든 처치가 최고다.. 그 덕분에 영화 내내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