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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배우는 배우다(2013) - 신연식

멜로마니 2013. 10. 29. 16:22

 

 

배우는 배우다 │ 신연식 │ 2013

 

 

'스타는 권력이다'

영화를 보고 이 한 문장이 맴돌았다. 평소 TV,스타 그리고 배우에 대해 회의감에 젖어있던 나에게 영화 '배우는 배우다'는 꼭 필요한 영화였다. 또 TV,영화 속 관심에 굶주린 요즘의 연예인들에게 그리고 그 연예인들에 열광하는 군중들에게 이 영화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배우는 권력일까. 영화를 보고나면 주인공 오형(이준)은 몸소 그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초반 주인공 오형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연기에 쏟아붓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연기를 통해 표출하면서 연기를 욕망하고 배우를 꿈꾸게 된다. 그렇게 자의식이 가득한 그는 연극때마다 여배우와의 마찰로 연출가에게 욕을 먹지만 연기에 대한 집념은 어떤것도 그를 흔들지 못한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오형에게 스타를 만들어주겠다 제안하고 인기를 통해 더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겠다 판단한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단맛,쓴맛을 모두 봐야 배우가 된다는 위로와 함께 달콤하고 무서운 유혹을 받아들인 그는 배우에서 스타로 변화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부서진다.

 

먼저 영화는 '배우'를 꿈 꾼 오형이 '스타'가 되면서 겪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고 관심을 받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은 오형은 점점 단역시절 자신을 사람취급도 안한 스타배우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렇게 점점 '인기'라는 함정에 빠져가는 오형은 인기의 탈을 쓴 권력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여배우라는 환상의 존재와 거침없이 관계를 갖고 감독을 넘나들며 자신이 연출을 컨트롤한다. 그렇게 인간 바닥에 있는 '권력'이라는 힘은 오형을 마음껏 욕망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영화 초반 배우를 꿈꾸던 오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권력욕과 인기에 눈이 먼 텅 빈 영혼의 한 인간이 그려질 뿐이다. 그렇게 자꾸만 바닥으로 내려가는 오형은 결국 어떻게 될까. 그게 내 영화 감상의 포인트였다.

 

거침없는 욕망으로 파국을 겪은 오형의 주위엔 아무도 없다. 인기스타였을 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언제그랬냐는듯 그를 무시하고 찾아주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처음 연극무대에서 만난 오연희(서영희)는 자신을 구원해주는 대상이다. 그녀 역시 배우에서 스타가 된 후 쓴 맛을 보고 연극 무대에 올랐기에 오형에게 오연희는 온 자신을 쏟아낼 수 있는 존재인 셈이다. 영화 후반, 오형은 그런 오연희에게 마음껏 쏟아붓는다. 연기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바랬다고 미친듯이 토로한다. 그렇게 그는 '배우'가 아닌 '스타'로 대변되는 권력을 욕망한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배우'로 돌아간다. 배우라는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마네킹에게 매달리고 울부짖으며 그렇게 그는 진짜 배우가 된다.

 

이 영화를 강추하고 싶은건 김기덕의 서슬퍼런 칼이 영화 중간중간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배우라는 것, 그것은 어쩌면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렇게 스펙타클 속에서 흔들리는 배우라는 존재는 영화 주인공 '오형'처럼 인간의 밑바닥까지 경험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관심을 받기 위해 영혼을 팔고 맹목적으로 TV,영화라는 시각적 권력에 영합하는 배우의 모습은 오늘날 꼭 짚어야할 시대의 모습이다. 왜 우린 TV와 영화를 통해 스타를 원하는지, 그리고 인간은 왜 시각적 권력을 통해 우월감과 만족감을 얻는지 고심해봐야 한다. 영화 마지막, 오형이 다시 단역 연기를 하며 진짜 배우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시각적 맹목을 넘어 제대로 된'배우'를 찾아나설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본과 권력에 갈팡질팡 하는 것은 배우 뿐만이 아님을, 관객 역시 그렇게 권력의 판에서 끊임없이 놀아나고 흔들리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 그것은 자본과 권력의 판에서 한바탕 깨지고 부딪혀야하는 일임을 느낀다. 배우가 아닌 모든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