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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간장선생(1998) - 이마무라 쇼헤이

멜로마니 2013. 11. 5. 21:48

 

 

 

 

간장선생 │ 이마무라 쇼헤이 │1998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영화를 본 후 너무나 쓰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어려운 영화다. 영화를 본 후 먹먹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느껴졌달까. 하지만 그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가감없이 내가 느낀 것만 정리해보고 싶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모습을 다룬다. 패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일본 한 시골엔 부지런히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는 한 의사가 있다. 그가 바로 영화 제목과 같은 '간장선생'이다. 일생을 환자와 병을 두고 씨름한 그는 동네에서 앓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간'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간장선생이라 부른다. 일본 전역이 간염을 가졌기에 이를 퇴치하는 것이 일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렇게 온 인생을 간에 매달린다. 그러던 중 마을의 당찬 한 소녀가 나타나 간호사 일을 하게 되고 영화는 그렇게 잔잔하게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이 영화의 매력은 '미시적 관찰'에 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안에 놓인 일본 마을의 모습, 거기에서 더 들어가 한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거대담론 아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소소하게 담아낸다. 먹을것이 없고 내일이 불확실한 전쟁통에도 우리의 간장선생은 뛰고 또 뛴다. 그렇게 그가 동네를 뛰어다닐때면 야마시타 요스케의 흥겨운 재즈가 흐르고 그 안엔 위트와 즐거움이 담긴다.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말없이 웃게 만드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혜안이 보이는 순간이다. 만주로 떠난 아들의 죽음에도, 그리고 몰래 탈출한 독일인을 치료해준 뒤 고문을 당할때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불안과 혼돈 속에서도 꼿꼿하게 살아가는 간장선생은 우리에게 삶은 그렇게 특별한게 아님을 말해준다.

 

여기에 영화의 매력을 한층 얹어주는 건 바로 '소노코'라는 존재다. 전쟁 중 가난으로 몸을 팔며 돈을 벌어온 소노코는 아버지가 죽자 매춘을 하지 않고 간장선생 밑에서 간호사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당찬 소녀 소노코는 간장선생과 함께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는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을 원하고 접근해왔던 숱한 남자들과는 달리 환자를 위해 불철주야 달리는 간장선생을 지켜본 노리코는 결국 사랑에 빠진다.(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개인의 자그마한 소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와 당찬 초록빛 소녀와의 싱그러운 사랑..!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사랑 아닐까.)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고백하는 소노코. 하지만 간장선생은 그런 노리코를 조용히 타이를 뿐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영화 맨 마지막 부분에서 아름다운 폭발(?)을 하게된다.

 

 

 

영화 후반부, 간장선생은 백신 개발에 매달리지만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간다. 그렇게 쓴 실패를 맛본 후 좌절한 그에게 다시 환자들이 찾아오고 그는 다시 처음의 간장선생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백신보다 그저 환자 하나하나를 챙기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의사의 소명임을 깨달은 것. 그렇게 그는 영화 마지막에서 환자를 통해 자신의 삶을 치유한다. 그리고 소노코는 그런 간장선생에게 고래를 대접하겠다며 바다로 뛰어든다. 이런 예측불능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거침없는 소노코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배 안에서 간장선생이 조용히 소노코의 다리 위로 옷을 덮어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껴안은 둘에게 멀리 보이는 원자폭탄의 검은 버섯구름. 개인적으로 바로 이부분이 명장면인 동시에 최고의 엔딩이란 생각을 했다. 어느 누가 이렇게 2차 세계대전의 풍경을 그릴 수 있을까. 패망국 일본의 자조섞인, 그러면서도 소박하고 담담하게 일상을 낭만으로 풀어낸 수작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언제나처럼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엔 평범하면서도 유쾌한 희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행복해진다. 이제 간장선생과 소노코는 나에게 영화 속 베스트 커플이 될 것 같다.

 

 

* 영화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PhotoView.do?movieId=3098&photoId=2521#movieId=3098&photoId=2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