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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두만강(2009) - 장률

멜로마니 2013. 11. 25. 17:20

 

 

두만강 │ 장률 │ 2009

 

 

 

감정과 삶이 통주저음으로 흐르는 그곳. 그곳은 바로 두만강변의 마을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연변 조선족과 북한 함경도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영화 속 낯선 공간엔 한 아이가 얼어붙은 강에 누워있다. 그렇게 두만강 위에 누워있던 아이는 다시 일어나 마을을 향해 달리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영화 속 겨울의 모습처럼 차갑고 냉랭하게 마을의 모습을 담아낸다. 인적 드문 마을엔 바람부는 소리만 가득하다.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마을 이야기를 담아내지만 마을의 아이들 역시 차가움과 뚝뚝함을 가지고 있다. 가장 활기차고 씩씩할 꼬마 소년들은 죽음에 무뎌지고 사랑에 익숙치 않아서인지 표현이 서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열 두 살  창호는 할아버지, 누이와 함께 살며 한국으로 일하러 떠난 어머니를 기다리며 산다. 그러던 중 두만강을 건너오다 만난 또래 친구 정진과 친구가 되고 둘은 그렇게 축구를 통해 친해진다. 하지만 두만강이 갈라놓은 북한과 연변은 이 소년들의 우정까지 갈라놓게 된다.

 

영화는 어느편도 아니다. 오로지 두만강변 마을의 이야기만을 할 뿐이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 두만강변의 모습은 냉담하다. 북한에선 끊임없이 두만강을 건너와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안기고 심지어 누이는 탈북인으로부터 겁탈을 당해 임신을 하기에 이른다. 반대로 조선족 사람들은 높은 보상금이 걸린 북한 사람들을 잡기 위해 북한 사람 잡기에 혈안이 되어간다. 영화 초반 주인공 창호는 북한에서 온 친구 정진에게 먹을 것을 주며 우정을 나누지만 이 역시 마을의 상황과 분위기로 점점 힘들어진다. 거기에 누이의 임신은 충격으로 다가와 창호의 눈엔 북한사람들이 모두 저주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서로가 서로를 소리없이 할퀴는 시간들이 계속되고 거기서 창호는 몸을 던진다. 그렇게 작은 아이만이 온몸으로 '사랑'을 부르짖으며 영화가 끝이 난다.

 

영화 '두만강'은 이상할만큼 조용하다. 아니 조용함을 넘어 침묵이 흐른다. 재중동포 장률감독은 어떠한 기교나 화려함 없이 두만강의 모습을 담아낸다. 가교가 있어 마음껏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던 그곳, 그래서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그곳은 이제 금기의 공간이 되어 가로막힌채 사람들을 가두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죽기 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매번 두만강을 건너려 하지만 다시 잡혀오기 일쑤다. 북한에서 온 창호는 자신과 어린 동생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매일 밤 두만강을 건넌다. 거기엔 슬픔, 절박함과 같은 감정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를 볼 땐 감정의 동요보단 차가움이 느껴질지 모른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이 조선족과 북한에 대해 노골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유도해왔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감정을 얼어붙게 한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후엔 어떤 영화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술을 잔뜩 마셔야만 한껏 취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곳의 사람들. 평상시엔 무뚝뚝하게 말 한마디를 겨우 내뱉는 두만강변 사람들은 삶도 감정도 폐쇄된 채로 살아간다. 바로 거기서 영화의 슬픔이 증폭된다. 모든것을 억눌린채 살아가는 두만강변의 사람들의 삶이 나즈막히 통주저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데서 온다는 것을, 즉 삶을 느낄 수 있는 '감정'도 박탈당한 채 소리없이 살아가는 것임을 영화는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그곳의 조용한 사람들을 마음에 품게 된다. 나 역시 영화가 끝나고 내 삶에서 '두만강'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통주저음으로 울리는 그들의 삶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귀울여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