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영화예찬

[영화/추억] 비디오키드의 추억 부스러기

멜로마니 2014. 2. 13. 12:16






어제 잠이 안와서 영화 찾아보다가 문득 '비디오'시절이 떠올랐다. 맞다, 분명 비디오 시절이 있었다. 88년생인 나는 유독 비디오를 많이 봤다. 아니, 많이 볼 수 밖에 없었다. 제일 큰 이유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고 할머니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나는 학교 끝나고 집에와 할일이 없어 비디오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땐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진짜 많이 봤다. 생각해보면 근데 난 그때부터 편식이 심했다. 특히 좋아했던 신데렐라, 101마리 달마시안, 곰돌이 푸우만 주구장창 봤으니까.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본 것 같다. 그래서 아직도 신데렐라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오묘해진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자꾸 신데렐라가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물론 국산 명작 만화 둘리를 안봤을리 만무하다. 둘리에 너무 감정이입해서 나중에 엄마만날때 오열했는데.. 여튼 만화는 동심의 세상이다. (못말리는 드라큘라였나.. 만화 비디오 있었는데 이건 포스터도 없어서 뺐다)


하지만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도 넘지 못한 벽이 있었다. 바로 영구시리즈와 반달가면..영구시리즈는 비디오 가게에 있는 시리즈는 다 빌려본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건 약간 공포 컨셉이었던 것 같은데 탤런트 '정선경'씨가 나왔던 장면이다. 너무 뜬금없는데 그땐 정말 몰입해서 봤다. 토요미스테리극장보다 무서운 장면이 많아서 중독될 정도로 본 것 같다. 영구시리즈가 이렇게 중독감을 줬다면 '반달가면' 시리즈는 나에게 첫번째 남자 이상형을 심어줬다. 그땐 반달가면이 너무 멋있어보였다. 아직도 김흥국 아저씨인걸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반달가면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슨 노래도 있었는데 그건 까먹었다. 여튼 지금 생각해보면 스토리도 엉성하고 짜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만큼은 최고의 명작이었다. 


이제 영구와 반달가면까지 봤으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 어린 나이라 15세 비디오는 못보고 전체관람가를 주로 봤기 때문에 마우스 헌트나 조의 아파트같은 동물 및 곤충이 나오는 외화를 즐겨 봤다. 마우스 헌트는 진짜 200번은 본듯.. 쥐가 치즈공장을 만든다는 애니메이션같은 이야기가 실사판으로 펼쳐진다니.. 다시봐도 이건 울컥할 것 같다. 


시간이 흘러흘러 고학년이 되고 머리좀 컸다고 생각했을 때, 홍콩의 세계를 만났다. 아니 그보다 난 '이연걸'에 빠졌다. 지금도 내 이상형 중 한 분은 '이연걸'이다. 초등학교때 이연걸이 나온 황비홍, 영웅, 의천도룡기. 동방불패를 보며 혼자 사랑에 빠졌다. 저렇게 묵묵하게 멋진 남자가 있다니.. 말없이 몸으로 카리스마를 발휘한달까.. 이후에 이연걸님이 키스 오브 드래곤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을때도 혼자 넋이 나가있었다. 이연걸이란 사람은 나의 비디오 시절을 밝혀준(?) 등불이다. 아.. 오그라들어.. 여튼 이연걸님 덕분에 홍콩 영화도 즐겨보기 시작. 특히 도신 시리즈는 너무 재미있어서 수없이 봤다. 뜬금없지만 천녀유혼은 뭐 수학의 정석과 같이 당연히 봐야하는 영화였다. 여자였는데도 왕조현보고 침흘렸으니까.. 도신이나 천녀유혼은 가끔 명절에 TV에서 해줄때도 있었는데.. 여튼 홍콩영화의 전성기도 '비디오'와 함께한 것 같다.


한편 어린나이었지만 몰래몰래 수위를 넘어서 본 비디오도 많았다. 아직도 그 충격이 기억에 남는 것들은 개같은날의 오후, 타이타닉, 올가미정도? 개같은날의 오후는 딱 한번봤는데 아직도 그 배드씬이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어린나이에 봐서 그런가. 타이타닉은 15세였지만 마차(?) 안에서의 배드신이 나한텐 충격이었다. 올가미는 공포영화라는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존경하는 배우 '윤소정'님의 소름끼치는 연기는 지금봐도 후덜덜이다. 아직도 대사 생각나 '없다니까 망할년!!!!' 이러는거. 그리고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보는건 아무래도 재미 위주의 장르영화를 찾기 마련이라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해변으로 가다, 퇴마록, 여고괴담, 자귀모, 조용한 가족, 신장개업, 은행나무 침대, 헌티드 힐같은 영화도 많이 봤다. 특히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신장개업같은 영화는 비디오가 아니면 그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마저 든다. 아.. 아련해..


장르영화 말이 나왔으니 빼놓지 않고 봤던 '멜로'쪽 비디오 이야기도 하고 싶다. 공포 비디오를 가장 많이 봤다면 그 다음으론 서정적인 멜로 비디오도 많이 본 것 같다. 카라, 약속, 편지, 동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카라는 정말 비디오로 봐야 제맛이고..약속이나 편지는 이후에도 컴퓨터를 통해 본 적 있는데 그때 맛이 안난다. 두 작품 다 박신양씨가 출연해서 항상 같이 생각하게 되는듯. 아직도 생각난다 편지에서 박신양씨 죽기전에 비디오 촬영했을때 입술 허옇게 분장한거. 그거 너무 작위적인것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튼 어린나이에 날 오열하게 만든 영화다.


이렇게 글로 스크롤 압박의 포스터들을 거진 다뤄봤다. 거의 다 이야기 한 것 같은데도 아직 남아있는 두 작품이 있다. 일부러 빼놨지 하하. 바로바로 산전수전과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 개인적으로 '산전수전'은 아직도 내 발목을 잡고있는 느낌마저 든다. 여자 주인공이 돈을 찾기 위해 미친듯이 별짓 다하며 사는 내용인데, 그때 그녀의 불굴의 의지를 보며 감탄했다.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 땡기는게 있으면 저렇게 앞뒤없이 빠져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들게 해준 영화였다. 영화 중간에 여주인공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서 무너지는 씬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게 트라우마로 남은건진 모르겠지만 왠지 내 방도 무너질것만 같은 느낌도 들고.. 허허.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비디오시절 거의 유일하게 궁금증을 안긴 작품이었다. 너무 어린나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의문'에 쌓여 본 첫 작품인 것 같다. 비디오의 특성상 웃고 울고 그 재미에 충실해야 하는 법인데 이 영화 만큼은 시종일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와 사람들의 모습으로 의문만 가득 남았다. 그래서 아직도 니콜라스 케이지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난다. 그리고 왠지 알콜 중독자인 것 같은 느낌도.. 


아.. 아무생각없이 마무리하려 했는데 갑자기 쓸쓸해졌다. 그땐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이제 나에겐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되버린 느낌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머리숱없는 한심한 인간이라 욕했는데 이젠 내가 알콜 중독자가 되게 생겼다. 어쩌면 좋아.. 비디오란 매체는 사라지고 잡히지 않는 추억들이 잔상으로 아른거린다. 비디오 끝났을때 지지직거리는 그 화면이 갑자기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