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영화예찬

[영화엮기/단상] 끌루조의 '디아볼릭' & 히치콕의 '현기증'

멜로마니 2013. 11. 5. 17:10

 

 

 

 

디아볼릭(les diaboliques) │ 앙리 조르주 끌루조 │ 1955

현기증(vertigo) │ 알프레드 히치콕 │ 1958

 

 

'현기증'은 백년이 지나도 영화사에 남아있을 작품이다. 책이나 잡지에서 좋아하는 영화나 인상깊게 본 영화를 볼 땐 유독 '현기증'을 꼽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박찬욱 감독. 정신분석학적 해석에 많이 사용되는 현기증과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유사성이 크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나는? 글쎄. 현기증을 매년 보지만 아직까지 딱히 큰 끌림을 받아오지 못했다. 영화 첫부분 경찰관 스카티 퍼거슨(제임스 스튜어트)가 여자친구의 집에서 수다떠는 씬부터 잠이 든 적도 있다. 몇 번을 봐도 딱히 감흥이 없어서인지 이젠 남들이 최고라고 하는 영화에는 무덤덤한 편이다.

 

그러던 중 끌루조의 디아볼릭을 감상했다. 프랑스 감독 앙리 조르주 끌루조의 디아볼릭은 'Boileau Narcejac'이라는 작가가 각본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흥행에 성공한 디아볼릭을 본 히치콕은 작가에게 디아볼릭과 비슷한 시나리오를 써달라 제안했고 그게 현기증의 탄생이었다. 동일 작가에 반전을 가진 스릴러라는 공통점을 가져서인지 두 영화는 묶어보는 재미가 있다. 한편 히치콕의 대표작인 싸이코(Psycho)의 원작 작가인 로버트 블로흐(Robert Bloch)는 '디아볼릭'을 최고의 공포영화라고 꼽기도 했으니 디아볼릭과 히치콕은 남다른 인연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디아볼릭은 아쉬움이 컸다. 프랑스식 스릴러여서 일까.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이 컸다. 바람을 피우는 강압적이고 보수적인 남편을 죽이기 위해 남편의 정부와 살인계획을 짜는 아내. 그리고 밝혀지는 대반전! 반전은 나름 충격적이었지만 느슨한 전개로 임팩트가 크진 못했다. 공포를 위해 심어놓은 인물인진 모르겠으나 죽은 아내의 환영을 보는 아이 설정도 왠지 모르게 땡뚱맞았다. 이 영화를 보고 현기증을 보니 그제서야 큰 차이가 느껴졌다.

 

'스릴러'라는 동일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큰 차이를 보이는건 역시나 '히치콕'의 강렬함 때문일 것이다. 히치콕 영화에서 보여지는 서스펜스는 단순히 스릴러에서 느껴지는 그런 가벼움이 아니다. 그는 영화 촬영부터 인물 설정, 사건까지 하나하나에 긴장을 심어 놓는다. 현기증을 표현하기 위해 줌인과 트랙백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부터 현기증을 가진 남성 캐릭터, 사랑에 빠지는 대상에 대한 관음증적 관찰, 그리고 죽음은 그마다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현기증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 기준은 스카티 퍼거슨이 진짜 매들린이 죽은 후 가짜 매들린을 만나는 지점일 것이다. 난 그 기점을 기준으로 후반의 긴장감이 영화를 살린다고 생각한다. 그 긴장감은 직접 보면서 만끽하시길.

 

결국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연출'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시나리오가 뛰어나도 영화는 영화다. 감독이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시나리오는 작품이 될수도 쓰레기가 될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디아볼릭을 본 뒤 아쉬움에 이런 생각도 해봤다. 만약 이 작품을 히치콕이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또 그만의 영화가 나왔을테다. 히치콕 찬양은 아니지만, 히치콕의 영화가 그만의 긴장감과 풍부한 해석을 가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50년대에 나온 두 영화 중 한 영화는 왠지 모르게 아쉽고 한 영화는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래서 히치콕을 불멸의 영화 감독이라 명명하고 싶다.

 

 

 

* 영화 속 히치콕 찾기도 또다른 재미 ㅎㅎㅎ 난 찾았지롱 !!!

+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프렌지' 그리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봐도봐도 재미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