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영화예찬

[책&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1995) & 더 리더(2008)

멜로마니 2014. 2. 3. 19:12




책 읽어주는 남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 │ 1995

더 리더 │ 스티븐 달드리 │ 2008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영화와 책,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소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들, 그리고 흥행한 영화가 다시 책으로 판매되는 경우만 봐도 영화와 책의 관계는 참 밀접한 것 같다. 그에 더해 '문자'를 통해 예술을 전하는 책과 '시각'을 통해 예술을 담아내는 영화는 그 차이점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던져준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만난 경우 그것이 영화와 책으로 함께 있다면 그만큼 느끼는 것도 배가 된다. 방식의 차이를 통해 우린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다양한 시각을 만나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의 경우가 이에 적절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원작 소설인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지 않고 영화 '더 리더(2008)'를 보게 됐다. 영화를 보기 전엔 소설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후 도서관으로 달려가 소설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영화에선 생략된, 함축된 감정선과 인물간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나 소설을 통해 읽은 마이클과 한나의 이야기는 영화와는 달랐다. 생각해보면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과 집중하는 부분은 누구나 다르기에 소설을 영화로 만든 스티븐 달드리 감독 역시 작품을 읽은 후 자신이 받은 느낌에 따라 영화를 연출했을테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는 감독이 소설을 읽고 영상을 통해 '서평'을 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난 이 작품의 경우엔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보는걸 추천하고싶다. 영화를 보고나면 약간의 아쉬움으로 원작을 읽고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뿐만 아니라 마이클과 한나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더 알아내고 싶어지기 때문. 영화가 책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담아내기에 숲을 보는 느낌으로 영화를 본 뒤 책을 읽으면 영화를 볼 땐 못느꼈던 둘의 감정을 조금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또 영화에선 생략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연출도 있기 때문에 원작의 이야기와 영화와 다른 것들도 만나볼 수 있다. 결국 이경우엔 영화 '더 리더'가 좋은 소설 작품을 만나게 해주는 연결고리를 제공해주는 작품인 것 같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참 겹겹이 쌓인 이야기다. 20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부터 2차세계대전 이후 전범 처벌 문제, 여기에 여주인공의 문맹까지 겹쳐 작품은 복잡한 인간사를 보여준다. 작품을 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난 '마이클'과 '한나'에만 집중했다. 전범 처벌도, 문맹도 내가 보기엔 곁가지의 문제들이었다. 정말 중요한건 마이클과 한나의 관계라 생각한다. 


마이클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소설은 원숙한 여인인 한나와 함께하는 그의 첫경험에서 시작한다. 처음 느끼는 사랑과 섹스의 기쁨, 거기에 책을 읽어주는 특별한 경험은 그를 흔들어놓기 충분하다. 하지만 어렸던 그는 그 강렬함만을 열망할뿐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한나'가 따라다닐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한나가 이유도 말하지 않고 떠난 뒤 전범재판의 피의자 석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면서도 성인이 된 마이클은 끝없이 의문만 들 뿐이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 한나가 자신의 치부였던 문맹을 이겨내고 마이클에게 손을 뻗지만 마이클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끝까지 받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외면하는듯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는 행동만 할 뿐이다. 난 한나를 배려하는듯 보이는 이 행동이 그녀가 자살하게 된 이유라 생각했다.





서로가 엇갈리고 단절된채 세월이 흐른다. 하지만 이 답답함 속에서도 중요한건 이야기가 철저히 마이클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사랑의 두 당사자였던 마이클과 한나지만 영화와 소설 모두에서 우린 마이클의 생각만을 읽을 뿐이다. 그의 입장에서 한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존재였기에 마이클 인생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워 놓은 것일까.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강렬하고 특별한 첫경험을 만났지만 이유를 알지 못한채 헤어져야 했던, 그리고 그 사람을 재판소에서 우연히 만난 것, 거기에 그녀의 아킬레스 건이자 자존심이었던 '문맹'에 까지 접근한 것은 마이클 전체 인생과 한나의 인생이 몇 번의 강한 충격으로 부딪혔음을 보여준다. 철저히 타자로서 자신을 아무말 없이 떠난 한나, 그리고 재판소에서 다시 만났지만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모습의  한나, 거기에 출소라는 결정적 재회에도 자살을 선택한 한나의 모습에서 그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그가 할 수 있는건 한나의 유언을 따르는 것과 그녀를 묘지에서 만나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마이클에게 한나는 모든게 미스테리한 존재다. 그리고 강렬한 사랑을 함께했던 과거의 연인이이기도 하다. 그는 그녀가 문맹을 숨기려했다는 걸 안 뒤에 감옥으로 자신이 녹음한 책 테이프를 계속해서 보낸다. 이걸 받은 한나는 다시 그가 들려주는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한나를 자신의 치부였던 문맹에서 벗어나 서툰 글씨로 말을 건네는 행동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쩌면 한나에게 마이클은 인생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준 사람일지 모른다. 재판소 안에서조차 그걸 감추기 위해 거짓 증언을 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마이클에게 만큼은 솔직한 그녀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이클은 끝까지 녹음 테이프만을 보낸다. 그는 그렇게 한나를 대면하는 것을 거절한다. 





마이클의 온 인생을 쫓아다닌 '한나'라는 존재. 그는 분명 마지막에서 그녀와 인간적 대면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미숙한 소년이 사랑을 떠나보냈을 때 처럼 한 인간을 사랑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을 마무리하는 것인지를. 오히려 그보단 자신을 사랑에 상처받은 '피해자'로 설정함으로써 모든걸 방어적으로 해석하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한나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내보인 순간에도 그는 그 마음을 못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사랑이 딱딱하게 굳어 풀리지 않은 감정만 남은채 진짜 한나의 모습을 마주할 여유가 없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한나의 자살로 인해 모든건 정말 미스테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마이클은 그렇게 죽을때까지 그녀와의 관계에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고 그녀를 놓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여기엔 타자를 알아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함축되어 있다.


우린 사랑을 할때 하나가 된다는 착각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사랑은 상호간의 감정이다.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대가 느끼는 감정엔 너무나 큰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은 명쾌하게 느껴지는 반면, 상대가 보이는 행동과 감정은 내 기준을 통해 필터링되어 다가오게 된다. 결국 우린 상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그건 내가 어찌 못하는 상대인 '타자'만이 정확히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린 착각을 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는 나처럼 생각할 것이고 그녀는 나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그래서 사랑이 끝난 후에도 우린 그 착각 안에서만 상대를 추억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마이클의 경우엔 그런 상황에서 끝나지 않는다. 참 잔인하게도 시간이 흘러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한나'를 계속 만나게 되는 것. 거기서 오는 충격과 의문은 오히려 마이클을 '한나'라는 존재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책 읽어주는 남자'는 사랑을 통해 타자를 만나는 경험을 빼곡히 담아내는 것 같다. 사랑을 통해 인생에 이만큼 강한 흔적을 남기게 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끊임없이 인생을 함께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보여주는 것. 그래서 타자를 사랑함은 기쁨인 동시에 고통인 것 같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과 이야기들이 있다면 우린 마이클처럼 평생을 가슴에 안고 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