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나의 힘/쓰고 싶은 영화

[영화/리뷰] 인더하우스(2013) - 프랑소와 오종

멜로마니 2013. 8. 1. 20:29

 

 

 

 

 

인더하우스 (Dans La Maison) │ 프랑소와 오종 │ 2013

패브리스 루치니,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에른스트 움아우에, 엠마누엘 자이그너

 

 

나에게 오종의 영화는 하나의 '강박'이다. 그의 영화속엔 편집증적이며 망상을 가진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랑의추억(2000)에서 남편을 잃은 마리아가 그랬고 스위밍 풀(2003)에선 추리소설작가 사라모튼이 망상을 소설로 펼쳐낸다. 엔젤(2007)에서의 여주인공 엔젤 역시 정열과 환상을 가진 동시에 강박증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강박증적인 모습들을 하나씩 보여줄 때, 나는 울고 웃는가 하면 때때론 무서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 영화의 경우엔 어떨까. 먼저 인더하우스는 오종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미스테리함이 잘 묻어난다. 그리고 그에 더해 특유의 재미와 웃음도 보인다. 그 이유는 영화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고등학교 문학교사 제르망은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내 쟝과 파리에서 살고있다. 어느날, 제르망은 아이들의 작문숙제를 본 뒤 '클로드'라는 학생을 눈여겨보게 된다. 불우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클로드는 전형적 프랑스 중산층 친구 '라파'의 집에 방문한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으로 윤택한 라파의 가족을 보여주고 라파의 어머니인 에스더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다. 고등학생이 친구의 어머니를 욕망하는 글을 쓰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지만, 한때 소설가였던 제르망은 클로드의 글재주를 발견하고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쓰라고 말한다. 클로드는 제르망의 과외까지 받아가며 소설에 대해 공부하고, 라파의 집에 가서 하나씩 가족을 관찰한다. 그리고 라파의 어머니 에스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클로드가 쓰는 소설이 끝을 향해 달릴수록, 제르망과 클로드는 소설에 빠지다 못해 미쳐있다. 그때문일까, 라파는 클로드가 자신의 어머니를 욕망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결국 모든것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제르망은 학교를 그만두게되고, 클로드는 학교를 그만두고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헤맨다.

 

이 영화는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클로드는 친구의 가족과 그의 어머니를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장애인이고 어머니가 없는 그에게 현실은 고통이다. 그렇지만 친구의 집에서 상상을 통해 그 집의 가족이 되고 욕망하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순간 클로드는 자신의 현실을 잊게된다. 즉 소설을 쓰는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현실을 잊는 것이다. 결국 문학, 소설이란 것이 고통속에서 탄생하지만 고통을 지워낸 자리에 새로운 환상을 세운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클로드는 소설을 통해 중산층 가족을 가지고 엄마의 부재와 성적 욕구를 에스더를 통해 분출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환상은 어떻게 될까. 계속해서 아름답게 남게될까. 클로드는 소설을 써갈수록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소설을 넘어 현실에서 에스더에게 시를 주며 사랑을 표현하고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또한 클로드는 점점 더 라파의 가족에게 스며든다. 그러면서 가족의 틈을 조금씩 보게 된다. 가정주부로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에스더는 시를 준 클로드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에스더의 남편은 중국인 상사에게 조롱당하고 그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푼다. 라파는 자주 함께 있게되는 클로드에게 동성애를 느낀다. 그렇게 클로드가 가까이 다가간 한 가족의 모습은 어딘가 하나씩 고통과 틈을 가지고 있다. 결국 클로드는 자신이 파고들어간 한 가족의 고통을 보고 자신의 현실과 고통을 잊게 된다. 

 

그렇게 소설은 고통으로 시작해서 고통으로 끝난다. 내가 욕망하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그리고 그 역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응시함으로써 나의 고통을 잊는 것. 그게 영화에서 보여주는 소설을 쓰는 이유중 하나라고 정리하고 싶다. 광적으로 라파의 가족에게 빠져드는 클로드의 모습은 그의 현실이 너무나 비참했음에 가능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나에게 모자란 것이 타인을 통해 글로써 채워지는 것을 클로드는 영화 내내 경험한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벤치에 앉아 아파트를 보며 라파의 가족이 아닌 또다른 타인을 찾아헤매는 클로드. 자신의 고통과 갈증을 채우기 위해, 살아갈 이유를 만들기 위해 그는 또 소설을 쓸 것이다.

 

 

 

 

좋은 영화는 맛있는 커피와 함께.

아 라바짜 에스프레소 또마시구싶다..

 

* 영화 속 '중국'이란 코드가 눈에 띈다. 고등학교인 귀스타브 플로베르학교나 제르망의 부인이 일하는 갤러리는 차이나타운인 파리의 13구에 위치한다. 라파의 아버지는 회사 상사가 중국인이고,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다. 이런 설정들을 보면서 점점 프랑스를 이루는 한 축이 중국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감독이 라파의 가족을 프랑스 중산층으로 설정할 때, 중산층의 개념이 경제적 기준 뿐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현재 프랑스와 그 관련성이 커져가는 중국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목 dans la maison 은 감독의 전작 사랑의 추억(sous le sable)을 연상시킨다. 여운이 남으면서도 미스테리한 느낌을 주는 특유의 표현법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