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읽자/독서노트

[역사] 장물바구니. 한홍구

멜로마니 2013. 1. 12. 17:49

 

 

 

 

 

 

 

 

책 도입부인 '바구니 직설'엔 김지태,한홍구,서해성의 가상의 대화가 실려있다. 1982년에 돌아가신 김지태씨와 가상으로 대화를 엮은 것. 여기에선 이 책이 다루는 부일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탈바꿈되기까지의 과정이 간략하게 서술되어있다. 그리고 책 제목이 왜 장물바구니인지도 설명이 되어있다.

 

... 좀 설명이 필요해. 이건 방송학자들도 잘 몰라. 문화방송이 2억짜리 회사였다가 박정희정권이 빼앗아 가서 5.16 장학회를 만들면서 회사에 축적해 있었던 것과 합쳐서 자본금을 3억으로 늘렸네. 실상 100%를 내 것 가져가서 만든 거지. 문화방송이 커졌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후보가 연설을 다니면서 5.16 장학회 이야기를 했어. 부산에 와서 한 이야기가 수백억 대, 지금으로 치면 10조 그런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면서. 5.16 장학회 상임이사로 박정희 동서가 있었고 대구사범 출신들이 관리하고 있었지. 선거 끝나고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또 국회에서까지 이야기된 것인데, 문화방송 돈을 빼다가 선거를 치렀다는 거야. 그러다 문화방송이 경영난에 빠지니까 지방사 매각해서 부채 갚고.. 박정희 것이라는 걸 지우기 위해서 10억짜리 회사로 만든거야...

 

책 제목 장물바구니는 정수장학회를 지칭한다. 정수장학회는 장학회라는 법인을 바탕으로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경향신문'의 지분을 담아 대대손손 물려주고 이어받는 밥통이 된 셈이다. 현재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부산일보' 해직 언론자들의 시위나, 주진우기자가 박근혜당선자에게 물었던 정수장학회 강탈에 대한 문제들이 책을 읽다보면 과거의 문제들이 현재에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걸 알게된다. 성공한 사업가 김지태씨가 자신의 힘으로 일궈 만든 부일장학회가 어떻게 5.16 장학회가 되고 정수장학회가 되는지를 보고있으면 무지함에 빠져 무덤덤한 내 자신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진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당시 부패경영자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재산을 강제로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키고 언론사를 조종하며 그 지분으로 자신의 정치자금을 쓰고, 장학회라는 이름아래 자신들의 배불리기에 바빴던 독재자의 모습은 분명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과거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아니, 알아도 그게 어떻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지각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렇기에 한홍구씨가 쓴 이 책이 너무나 소중하다. 2004년 과거사 진실규명 위원회를 맡았던 저자는 정수장학회의 문제가 시작되는 '김지태'씨와 그가 만들었던 '부일장학회'를 차근차근 짚어보며 당시의 신문기사, 주식,부동산 문서, 대학논문등 풍부한 자료와 함께 역사인식의 폭을 넓혀준다.

 

또 이 책은 김지태씨가 태어난 19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순행적인 구조로 정수장학회를 다룬다. 그래서 '정수장학회'를 중심으로 생겼던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보다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읽고 크게 두 가지를 느꼈다. 먼저 '정수장학회'가 만들어지고 언론사를 장악하는 과정이 현재에도 역시 존재한다는 것, 즉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느꼈고, 두번째로 처절한 반성과 개혁없이는 그 역사가 또 반복된다는 것을 느꼈다. 김영삼을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정권이 과거사 규명을 시도했지만 흐지부지하게 다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강압과 협박으로 만들어진 정수장학회는 아무런 처벌없이 지금도 존속하고있다. 잘못된 과거가 아직도 생생하게 우리와 함께 살고있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의 뱡향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우린 한참 틀렸다. 그래서 이렇게 잘못된 길로 가고있는 우리 사회를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돌아보기'라는걸 다시한번 느낀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제대로 보는게 나은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라는걸 처절하게 느낀다. 그런이유 때문에, 이 책이 지금까지 읽어온 어떤 역사책들보다 와닿았다. 썩은 과거와 함께 살고있는 우리사회를 '정수장학회'라는 하나의 큰 사건을 통해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