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만리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간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태생이 느림보인 나는 항상 굼뜨다. 행동이 느린게 아니라 받아들이는게 느리다. 남들보다 배우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경쟁하는 상황을 싫어해서 스스로 꼴찌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벼락치기로 한꺼번에 많이 소화해 내질 못하고, 스스로 납득이 될때까지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봐야 체득이 된다. 그래서 남들은 이미 다 훑고 지나간 것을 뒤늦게 깨닫고 감탄할 때가 많다. 뒷북이 심하다는 소리다.
예전엔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세상은 초를 다투며 빨리 돌아가는데, 나는 턱도없이 부족하게 느린 속도로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게 됐다. 내가 거북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 매일 느릿느릿 가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내일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 간다는걸 알게됐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 처럼 갑자기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건 아니다. 그저 산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지혜를 얻었을 뿐이다.
높은 산일수록 힘을 빼고 올라야 한다. 무슨 격언 같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 것이다. 거창하게, 야심차게, 무겁게 짊어지고 오르는 사람일수록 쉽게 무너진다. 대신 힘을 빼고,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조금씩 쉬며 오르는 사람은 무리없이 정상에 오른다. 중간에 절대 너무 쉬어선 안된다. 적당한 에너지로 오르다가 한번씩 짧게 쉬어주고 다시 올라야 한다. 길게 쉴수록 몸은 오르기를 주저한다.
난 삶에서 뭔가를 이뤄내는 과정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묵묵하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길이 지루하고 너무나 길게 느껴져도 그 시간이 없다면 어떤것도 기적처럼 일어나는 것은 없다. 사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내공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엔 두려움과 불안이 고개를 들지 않는다. 온갖 상념이 일어난다는 것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쉬고있다는 뜻이다. 산에서 배운 이 감각을 가지고 남은 대학원 생활을 후회없이 보내고 싶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도 만리를 내다보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워가는 사람이고 싶다. 절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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