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자/단상

[단상]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멜로마니 2016. 10. 18. 00:19


지금껏 살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스무살부터 스물 여섯까진 답답하게 억눌린 감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열정과 에너지는 대단했지만, 남을 신경쓰며 미련하게 살았었다. 내 욕구와 욕망을 제대로 표현해보지도 못하고 바보같이 착하게만 살았었다. 왜이렇게 미련하게 살았나 싶지만 한편으론 그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삶을 꾸려가지 못했을 것 같다. 그때의 진절머리나는 경험을 통해 다신 그렇게 살지 말자고 스스로 맹세했고, 거짓된 인연을 맺지 말자 다짐했다. 그 5년이 넘는 시간 덕분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낼 수 있게 됐다. 진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행동으로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랑하지만 표현할 줄 모른다는 말, 개구라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만큼 행동하게 되어있다. 행동하지 않을때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감정이 가짜일 가능성이고 둘째는 그 인간 자체가 정체성 없는 가짜일 가능성이다. 물론 두 가능성을 모두 가진 최악의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열정도 에너지도 없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것 밖에 모르는 인간과는 다신 인연을 맺고 싶지 않다.


이런 나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생겼다. 바로 2년전 마르꾸스와 떠났던 남미여행의 순간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그런지 남미로 떠났던 그때 그 11월이 너무나 그립다. 그 여행을 통해 우린 더 단단하고 진실된 관계가 됐다. 함께였기에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3개월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쿵짝이 잘맞고 즐거울 수 있는건 소수의 커플만이 누리는 행복이었다. 여행을 하는 방식은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와 닿아있다.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때 그걸 헤쳐나가는 본능적 해결방식이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클수록 다툼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마르꾸스의 모습에서 든든함을 느꼈고 섹시함을 느꼈다. 이 남자는 어디서든 자기 방식으로 살아내는 멋진 사람이라는걸 한눈에 알아보게 됐다. 머리로 생각만 많고 핑계거리만 찾는 진부한 한국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순간들이 너무나 생생하다. 특히 갈라파고스에서의 추억은 날 가슴뛰게 한다. 섬에 내려서 처음 마주했던 풍경, 길거리에서 느껴졌던 냄새, 밤에 산책할때 맡은 공기, 깜깜하고 고요했던 밤의 바다, 그 모든게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때 그곳에서 느꼈던 자유와 평화로움은 최초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가끔 갈라파고스를 생각하면 그곳 주민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과도한 경쟁속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한국에서의 삶과 별다른 욕심 없이 그저 매순간을 음미하며 사는 갈라파고스에서의 삶을 고르라면 난 후자를 고르고 싶다. 참 당연한 선택인데도 아이러니하게 난 한국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마르꾸스와 떠나는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그곳이 어디든 우린 완벽한 순간을 보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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