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산

[등산/기록] 2016 지리산 산행, 완벽하였다

멜로마니 2016. 8. 5. 21:55



올해는 종주를 못했다.

마르꾸스에게 일이 생겨 목,금,토 일정으로 짜놓은 스케줄이 하루씩 밀려났고,

그래서 다시 대피소 예약을 하려니 주말이라 대피소 자리가 없어 세석대피소만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성골로 올라가서 1박2일간 종주하는 것은 무리다 싶어

올해는 맘편히 가고싶은데로 가보자는 요상한 코스를 정해봤다.

천왕봉에 가야된다는 의무도 버리고 가고싶은대로 몸을 맡겼다. 



원래대로라면 수욜 저녁에 출발햇어야 하는데 목욜 저녁에 출발.

5시 반 버스를 타고 화개로 가려고 했는데 5시 반 버스가 매진이어서 7시 반 버스를 탔다.

담부턴 지리산 갈때 되도록 6월에 갈 생각이다. 7월 말엔 첨 가봤는데 사람도 많고 더 덥고 힘든것같다.



밤 열한시쯤 도착해 버스터미널 앞 황토방모텔에서 자고 새벽 6시에 나와 의신마을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비는 만칠천원.

버스는 새벽 7시부터 운행된다고 한다.

대성골에 백숙을 7시반에 예약해둬서 부지런히 가야했다. 



대성골 가는길. 2년만이었다. 마르꾸스와는 처음가는 대성골. 아직도 흙냄새가 생각난다.



한시간이 안걸려 대성골에 도착!!!!!!!!!!!!!!!!

너무나 그리웠던 대성골.................

울컥하네



대성골 언니처럼 깔끔하고 차분하다.



맛난 백숙과 귀한 반찬들.. 이곳은 무조건 가야만하는 곳이다.

이렇게 한상 가득 주시는데 5만5천원이라는게 믿겨지지 않는다. 더 드려야될것같다.



직접 담그셨다고 마셔보라고 주신 막걸리. 술맛이 하나도 안나서 신기했다. 최근 몇달간 술 먹은게 처음이었는데도 취하는게 없었으니 진정 건강한 막걸리였다는게 증명된다. 막걸리를 마시며 언니와 처음으로 이야기도 나눠보고, 정말 행복했다. 대성골 언니를 볼때마다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한 사람 곁에 있으면 행복해진다.



세수 실컷하고 평상에서 한숨잤다. 30분 잤는데도 30시간 잔것처럼 숙면을 취했다. 이렇게 꿀잠을 잔적이 없었다. 지리산 냄새, 계곡 물소리, 초록 나무들 이 모든게 죽어있던 내 몸을 살려줬다. 오바같이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레알 거미줄. 지리산은 거미줄도 건강하다. 대성골에서 푹 쉬고 10시에 산행길을 시작했다. 목표지점은 세석대피소 !



올해는 희한하게도 지리산에 사는 특이한 곤충이나 동물을  많이봤다. 요건 독개구리들.

여유있게 다녀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엔 정신없이 앞만보고 갔는데 이번엔 관찰하면서 갔다.

호기심 많은 마르꾸스 덕분이다.



이건 살면서 처음 본 민달팽이. 이틀동안 세네마리 본것같다. 겁나 큼.



대성골에서 세석을 올라가는 구간은 만만치 않다. 백무동 코스에 2배 이상의 난이도다.

특히 딱 이 사진속 지점부터 혼이 나간다.

가도가도 끝이 없고 이정표가 안나오며 경사가 상당하다.

이날 이 코스로 올랐던 사람들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내려온 사람도 없었다.

고로 전적으로 우리만의 지리산이었다.



죽도록 가다보니 바위 뒤에 이런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정말 욕나올정도로 힘들었는데 이걸 보니 한방에 풀렸다.

맞아. 이맛에 산에 오르지. 올해 산과는 먼 삶을 살아서 까먹고 있었던 행복감이 다시 올라왔다.

아득한 느낌, 시원한 바람 아직도 생각난다.

함께 있던 마르꾸스도 분명 이 순간을 기억할거다.



올해 내가 본 내 표정 중 제일 행복한 표정. 지리산에서 찍은 모든 사진들이 그랬다. 날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곳이다.




여기서 한 삼사십분을 더 가면 음양수가 나온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마지막으로 죽을거같은 느낌이 드는 구간이다.



그러다 가까스로 음양수에 도착. 아이스커피좀 타마실라고 했더니 갑자기 미친듯이 비가 퍼붓는다.

음양수물 반, 비 반으로 만든 아이스커피를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채 원샷때린뒤 부리나케 길을 나섰다.

음양수에서 여유있게 쉬면서 좀 즐기려했더니 

역시 뜻대로 되는일은 없다.



음양수에서 20분정도 올라가면 세석대피소 도착 !

도착해서 마르꾸스는 등목하고 나는 세수하고 밥먹기위해 자리를 찾았다.



1년만에 와보니 파는 물품이 바꼈다.

이젠 콜라를 안판다.



이날 아침 일찍 백숙을 먹고 그 이후엔 거의 먹은게 없어서 

진짜 손이 달달 떨리고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먹은 라면, 전투식량 그리고 구워먹는 치즈.

혼이 빠져서 먹었다.

내가 먹은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미친듯이 퍼먹은 느낌이다.



마르꾸스가 준비해온 프랑스 전투식량.

닭고기가 들어있는데 나름 맛있다.



밥먹고 다음날 어떻게 할지 고민.

오랜만에 산을 타서 몸이 너덜너덜한 느낌이라 쉬운 루트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내려가기 전엔 새벽에 촛대봉을 들리기로 했다.



갠적으로 세석대피소가 젤 좋다.

크고, 깔끔하고, 그냥 좋다.

직원분들도 너무 친절하시고, 여튼 감사하다.



담날 새벽.

5시 30분에 촛대봉을 향해 출발



멀리서 본 세석대피소.

무지 크다.



일출시간이 지나서 길이 한산했다.



30~40분정도 걸려 촛대봉에 도착하니 뒤늦게 해가 보였다.



촛대봉,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도대체 몇년만인거야



등산객이 뜸해서 우리 맘대로 찍었다. 무슨 내가 마르꾸스를 업은것처럼 나왔네



마르꾸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장소.

작년에 함께 천왕봉은 다녀왔지만 이쪽을 온건 처음이다.




다시 세석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전투식량과 구워먹는 치즈를 잔뜩 먹었다.



세석대피소의 까마귀들. 무리지어 모여있으니 무섭다.



먹고선 9시쯤 백무동 코스로 내려가기 시작.

세석에서 백무동 코스로 내려가는건 첨이라 긴장됐다.



이코스 완전 강추 !! 초반부에 내려올땐 경사가 심해 힘들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계곡이 많고 길이 어렵지 않아 아주 좋다.

4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눈이 즐거운 풍경이 가득해서 발이 덜아팠다.



마지막쯤 내려와서 계곡물에 머리를 박고 세수하는 마르꾸스



나도 시원하게 세수했다.

클렌징 폼 이딴거 필요없다 그냥 지리산 물로 세수하는거 자체가 완벽하다.



내려가다 대학원 동기들과의 약속이 생각나서 돌을 쌓기 시작.



7명 무사히 졸업하게 해달라고 빌고 7개의 돌을 쌓았다.






루트만 놓고 본다면 이번 산행은 싱겁게 보일수 있다.

내려오는 길에 어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훈계아닌 훈계를 하기도 했다.

자기는 300번을 넘게 천왕봉을 다녀왔다며 왜 천왕봉을 안갔냐고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짜증이 일었다.

그렇게 산을 가신분이 진짜 중요한걸 모르고 나이가 들어버렸다는게 안타깝기도 했다.

산은 정상이 목표가 아니다. 가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생기는 바로 그 곳이 정상이다.

자기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그곳까지 갔다면 그게 그 사람의 정상인거다. 타인에게 자신의 목표를 강요하면 안된다. 그게 꼰대의 특징이지.

여튼

올해 만난 대성골 언니, 멋진 풍경들, 시원한 계곡 물소리는 나와 마르꾸스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함께 멋진 경험을 해서 더 행복하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경험을 늘려가고 싶다.


다음엔 마르꾸스와 꼭 2박3일 종주를 하는것을 약속하며 !


2016 지리산 여름 산행 기록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