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경험

[강의/발췌] 신주쌤 아트앤 스터디 수업 발췌

멜로마니 2015. 5. 31. 21:49



아트앤 스터디 " 현대 사회철학의 쟁점,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 " 수업 에필로그 中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것은 생리이며, 결코 인간적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사랑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에 숙달되는 것이다. 그것을 일방적인 구호나 쇼맨쉽으로 오해하는 짐승들 !

이성복 시인은 모든 인간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생리에 반하는 방식, 즉 우리가 가진 동물성에 반하는 방식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고 역설한다. 사랑만이 아니다. 자유도 또한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삶의 기쁨을 옹호하기 위해서, 나아가 우리의 삶을 최종적으로 우울하게 만드는 모든 사회적인 것들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 즉 인문학적 방식에 익숙해야만 한다. 자유와 사랑 어느 것도 우리의 동물적 순응의식에서는 자랄 수 없는 법이니까.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전차 앞에 서 있는 청년의 두려움, 무장 경찰 앞에 촛불을 들고 있는 어린 소녀의 공포스런 얼굴, 타인을 독점하려는 욕구 앞에서도 주저하며 그의 안색을 살피는 어느 연인의 머뭇거림, 어느 것 하나 우리의 본능에 반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성복의 지적은 어느 힘없는 시인의 절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은 인문학 정신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자본주의는 분명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우리의 생리에 맞는 것이다. 더 따뜻하고 근사하며 편안한 의식주! 그러나 이곳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짐멜, 벤야민, 보드리야르, 부르디외를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와 우리의 삶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분명 장밋빛 전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병원에서 냉정한 진단서를 받아든 것처럼 당혹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자본주의의 논리에 편입되어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는 자신의 잉여가치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괴물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그러나 치료는 처절한 진단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법이다. 보조국사 지눌이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에서 일어나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지금은 땅에서 넘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이 넘어져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시대이다. 오히려 넘어져 있는 주제에 우리는 서려고 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넘어지려고 한다고 조롱하곤 한다. 너무 오래 넘어져 있으면 우리는 서는 방법과 서서 살아가는 방법을 망각하게 된다. 잠시 서자마자 현기증이 느껴질 것이고, 우리는 자신이 일어났던 그 곳에 다시 누울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자꾸 약해지고 근육은 퇴화해간다. 서 있는 것, 그것도 두 다리를 버티고 자신의 삶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지켜내려는 의지는 얼마나 순리에 반하는 것인가? 그것은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이니까 말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스피노자가 <에티카>를 마무리하면서 했던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





신주쌤의 많은 수업들을 들었지만, 가장 멋진 에필로그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