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경험

[기록] 할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시간들

멜로마니 2014. 10. 27. 23:01



할머니 떠나기전 그리고 떠난 후 몇일의 이야기



월요일 밤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갑자기 받았다. 부랴부랴 엄마와 밤열차를 타고 정읍으로 향했다. 11시가 넘어 탔는데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벽 세시쯤 병원에 도착. 그날밤을 병원에서 지새웠다. 할머닌 중환자실에 있어서 마음놓고 보지도 못했다. 아침,점심 면회를 끝내고 엄마와 정읍 시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때를 밀었다. 이와중에도 여탕에서 파는 예쁜 슬리퍼가 눈에 띄어 샀다. 난 참 나쁜년이다.



저녁면회를 하고 이모 식구들과 할아버지, 엄마와 할아버지 집으로 왔다. 이날은 무슨놈의 비가 어찌나 퍼붓던지.. 하늘이 뚫린 것 같았다.




아침면회 전, 할아버지 집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는 능력자다. 꼼꼼하고 손재주가 좋아 뭐든 뚝딱 만든다. 집도 얼마나 깨끗한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옷걸이를 아주 잘 이용한다. 바나나는 걸어주는 센스



부엌에서 욕실쪽으로 나오는 문엔 커텐이 걸려있다. 나중에 집지을때 참고하고싶은 구조다.



할아버지는 소나무를 좋아한다. 이렇게 소나무 가지를 직접 균형을 맞추고 가지를 잘라 정성스레 키우신다. 난 이런 할아버지가 정말 최고라 생각한다. 뭐든 직접 해내고 하나씩 만들어가는 할아버지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배우고 또 배우고 싶은 사람이다.




할아버지께 왜 우산을 씌워놨냐 물어보니 비를 너무 맞으면 꽃이 크게 자라 보기가 안좋기 때문이라 하신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혜안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이것도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작품. 석탑도 있었는데 그건 선산으로 옮겨놨다.



예쁜 장독대들.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장독대 너머론 두승산이 보인다. 할아버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두승산을 오르신다.



모든건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있기.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찬장에 눈에 띄는것이 있어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다. 할머니가 사두고 옷장속에 넣어둔 것이라 한다. 얼마나 예쁘던지.. 너무 예쁘다하니 할아버지가 쿨하게 가져가란다. 본의 아니게 할머지가 준 선물이 되어버렸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이 간 물건들




할아버지는 항상 식후땡으로 커피를 마신다. 부엌에서 담배 물고 커피한잔 하는 모습을 보면 이리 멋잇을수가 없다. 금연 천지인 서울에선 집 안에서 편하게 담배피는 모습이 참 낯설은 풍경이다. 거기에 할아버지의 커피는 특별함도 가지고 있다. 믹스커피를 넣은뒤 거기에 티스푼으로 설탕 두스푼을 더 넣고 물을 물컵만큼 넣어주기 ! 내가 마셔보면 그냥 설탕물인데 할아버진 이게 맛있다한다.



할머닌 10년전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몸이 불편해졌다. 이후로 마음의 병이 찾아왔고 깊은 우울증을 겪었다. 그때 할머니의 사위들은 할머니를 웃게 하기위해 각서(?)같은 이 글을 적어 붙여놨다. 할머닌 이걸 보고 참 오랜만에 웃었다고 한다. 사람은 왜 항상 뒤늦게 후회만 할까. 할머니와의 기억이 흐릿한 날보며 자책했다.



시골이라 대문은 항상 열려있고 담은 낮으니 이렇게 고양이손님이 찾아온다. 할머니는 이날 오후 돌아가셨다. 



만수동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사진보고 눈물도 안났다. 참 이상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입관할때 할머니를 보면서 서러워서 울었고 한번도 울지 않던 할아버지가 터뜨리는 울음에 나까지 오열을 했다. 화장할땐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또 울음을 터뜨렸다. 이모들이 '엄마'라고 부를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엄마라는 그 이름이 이렇게 슬픈건지 몰랐다.



화장하고 다시 만수동으로 돌아왔다. 선산에 미리 할아버지가 자리를 바뒀기에 그곳에 할머니를 모셨다. 할머니가 땅으로 돌아간 날은 참 날씨가 좋았다. 햇살은 따뜻하고 논은 황금빛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두 석탑을 만들어 놓은뒤 오른쪽 탑 아래에 할머니 유골함을 묻었다. 자기가 죽으면 왼쪽 석탑 아래에 유골함을 묻어달라 했다. 



할머니가 바라볼 풍경이다. 한스럽게 살았던 지난날보다 하늘에서의 시간이 더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엔 그렇게 비가 퍼붓더니, 돌아가신 뒤엔 구름한점 없이 맑은 가을 날씨가 되었다.



난 그래서 다시한번 할머니의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 외할머니는 평생 자기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했던 미련한 사람이었다.

자식들 고생하지 말라고 죽을 준비도 다 해놓고 자신이 태어난 10월에 돌아가신 분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느꼈다. 한없이 베푼 사람은 세상을 떠날때도 그 따스함이 남아있다고.

자식인 엄마와 손녀인 나는 참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남기고간 따스함을 한아름 받았다. 나도 그분처럼 살아가리라 다짐도 했다.


'사랑'을 남기고 간 할머니,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