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남미순간

칠레의 저주

멜로마니 2015. 1. 29. 07:38

 

 

 

 

 

 

 

 

우린 분명 오늘이 칠레의 저주때문이라 생각한다. 찌질해서 남탓하는거지만 아침부터 콜카캐년 투어 1일차를 마칠때까지 정신없이 뚜드려 맞았다.

어제밤 칠레 와인 까시에로 델 디아블로를 마시고 잠을 잤는데 깊이 못자고 새벽에 자꾸 깨다 자다를 반복했다. 숙취 때문이었는지 둘다 피곤이 몰려와 새벽에 다시 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아침 8시. 투어 가이드가 8시 반부터 9시 사이에 들른다고 해서 알람을 7시에 맞춰놨는데 둘다 못들은 것이다. 호텔에 짐을 맡겨야 해서 둘다 정신없이 짐을 싸고 아침을 후다닥 먹은 뒤 투어차에 올랐다. 정신없이 시작된 아침이 불길했는데 역시나였다.

오늘은 숙소가 있는 치바이 마을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비쿠냐, 알파카, 라마를 구경했다. 버스를 타고 계속 가는데 점점 고도가 높아지더니 가장 높은 고도가 되자 우박이 떨어지고 냉동실에 들어간것처럼 추워졌다. 바람막이를 챙길까 말까 했는데 반팔티만 가져온 우리는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제 투어를 소개하고 주선한 여자가 날씨가 어떤지 하나도 안가르쳐줘서 옷이 모두 얇았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추픽추를 올라갈때 비에 젖어 개추위를 겪은적이 있어서인지 고산지대의 악몽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투어 예약을 맡았던 여자를 욕하기 시작했다.춥다고 좀 알려주지 이년아.

여튼 마을에 와서 점심을 먹고 atm으로 돈을 뽑으려니 은행오류가 떠서 우리가 가진 모든 카드가 다 안됐다. 마을에 atm기계가 단 두대 뿐인데 하나는 고장나고 하나는 안돼서 다시 우린 패닉이 됐다. 내일 콜카캐년에 들어가려면 140솔은 있어야하는데 가진돈은 68솔뿐이라 돈을 못뽑으면 내일 콜카캐년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일단 3시 일정인 핫스프링을 갈 돈은 있어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좀 풀며 생각하자고 합의하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핫스프링을 하러 갔다. 가는 길에 버스에서 여자 가이드분에게 우리 상황을 말하니 저녁을 먹는 레스토랑에서 카드를 긁고 현금을 받을수 있을거란 말에 일단 안심이 됐다. 한국서도 해본적 없는 카드깡을 여기서 처음 해보게 된거다. 아무튼 핫스프링을 하러가선 뜨거운물에 몸을 지지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얼어죽게 추운 날씨에 반팔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돌아다니는 우리를 본 오스트리아 가족은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돈을 빌려줄테니 옷을 사입으라 했다. 해가 지기 전엔 버틸만 했는데 밤이 되니 정말 이빨이 덜덜 떨리고 숙소도 추워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카드깡을 해야하기에 억지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보니 34솔이 있어 일단 그돈으로 마르꾸스 스웨터를 샀다. 난 긴 가디건이라도 가져왔는데 마르꾸스는 반팔티만 있어서 너무 추워보였기 때문이다. 가게 아저씨가 35솔을 불렀는데 돈이 34솔밖에 없어 다 드리고 9시 전에 돈찾아 다시오겠다 약속한 뒤 레스토랑에 갔다. 저녁은 페루 전통공연을 보며 20솔짜리 코스요리를 먹었는데 카드깡이 될지 안될지 걱정이 돼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와중에 함께 투어를 온 페루 아저씨가 맥주를 마시고 충혈된 눈으로 고추가 무지 매워서 한국인인 우리가 좋아할거라며 먹어보라고 줬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옥수수크림스프가 아니었다면 입에 화상났을꺼다. 청양고추보다 매운맛에 정신없이 입을 스프로 다 헹궈버렸다.

공연을 보며 밥을 먹고 마르꾸스가 카드깡에 성공해 200솔을 얻은 우리는 내 스웨터를 사러 다시 광장 근처 가게로 향했다 제일 싼 30솔짜리 스웨터를 사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남은 밥을 마무리한 뒤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숙소에 돌아왔다.

무슨놈에 투어가 이리 정신없고 힘든지 모르겠다. 아무 정보없이 몸땡이만 온 내가 누굴 탓하랴만 1박2일치곤 빡센 스케줄에 춥고 비오는 날씨가 우리를 힘들게 했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되는데 벌써 후덜덜이다. 아레끼빠에 돌아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도 핫스프링만큼은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뭐라도 해보자 > 남미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갈 채비  (0) 2015.01.31
산러버  (0) 2015.01.29
먹부림과 휴식  (0) 2015.01.27
역시 아레끼빠   (0) 2015.01.26
니가 싫다  (0) 201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