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보자/남미순간

바퀴벌레섬

멜로마니 2015. 1. 21. 09:34

 

 

 

 

 

우린 3일째 밤부터 이스터섬을 바퀴벌레 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밤이 되기 전까진 기분좋게 해지는걸 보며 스파게티를 요리해 밖에서 먹었다. 문제는 해가 진 다음이었다. 둘째날 비가 너무 와서 짓고있는 건물 안에 텐트를 쳐놨는데 밤이 되니 그곳은 바퀴벌레 소굴이었다. 정말 바퀴벌레를 혐오하는 나는 텐트에 못들어가고 버티다가 천장,벽,바닥 곳곳에 포진된 놈들을 보고 멘붕의 직전까지 갔다. 마르꾸스가 주인 아저씨에게 도미토리가 남았냐 물어보지 않았다면 우린 그 탠트에서 잠을 잤을거다. 다행히 딱 침대 두개가 남아 집으로 들어와 잠을 잤지만 여기도 바퀴벌레는 무지 많았다. 밤만 되면 어디선가 스물스물 나오고 화장실만 가려해도 무지 큰것들이 벽에 붙어있어 마르꾸스와 함께 들어간다. 여튼 밤엔 아무것도 안하고 침대 위에만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셋째날 밤이었다.

그렇게 바퀴벌레 충격을 받고 4일째 아침, 둘다 멍때리고 앉아있는데 칠레 커플 두명이 아나케나 해변에 같이 가지 않겠냐 물어왔다. 택시 왕복 요금이 15000페소라 하니 같이타고 다녀오는게 좋을것 같아 후다닥 준비하고 택시를 불러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은 숙소와 정반대로 섬 끝에 있어 한 이십분을 달린것 같은데 도착하고 보니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났다. 전날 바퀴벌레 놈들을 만난걸 잊을만큼 멋진 풍경이 가득했다. 칠레 커플과 저녁 일곱시에 만나기로 하고 해변에서 놀기 시작. 모래도 부드럽고 파도도 잔잔한데다가 날씨도 전날처럼 뜨겁지 않아 재밌게 놀았다. 근처엔 모아이도 있어서 걸어보며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간단한 스낵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간이식당이 멋지게 되어있어 거기서 풍경을 바라보며 기분도 냈다. 또 칠레커플이 맛보라며 준 이스터섬 파인애플도 먹어서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저녁에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와선 칠레커플이 같이 원주민 춤 공연을 보러가지 않겠냐 해서 함께 갔다. 씻고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해보니 남자는 이름이 미겔이고 란항공에서 일해 할인된 가격으로 비행기 티켓을 사 휴가차 온거고 여자친구 이름은 카리나로 산티아고에서 온거였다. 이틀후에 돌아간다고 우리에게 지도도 주고 이스터섬에 관한 정보도 줘 너무 고마웠다.

얘기를 하다가 택시를 타고 함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이스터섬 노래를 락과 결합한 곡을 밴드가 선보이면 거기에 맞춰 무용수들이 전통춤을 추는 공연이었다. 입벌리고 박수치며 보다가 중간에 불려나가서 진땀을 뺐지만 쇼는 정말 재밌고 박진감이 넘쳤다. 진짜 원주민 전통 음악과 춤인진 알수 없지만 남자 무용수에게선 힘이 느껴졌고 여자 무용수에게선 하늘하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거기에 노래가 신이 나서 저절로 몸이 들썩였다. 둘이 3만페소를 내고 본 공연인데 절대 아깝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니 별이 하늘에 가득했다. 이게 은하수구나 싶었다. 미겔과 카리나도 산티아고에선 별이 별로 없다고 하며 신기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우유니에서도 많은 별을 봤지만 여기서처럼 온하늘에 별이 쏟아질것처럼 있는건 처음 본 것 같다.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쉽지만 마르꾸스와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목이 아플만큼 하늘의 별을 실컷 본 날이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끝. 밤이 되면 그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혹시나 침대 옆이나 위로 올라오는건 아닌지 걱정이 돼 중간에 깨기도 했다. 너희들만 없으면 이스터섬이 정말 좋을거같다 이 썅놈들아.

 

* 캠핑 미히노아 주인 아저씨는 강한 포스가 물씬난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년쯤 되는데 다양한 노동으로 빚어진 식스펙과 호리호리한 체형은 동안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잘 웃지도 않고 시크한 매력이 있는데다가 얼굴은 강시영화의 대부 영환도사를 빼닮았다. 하루종일 캠핑장,도미토리 하우스, 독채를 전부 관리하는게 대단할 따름이다.

 

아 캠핑장엔 영환도사를 따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무지 큰 개 '낌바'가 있다. 처음에 이름을 몰랐을 땐 우리끼리 '하몽'이라고 불렀다. 평소엔 영환도사 아저씨처럼 시크하지만 먹을거 앞에선 무너지는 귀여운 개다. 덩치는 산만한데 뭐라도 얻어먹으려고 애교부리는 모습이 참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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